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것이 세금이다. 더 나아가 세금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고 나라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친 세금 사례를 소개한다.
◆ 세계 3대 시민혁명(영국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혁명)은 모두 가중하고 불공정한 세금이 도화선이 됐다.
영국의 청교도혁명(1642-1651)은 찰스 1세가 왕권신수설을 굳게 믿고 1628년 왕권 수호 목적의 강력한 상비군을 만들기 위한 세금을 부과하려 하자, 의회가 ‘의회의 동의 없이 국왕이 세금을 거둘 수 없도록 하는’ 권리청원을 제출한 것이 발단되어 명예혁명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독립혁명(1775-1783)은 오랜 전쟁으로 재정이 바닥난 영국이 미국 식민지에 일방적으로 세금 부과를 결정하자 주민들이 “대표 없는 곳에 세금 없다”(No tax without representatives)"는 주장을 앞세우며 시작되었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프랑스 대혁명(1789-1794)의 경우 고소득계층인 성직자와 귀족들에게는 면세정책을 펴고 국민 대다수에게는 가중한 세금 부담을 안겼던 불공평한 조세제도가 하나의 도화선이 되었다.
◆ 무리한 조세정책 추진으로 정권이 바뀌거나 치명타를 입은 경우도 많다.
일본은 1986년 12월, 일반 소비세인 5%의 매상세 도입을 발표한 후 다음 해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하고 1987년 11월 나까소네 수상이 실각하기에 이르렀다. 후임자인 다께시다 수상은 세율을 3%로 인하하여 소비세법을 통과시켰다.
영국에서는 1990년 4월, 지방세인 재산세(Rates) 과세대상에서 주거용 자산을 제외하는 대신 성인 1인당 평균 365파운드의 Community Charge를 부과했다. 인두세의 부활이라며 주민들의 조세저항이 거셌고, 이는 대처 총리가 정권에서 물러나는 중요 원인이 되었다. 후임자인 존메이저 총리는 1991년 이를 폐지했다.
박정희 정부가 1977년 도입한 부가가치세는 물가상승 등으로 민심 이반을 야기했고 부마 민중항쟁에까지 영향을 미쳐 결국 정권 몰락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8월 8일에 연봉 3,450만원이 넘는 근로자들의 세금을 인상하는 내용의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중산층 세금 폭탄’이라는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자 박 대통령은 8월 12일 “서민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인데 서민과 중산층의 가벼운 지갑을 다시 얇게 하는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정책 방향과 어긋나는 것”이라며 원점 재검토를 지시하였고 정부는 하루 만에 새로운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최근 영국은 세금 때문에 시끄럽다. 트러스 총리가 지난 9월 23일 대규모 감세를 통한 성장정책을 발표했다가 되레 국채가격이 급락하고 파운드화 가치가 37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당 지지율이 급락하자 결국 발표 열흘만인 10월 3일 상위 1% 고소득자 소득세율 인하 정책을 전격 취소했다. 영국 BBC 방송은 이를 "거대하고 굴욕적인 유턴"이라고 평가했다. 충분한 검토 없이 발표한 감세안으로 트러스 총리는 집권 한 달 만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 세금은 사람들의 행동방식이나 생활양식을 바꾸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도 한다.
영국 정부는 1696년에 건물의 창문 숫자를 과세표준으로 하는 창호세(Window Tax)를 시행했다. 소득이나 재산이 많을수록 큰 집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며 큰 집일수록 창문이 많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창문 숫자에 맞춰 세금을 부과한 것이다. 1712년에는 정권에 대한 비판을 억제하고 군비도 조달하기 위해 신문 한 장당 1페니씩 인지세(stamp tax) 부과를 시작했다.
그러나 납세자들의 반응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났다. 창호세를 피하려고 창문을 폐쇄하면서 사람들의 일조권만 뺏어버리는 역효과만을 가져온 채 결국 이 세금은 폐지됐다. 또한 신문의 크기를 키워 쪽수를 줄여 인지세를 회피했다. 오늘날 신문이 다른 책자보다 훨씬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정부가 증세정책을 내놓으면 납세자들은 바로 절세대책을 마련해 대응하면서 기대했던 만큼의 세수효과는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휴지나 공한지에 과세하는 토지초과이득세가 1990년에 시행되면서 도시에 임시 건물들이 난립하고 빈공간이 사라지는 문제를 야기했다.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 논란으로 결국 1994년에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고 1998년에 폐지되었다.
◆ 다양한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새로운 세금이 부과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그 중 수염세가 흥미롭다. 18세기 초 러시아의 절대군주였던 피터 대제는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다는 이유로 귀족들의 옷소매를 짧게 하고 긴 수염을 깎도록 했다. 그런데 귀족들은 슬라브 인의 긴 수염은 하느님이 주신 것인데 황제라도 이것을 깎으라고 명령할 수 없다면서 전국적으로 저항했다. 피터 대제는 귀족 몇 명과 자기 아들마저 처벌했음에도 저항이 계속되자 방법을 바꿨다. 수염을 기르게 하는 대신에 수염세를 물리게 했다. 효과는 의외로 빨리 나타났다. 세금을 내기 싫어하는 러시아인들이 수염을 깎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은 2003년 교통 체증과 환경문제 해소를 위해 런던 도심으로 들어오는 차량에 대해 교통체증세(Congestion charge)를 부과했다. 이후 도심 교통량이 감소하고 교통체증도 완화되는 효과가 있었다.
담배, 주류, 경마, 도박 등 국민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소비에 대해 부과되는 일명 죄악세(Sin tax, 악행세)는 폭넓게 시행됐다. 이는 국민 건강과 밝은 사회를 위한 명분 때문에 조세저항이 적으면서도 상당한 세수를 확보할 수 있어서다. 비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헝가리는 2011년부터 감자칩세를 도입했으며, 프랑스와 멕시코 등에서는 소다세를 그리고 대만은 정크프드세를 도입했다.
◆ 지금까지 살펴본 세금들이 남긴 역사적 교훈은 ‘국민이 공감하는 세금이 가장 좋은 세금’이라는 점이다.
조세정책은 이론적 타당성이나 논리적 정당성만으로 성공할 수 없고 국민의 수용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新稅(신세)는 악세’라는 얘기가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새로운 세금이나 증세에 대해서는 우선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만큼 취지가 좋더라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실패하기 쉽다. 사전에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지금은 자본과 노동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국가 선택 시대’이므로 조세의 국제경쟁력을 높여가야 한다. 과거에는 세금이 무거우면 저항하거나 탈세 또는 조세회피로 대응했지만, 지금은 다른 국가로 세원이 이동해버린다. 창문세나 수염세를 부담하지 않기 위해 창문을 없애거나 수염을 깎는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창문을 내고 수염을 기를 수 있는 나라로 떠나버린다는 얘기이다. 독불장군식 조세정책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