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 親서민-親중소기업 기관으로 변모시킬 것"

FTA활용·관세외교와 통관 비효율성 제거에 역점
"해외 관세관 신설, 장기근속 6급 직원 승진 추진"

"관세청은 더 이상 세금징수 기관이 아니다. 이름이 적절치 않다. 무역과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업무 등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글로벌 사회의 주무부처는 관세청이다."

윤영선 관세청장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시절부터 과감한 업무처리로 유명했다. 보통 세제 담당자들은 보수적 성향을 보이면서 특정 사안의 70~80% 정도만 추진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는 120~130%짜리 방안을 서슴없이 내놓는다.

지난 3월 23일 관세청장에 취임한 이후 50여일간 구상한 관세행정의 밑그림은 어떤 것일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윤 청장은 기업의 자유무역협정(FTA) 활용에서부터 기업심사제도와 통관시스템, 관세외교, 대국민 홍보와 인사문제 등에서 상당히 구체적이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반면 '소녀시대'에 대한 느낌과 가정생활 등 인간적인 부분에서는 소탈한 면모를 보여줬다.

지난 13일 오후 3시 정부대전청사 집무실에서 윤영선 관세청장을 만나봤다.
(대담 : 김진영 정책팀장, 정리 : 임명규 기자)

□ 관세청장에 취임한지 50일 정도 흘렀다. 그동안 해온 소감과 업무를 간단히 소개해 달라.

=우선 '관세청'이라는 이름에 대해 국민들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 이름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관세청' 하면 관세를 징수하는 개념으로 생각하지만, 수출입을 지원하기 위해 통관절차를 최소화·단순화시켜주는 업무가 최우선이다. 원산지를 따져줘야 하는 먹거리 업무와 지적재산권 침해물품들, 불법 의약품을 비롯해 최근 급증하는 마약밀반출 단속 등 관세 징수 외에 무역원활화와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업무가 훨씬 많고, 전 직원이 그런 일을 담당하고 있다. 밖에서 보는 관세행정보다 실제로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 '관세청'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꿀 생각이 있다는 뜻인가.

=관세청은 세금징수기관으로 국민들이 받아들여서 멀게 느낀다. 관세청은 친서민기관, 친중소기업적 기관이다. 명칭이 적절하게 관세청을 포괄하지는 않고 있다. 명칭을 바꿔야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마땅한 대체 명칭도 떠오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글로벌 사회에서 가장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주무부처가 관세청이라는 점이다.

□ 관세청의 성격을 국민들이 제대로 알게 하는 홍보도 필요한데. 

=관세청의 무거운 이미지를 가깝게 하기 위해 소녀시대를 홍보대사로 위촉했고, '친서민적인 연예인'인 개그맨 남희석 씨도 위촉했다. 기획재정부와 공동으로 케이블방송의 홍보프로그램도 제작하고 있다.

□ 취임 이후 아직 직원 인사를 하지 않았는데, 인사 방침이나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나.

=인사문제에 대해 살펴봤더니 6급 승진이 잘 안된다는 문제가 있다. 1978년~1980년에 입사한 30년 넘게 일한 공무원 중 아직 7급인 직원이 150명이나 된다. 지방 세관에 갔더니 7급 계장들이 1954년~1955년생이었다. 딸이 결혼할 때가 됐는데, 제발 6급 반장을 해달라는 얘기도 들었다. 안타까웠다. 지방에 있다보니, 인사 메리트가 전혀 없어 자꾸 쳐지는 것이다. 30년 넘게 근무했는데, 9급에서 7급으로 겨우 두 직급 올랐다는 건 문제다. 이런 직원들에게 열정을 가져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빠른 시간에 6급 승진자를 늘려 구제할 계획이다. 그래야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청렴성과 친절성도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 관세청 업무량에 비해 인원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있다.

=위험물질로부터 지켜주는 업무는 갈수록 증가하는데, 관세공무원 수는 10년 전과 똑같다. 10년사이 교역량은 2.5배 증가했고, 9.11테러로 인해 국경안전과 치안 문제가 더욱 중요해졌음에도 업무는 동일하다보니, 직원들의 업무량이 많고 생략되는 부분도 있다. 조직인원을 늘리면서도 새로 발생하는 위험관리 등 미래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하이 리스크(High-Risk) 업무는 인원을 많이 넣어주고, 로 리스크(Low-Risk) 업무는 민간에 아웃소싱할 계획도 갖고 있다. 보세창고 등 경비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많은데, 이런 업무는 민간에 준다는 것이다. 또한 관세청에는 특수한 장비들이 많이 있는데,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외국에서 직원들을 훈련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직원부족 문제를 극복해나가고 있다.

