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중·저소득층 소득세 과세표준 상향에 무게
물가·월급 오르는데 고정된 과표에 '증세' 비판 커
정치권도 '소득세 감세' 가세…사실상 개편 수순
◆…정부와 여당이 소득세 과세표준 체계 개편을 검토하는 가운데 야당까지 관련 법안을 제출하면서 15년만에 과표 개편이 이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기업, 집주인에 이어 근로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감세(減稅) 조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가 소득세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금액) 구간을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과표(또는 세율)는 그대로 유지되다 보니 급여생활자들은 같은 급여를 받아도 세금을 점점 더 내고 있다는 비판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소득세 과표를 뜯어고치는데 야당까지 합세하면서 15년만에 과표 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13일 여권에 따르면, 기재부는 오는 21일 발표할 세법개정안에 소득세 과표구간을 상향조정하는 내용을 담을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소득세법은 8단계 과표구간을 두고 6~45%의 세율을 적용하고 있는데, 8800만원 이하 과표구간을 상향하는 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중·저소득자들의 세금을 매길 때 적용되는 과표구간이 조정된다면 2007년(2008년부터 시행) 이후 15년 만이다.
그간 물가는 상승했지만 과표구간과 세율이 장기간 고정되어 '소리없는 증세'가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자연스레 "유리지갑 월급쟁이 세금만 털어간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중산·저소득층이 적용받는 과표구간은 2010년 이후 한 차례도 바뀌지 않은 반면, 해당기간 물가는 연평균 1.3%씩 오르면서 사실상 증세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근로자 월 임금(1인 이상 사업체)은 2016년 310만5000원에서 2021년 365만3000원으로 17.6% 인상됐지만, 근로소득세 부담은 월 기준으로 2016년 10만2740원에서 2021년 17만5260원으로 70.6%나 증가했다.
이번 소득세제 개편안에서 과표 1억5000만원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한 세부담 경감 조치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몇 년간 고소득자만을 대상으로 한 증세(增稅) 기조가 이어졌음에 불구하고, 부동산에 이어 '또 부자를 위한 감세'라는 비난이 커질 수 있단 우려가 발목을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재부는 소득세 과표를 조정하는데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지난 10일엔 입장 자료를 통해 "현재 소득세 전반적인 과세체계 개편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중산층과 서민층에 대한 세부담 경감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이러한 취지로 영화 관람 비용에 소득공제 혜택을 주고 식비 비과세(현재 월 10만원) 한도를 올리는 안도 검토되고 있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오는 18일 국회에서 당정 협의를 열어 기획재정부가 조만간 발표할 2022년도 세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한다. 사진은 지난 6월 추경호 부총리가 출입기자간담회에서 기자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사진 기획재정부)
정부와 국민의힘은 오는 18일 국회에서 당정 협의를 열어 기재부가 마련한 세법개정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소득세 과표를 조정하는 내용이 올해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사실상 개편의 '신호탄'은 쏘아진 상태다. 여당에 이어 야당까지 '15년 묵은 소득세'를 손질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다. 정부·여당과 마찬가지로 "물가를 반영해 과표를 상향해야 한다"는 게 주된 목소리다.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이 13일 대표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을 보면, 8800만원 이하 구간을 개편하는 내용이 담겼다. 2020년 기준 연말정산 신고자의 97%, 종합소득 신고자의 94%가 과표 8800 이하 구간에 속해 있다. 고 의원은 "물가와 금리는 올라 나갈 돈은 많은데 세금까지 많이 빠져나가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너무 힘들다"면서 "물가인상을 반영해 15년째 제자리인 소득세 과표구간과 세율은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개정안은 과표 1200만원 이하 구간은 1500만원으로 올리고 세율은 현행 6%에서 5%로 낮췄다. 근로소득자의 대부분이 속한 과표 4600만원 이하 구간은 5000만원으로, 세율은 15%에서 13%로 조정했다. 과표 8800만원 이하 구간은 9500만원으로 상향하고 세율은 24%에서 23%로 내렸다. 이 조치로 서민과 중산층의 소득세가 15~2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고용진의원실의 추산에선 작년 과표 4600만원에 해당하는 근로소득자라면 약 100만원 정도 소득세가 줄어들게 된다.
앞서 지난 11일엔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이 종합소득세 과표구간을 상향조정하는 소득세법 일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기존 세율 1200만원 이하 6%·4600만원 이하 15%·8800만원 이하 24%에서, 1400만원 이하 6%·5400만원 이하 15%·1억원 이하 24%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았다. 1억원 초과 고소득층 과세구간은 그대로 뒀다. 강 의원은 "매년 물가에 연동해 소득세율 구간을 조정하고 있는 몇몇 선진국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근로자 소득세 부담을 덜어줄 세제 개편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