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억 도난차량 밀수출 "꼼짝마"…"관세국경 파수꾼 납시오"

"신혼인데 토요일에 집에도 못 가고 일해서 잡았죠"

결혼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새색시가 일을 냈다. 신혼 생활의 달콤함도 잠시 미뤄둔 채 세상에 그냥 묻힐 뻔한 도난차량 밀수출을 끝까지 추적, 잡아낸 파주세관의 서윤정 행정관(사진).

서 행정관은 지난해 10월 도난 중고차 밀수출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면서 속초항에서 선적된 모든 차량의 차대번호와 수출신고서의 분석을 시작했다. 차대번호란 차량 도난 방지와 차량 결함을 추적하기 위한 일종의 꼬리표로 차량번호 또는 차량식별번호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당시 속초세관에서 일하던 서 행정관은 2만대의 차대번호와 수출신고서를 일일이 대조한 벌인 결과, 차대번호가 일치하지 않는 차량 123대를 찾아냈다. 주말도 잊은채 끈질기게 일에 매달린 끝에 얻어낸 성과였다.

서 행정관은 "대조작업을 한 결과, 매달 차대번호가 다른 차량이 6~7대씩 나왔다. 또 1990년대 연식을 가지고 있는 차량을 수출한다고 신고하는 등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어 "이 작업을 2달 동안하다가 지난해 12월경 토요일날 아침에 배가 11시에 출항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선박에 분명히 도난차량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그 날 나갈 차량의 리스트를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배가 출항하기 두 시간 전에 리스트를 받아 본 서 행정관은 차대번호가 다른 차량 6대를 발견했고 수출입신고서도 위조된 것을 알게 됐다. 이 사실은 선박회사도 몰랐고 수출업자 중간에 이를 변조해서 도난차량을 러시아로 보내려고 하다 덜미가 잡힌 것이다.

이것이 모두 배가 출항하기 직전 일어난 일로써 당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서 행정관이 꼼꼼히 대조작업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재빠른 조치가 없었더라면 이 도난차량들은 그대로 해외로 유유히 빠져나갔을 터였다.

□ "힘들긴 했지만 조사하는 분들에 비하면…" = 이 사건은 그동안 중고차 밀수출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속초지역에 대한 인식을 뒤바꾸는 계기가 됐다.

조개류 등 해산물 수출입이 많은 속초에서 도난 중고차 밀수출은 전무하다시피 했지만 지난해 인천세관에서 도난 중고차 밀수출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면서 밀수출 조직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서 행정관은 "1년치 자료들을 대조하면서 보는 일이 눈도 피로하고 힘들었다"며 "이게 또 혼자 하는 업무면 혼자서 열심히 하면 되지만 업체에 자료를 요구해야 하니까 그것이 어려웠다. 조사업무 쪽이었으면 그것도 쉬웠겠지만 수출입 통관 업무를 하다보니 자료를 요청하는 것이 안 그래도 바쁜 선박회사에 미안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선박회사들은 업체들이 밀수출 하는 것도 몰랐지만 바쁘더라도 요청해준 자료를 빨리 처리해 줬다"며 "미안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런 밀수출을 적발하게 돼 뿌듯하다"고 밝혔다.

서 행정관이 더 뿌듯해하는 것은 밀수출 적발도 적발이지만 관세국경을 지켜 국민 피해를 줄였다는 자부심이다.

밀수출을 했던 업체들은 압류된 차량이나 근저당 잡힌 차량 등 정상적으로 수출이 안 되는 차량을 싸게 사들여 수출하고 차량의 원래 주인들은 보험회사에 차량을 도난신고해서 보험금을 타냈다. 자연스레 성실하게 보험금을 납부했던 사람들의 보험료는 올라가게 됐다.

서 행정관은 "서류 대조작업도 힘들지만 그래도 현장에서 힘들게 뛰는 조사업무에 일하는 분들에 비하면 제가 한 일은 별게 아니다"라며 "관세청은 집행기관이라 그런지 최일선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다"고 겸손함을 나타냈다.

□ "업무량 많아도 '동료애'로 거뜬해요" = 속초세관에서 1년 동안 근무를 하다 최근 파주세관으로 근무지를 옮긴 서 행정관은 근무지를 옮기면서 '주말부부' 꼬리표는 떼어버렸다.

하지만 비교적 업무량이 많은 파주세관의 특성상 야근을 자주해 신혼생활을 온전히 즐기기는 힘들지만 열명 남짓한 직원들의 끈끈한 동료애 덕분에 새 근무지에서 비교적 빨리 적응했다.

서 행정관은 "여기가 일이 정말 많다. 쉬는 분이 없다"며 "수출입도 많고 화물도 많다 보니 바쁜데 인력은 부족한 형편이다. 직원들끼리 간식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지만 다들 잘해주셔서 빨리 적응한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일 힘든 것은 수출입 통관 업무를 할 때 관련 법령을 다 찾아봐야 하는 것"이라며 "일 자체도 많은데 법령을 찾느라 시간이 다 간다"고 덧붙였다.

서 행정관과 함께 근무하는 정영만 행정관은 "파주가 업체 수는 다른 지역에 비해 적어도 큰 기업들이 운영하는 공장들이 많아 수출입 규모가 꽤 큰 편이라 일이 많은 편"이라며 "여기서 일하면 수출입하는 물건에 대한 전문가가 돼야 해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다른 지역과 달리 파주세관에서는 많은 업무량에도 관할지역에 있는 수출입 업체들과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족구대회나 간담회를 여는 등의 행사를 자주 가지고 있다.

정 행정관은 "파주세관장 배 족구대회를 할 때면, 자주 세관에 오지 않았던 업체들도 꼭 참석하고는 한다. 대부분 공장이다보니, 부지가 넓어 족구 연습을 자주해 다들 실력이 좋다"며 "우리는 바쁘고 운동장도 없다 보니 우리가 주최하는 족구대회인데도 우리는 항상 1차전에서 패하고는 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는 세관과 업체들이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는데 우리는 업체들과 스스럼 없이 지내다보니 민원이 있으면 우리 세관에 바로 건의하고 우리는 즉시 처리해주고 있다"며 "통관업무는 일종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업체들 위에 있다는 생각은 안 한다"고 밝히는 등 파주세관 행정서비스의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약력]

▲1981년 ▲부경대 무역학과 ▲일반공채(9급)
▲2008년 관세청 입사, 관세청 교육협력과, 서울본부세관 수입과, 서울본부세관 FTA협력과, 서울본부세관 홍보과, 속초세관 수출입 통관 업무, 파주세관 회계 업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