□ 아웃소싱은 어떤 자격을 갖춘 민간업자가 할 수 있는 것인가.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요건을 맞춰봐야 한다. 복잡한 업무는 아니다. 우리가 간접적 감독을 하니까, 크게 염려할 일은 없다. 과학기술처럼 전문인력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공무원을 새로 뽑는 것보다는 훨씬 국가에 도움될 수 있다.

□ 기업들 입장에서는 기업심사에 대해 세무조사처럼 부담이 될 수 있다. 그 부분에서 개선방안이나 스탠스가 있는지?

=세제실장으로 근무할 당시 관세법 시행령을 개정한 것이 있다. 기업심사 원칙을 20일 이내에 끝내고, 필요하면 20일 연장이 가능토록 해서 사업자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주기로 했다. 지난 4월 1일부터 시행했다. 또한 관세 포탈범을 대상으로 한 조사도 굉장히 오래 걸리는데, 이 기간도 단축시켜볼 생각이다.

□ 조사기간만 단축하면 오히려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 않나.

=조사하기 전에 가상심사 등 사전준비를 충분히 해야한다. 공무원이 편하게 현장에 가서 배워가자는 자세로 조사하면 오래 걸리는데, 현장에서 기간을 정해놓고 하려면 준비를 철저히 해야한다. 직원들의 능력배양에 역점을 두려고 한다. 관세청의 미래 역점과제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비용대비 이익이 적은 것은 과감히 없애버릴 계획이다. 특히 교육재편을 위해 민간 대기업의 교육프로그램도 살펴보고 있다.

□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세계관세기구(WCO) 아태지역 관세청장회의에서 의장국을 맡았는데,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5일간 양자 관세회의를 매일 조찬과 오찬, 커피 브레이크 등을 통해 15~16개국과 양자회담을 충분히 했다. 이를 통해 앞으로 양국간 관세문제가 발생했을 때 고위 채널을 만들었다. 해외로 20번 출장가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홈그라운드에서 얘기를 하고, 기념품도 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이들 국가와는 해외 현지진출 기업의 문제가 생기면 고위급에서 전화로 얘기할 수 있다.

□ 현지기업의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나.

=기업들은 국세보다 관세분야에 어려움이 많다. 현지 통관단계와 신고문제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특히 개도국에서 이런 문제가 심한데, 현지 기업들은 관세관을 보내달라는 요구가 많다. 베트남이나 인도 등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들은 관세 면제요건을 따져보면서 더욱 트집을 잡는 경우도 있다. 아세안 진출기업들은 원산지 증명을 빨리 받는 것이 관세 감면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금 관세관이 나가있는 국가는 5개(미국, 일본, 중국, 홍콩, 태국) 밖에 없다. 브릭스와 남미, 유럽 등에 전혀 없는 셈이다. FTA 관세 면제품목여부와 요건 충족여부의 갈등이 많은데, 그런 부분은 현지 주재관이 해결해줘야 한다. 그동안 중앙정부에서 협정을 맺었지만, 이행하는 것은 관세청 몫이다.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경제영토의 개념이 FTA체결로 인해 체결국가 모두 우리의 경제영토가 됐다. 관세관 파견 등 협정을 이행할 시스템이 아직 충분하지 않은데, 관련기관과 계속 협의하고 있다. 

□ 재임기간 동안 바꿔보고 싶은 관세행정, 이후 달라져있을 관세청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우리나라 한국경제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정책이 양자간 FTA인데, 미국과 EU와의 FTA가 특히 중요하다.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부분이 많기 때문에 우선 수출기업의 의견을 계속 듣고 있다. 1990년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원산지 요건으로 인해 관세를 추징당한 미국 주변국가의 사례를 조사하고 있다. 6월에는 당시 미국 관세청 고위관료들을 초청할 계획도 있다. EU도 어떤 문제가 있는지 조사하고, 기업이 준비할 수 있는 키포인트를 전달하고 있다.

두 번째는 세계 관세행정 기조가 리스크-매니지먼트로 바뀌고 있는데, 국경의 위험요소가 있는 것을 관리하는 것이다. 교역을 신속하게 잘하는 것과 위험요소를 잡아내는 것은 상충한다. 리스크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AEO(수출입안전관리우수공인업체)AEO와 같이 통관시스템을 신속하게 하고, 고위험의 통관 비효율성을 제거하는 업무에 역점을 두고 있다.

세 번째는 국가간의 관세외교가 넓어져야 한다. 미국과 EU의 관세외교 채널을 확충하고, 호주와 뉴질랜드 등과도 협력해 우리 관세행정의 외연을 넓혀갈 계획이다. 주요 국가에서 우리나라에 파견한 상무관들과 정기적으로 만나서 의견을 나누고, EU와 북미, 중남미, 아시아 등 권역을 나눠서 가급적 직접 현지에 방문해 관세 외교를 다져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