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밟히는 '법인카드깡' 홍보명함 = 강남이나 여의도 등 기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는 법인카드깡(법인카드 대납) 업체들이 무차별 살포한 홍보용 명함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경기침체로 급전이 필요한 이들에게 살인적인 고금리를 받아 챙기는 형태로 돈을 돌리는 정체불명의 대부업체들이 백주대낮에도 버젓이 활개를 치는 현실, 대한민국의 구겨진 자화상이다. (사진 김용진 기자)
# IT관련 소규모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A대표는 최근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경기침체 여파로 매출이 감소하면서 자금조달이 어려워졌기 때문. 은행 등을 통해 자금을 끌어 당겨보려 했지만 번번이 퇴짜. 어느날 무심코 길을 걷다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붉은 글씨로 큼지막하게 '법인카드 대납'이라 적힌 명함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건 A대표. 대출 심사절차도 까다롭지 않고, 법인카드를 이용해 할인까지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단기 대출을 받았다. 이자율이 높았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앞섰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은행 등 제도권 금융사로부터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 사업자들이 이른바 '카드깡'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카드깡은 급전이 필요한 사업자에게 신용카드 결제를 유도한 뒤 선이자를 받고 현금을 융통해주는 구조인데, 현행 여신전문업법상 신용카드를 활용해 현금을 찾으려면 카드대출을 받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카드깡 행위 자체만 가지고 '불법'이라고 매도하기는 무척 애매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카드깡을 접할 수가 있다.
특히 경기침체로 자금난을 겪는 중소 사업자들 입장에서 법인카드를 활용한 카드깡은 유용한 자금조달 창구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서류작성만 한 무더기에다가(?) 까다롭기 짝이 없는 제도권 금융사에 비해 서류작성은 물론 심사 절차라는 것 자체가 없는 수준이고 돈도 빨리 돌기 때문에 그 안에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카드깡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급전 필요하세요? 법카로 팍 긁으세요"
사실 일상에서 '법인카드깡을 이용하라'는 광고는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의식만 한다면 말이다.
실제로 크고 작은 기업체가 대거 몰려 있는 서울 강남역 인근만 가도 '법인카드 대납'이라는 문구가 박힌 명함이 도대체 얼마나 뿌려댔길래, 길바닥에 말그대로 나뒹굴고 있을 정도다.
개인의 경우 회사에서 지급한 법인카드로 몰래 카드깡 대출을 받아 사용할 경우 횡령죄로 엮일 수 있지만 법인의 대표자라면 경우가 조금 다르다.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법인카드깡으로 확보한 뒤 이를 비용처리 해버리면 그만이다.
물론 대출을 받아 회사 운영자금이 아닌 개인적으로 썼다면 추후 문제가 될 수는 있다. 사업자 입장에서 자금압박이 극심하다면, 가장 손쉬운 곳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길거리에 나뒹구는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기자가 직접 전화를 걸자, 대부업체 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성은 대뜸 "혹시 사업체를 운용하고 있느냐"며 물어 왔다.
이 남성의 말에 따르면 영세한 규모의 사업체를 운용하거나 금융권 대출을 받기 힘든 경우 법인카드 현금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
법인카드깡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현금을 제공해주고 있다고 한다.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미리 제외하고 현금을 제공하는 '법인카드 할인'과 만기가 도래한 카드금액을 대신 납부해주고 더 큰 금액으로 갚게 하는 '법인카드 대납' 방식이다. 정체가 불분명한 이 대부업체에서는 수요자의 성향에 맞게 현금 지급방식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법인카드 할인은 일정 금액을 수수료 명목으로 제외한 뒤 지급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업체의 경우 700만원을 지급받으려면 900만원을 허위 매출로 결제하고 200만원을 대부업체가, 700만원을 기자가 갖도록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대부업체의 경우 700만원을 허위 매출로 결제할 시 84만원을 대부업체가, 616만원을 기자가 갖고 가게끔 할 수 있다고 했다. 따져보면 두 방식 모두 한달 이자만 각각 22%, 12% 연 이율로는 266%, 144%의 살인적인 고금리다.
법인카드 대납은 해당 사업자의 자금을 미리 갚아주고 훗날 사업자로부터 고율의 이자를 법인카드로 결제하게 하는 방식이다. 보통 법인카드 할인이 일시불로 이루어지는 것에 비해 대납은 짧게는 1개월부터 많게는 수개월에 이르기까지 이자가 붙기 때문에 '고율의 사채'라는 인식이 강하다.
대부업체 관계자는 "주로 자금난에 허덕이는 영세업체 사장들이 많이 이용한다"며 "여러 달 동안 할부로 갚아 나가는 만큼 더 높은 이자를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2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법인카드깡은 의외로 쉽고 간편하게 진행됐다.
필요금액과 거주지, 회사명 등 기자의 인적사항을 물은 대부업체 관계자는 이어 법인카드깡을 어떤 순서로 진행할지 그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법인카드깡 관계자가 직접 기자와 만나 구비서류를 확인하고 간단한 서류심사를 거친 뒤 앞서 언급한 '대납'과 '할인' 중 한가지 방식을 선택해 현금 할인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기자가 법인카드깡의 실체(진행 절차 등)를 파악하는데 걸린 시간은 단 3분이었다.
◆…3분의 마법(?) =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법인카드깡 현금 할인 서비스. 전화통화 3분이면 법인카드깡의 세계를 금새 이해할 수 있다.
현행 대부업법상 대부업체가 돈을 빌려주고 받을 수 있는 최고금리(법정)는 연 27.9%.
이를 감안할 때 법인카드깡을 주도하고 있는 실체가 불분명한 대부업체들은 명백하게 현행법을 지키지 않는 '불법업체'이며 정부당국의 감독대상이다.
불법업체와의 거래가 가져온 물질적 정신적 피해 사례는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봐도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결코 까다롭지 않은 방식 등 여러 가지 이점이 많기 때문에 자금압박에 시달리는 사업자들 입장에서는 외면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달콤한 유혹이 되고 있다.
법인카드깡 행위는 '지하경제'로 연결되는 끈이기도 하다.
실정법을 지키지 않는 불법 대부업체들이 카드깡을 통해 벌어들인 수수료 수익에 대해 세금을 제대로 낼리가 만무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 그런 측면에서 법인카드깡 대부업체가 '보안유지'를 신신당부하는 것도 대출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존재를 수면 아래 숨기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업자 입장에서도 법인·부가가치세 측면에서도 이득을 볼 여지가 많다. 구체적으로 카드깡을 한 뒤 허위영수증을 작성해 경비로 처리하면서 손금인정을 받아 법인세를 줄이거나, 대출금액을 매입세액으로 공제받아 부가세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카드깡 업체가 받아 챙긴 수수료를 '비영업대금 이익'으로 간주해 세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1차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적발) 이는 성립이 되지 않는 시나리오다.
전문가들은 암암리에 만연해 있는 카드깡을 제대로 단속해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지금 이 상태를 방치한다면 가뜩이나 경기침체에 휘청이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나 낮은 신용등급에 있는 사람들을 더 큰 수렁으로 빠트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게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