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56차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주재,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 기획재정부)
윤석열 정부가 2년째 감세(減稅)를 조세정책 기조로 내세웠다. 대기업·다주택자를 겨냥한 대규모 감세(2022년 세법개정)가 내년부터 본격 효과가 나타날 상황에서, 올해 정부의 세법개정안에는 세입 확대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비과세·감면 정비라는 '우회 증세'를 택하고 있지만, 재정 불안의 위험성을 해소하는데 역부족하다. 이번 세법개정에 따라 적게는 향후 5년간 5000억원, 많게는 조 단위의 세수가 줄어든다.
더 큰 문제는 깎아주는 세금은 넘치는데 들어오는 돈이 없다. 올해 5월까지 정부가 거둬들인 국세는 2022년 5월과 비교해 36조원 넘게 줄었다. 현재로선 세수가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낮다. 민간소비가 줄어든 가운데 수입이 수출보다 더 많이 줄어든 '불황형 성장'이란 점에서 상저하저(상·하반기 모두 저성장)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정건전성과 감세를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상이라는 얘기다.
누적기준땐 세수 5년간 3조 줄어든다
27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3년 세법개정안'에 따라 향후 5년(2024~2028년)간 4719억원의 세수 감소가 발생한다. 이는 전년대비 기준으로 예측한 세수효과다(순액법). 하지만 실제 세수감소 효과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지표인 '누적법(기준연도 대비 방식)'을 적용했을 땐 약 3조원(3조702억원)의 세수가 줄어든다.
자녀장려금을 확대한 부분이 감세 규모가 가장 컸다. 현재는 부부합산 총급여액 기준으로 4000만원을 넘지 않아야 받을 수 있는데, 이 금액 기준을 7000만원 미만까지 올렸다. 최대지급액도 자녀 한 명당 8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조정했다. 약 46만 가구가 혜택을 볼 것으로 예측된다(58→104만 가구). 출산·보육수당 비과세 한도를 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린 부분도 적지 않은 조세지출이 발생한다.
다만 출산 또는 출산의 선행지표인 결혼 관련한 세제지원은 논란거리다. 개정안은 '혼인실고일 전후 각 2년 이내(4년간)에 직계존속으로부터 증여받은 재산은 1억원 추가공제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쉽게 말해, 자식이 부모로부터 결혼자금 명목으로 1억5000만원을 받아도 세금을 한 푼도 안 낸다는 소리다.
참여연대는 이날 내놓은 논평에서 "저출생 문제가 증여세 부담 덜어주고, 출산수당 비과세 혜택 늘려준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라며 "출산 수당은 꿈도 꿀 수 없는 불안정한 일자리, 아무리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을 꾸려가는 이들에게 정부의 역할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尹정부 출범 이후 2028년까지 '89조 감세'
문제는 재정수요에 따른 재원조달 방안이 없다는데 있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재원조달 성격인 비과세·감면 정비율은 고작 8%다(71개 항목 중 6개 종료). 과거 정부에서도 경제주체(기업)들의 투자심리를 깨우기 위한 '감세 인센티브'를 꺼낸 바 있지만, 이번 정부에선 세율 조정·제도 폐지 등 기업·부동산에 적용되는 과세체계를 아예 뜯어고치는 대수술을 감행한 바 있다. 세수 감소 규모만 수십조원에 이른다.
민간연구단체인 나라살림연구소가 내놓은 '2023년 세제개편안 세수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세제개편으로 2028년까지 총 72조4000억원(2027년까지 60조2000억원) 규모의 세수가 감소한다. 특히 올해 초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투자·연구개발 세액공제 확대조치로 세수는 약 13조원 줄어든다. 여기에 올해 세법개정안의 감세 효과(-2조9000억원)까지 포함한다면, 감세 규모는 향후 5년간 '89조원'에 달한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감세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국민에게 재정건전성과 감세는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시인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며 "역진적일 수밖에 없는 조세지출(세금감면) 정책 보다는 세금을 제대로 걷고 정책 목적에 맞는 재정지출로 전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했다.
올해도 조세정책은 '친기업 행보'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에 주요 기업체 건물들 모습.(사진 연합뉴스)
올해도 '친기업 환경 조성'에 초점을 맞춘 세제 손질은 이루어졌다. 가업승계에 따른 저율(10%) 과세를 적용받는 구간을 현 60억원에서 300억원까지 올렸다. 특히 '한 우물 경영' 규제라는 지적이 많았던 사후관리 제도도 고쳤다. 가업상속·승계 사후관리기간(5년) 동안 업종변경 허용범위를 '현 표준산업분류상 중분류에서 대분류 내'로 넓힌 것이다.
장수(長壽) 기업을 육성하고자 가업 상속(또는 승계)을 뒷받침하는 제도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현장의 사정을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이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과 교수는 "가업상속공제 같은 경우도 소분류에서 중분류 이후엔 대분류로 조금씩 변화하기 보다, 방향이 맞다면 과감하게 풀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법개정안에 여러가지 내용들이 들어가면서 구색은 갖췄지만, 세수 감소의 영향으로 법인세율 인하와 같은 중요한 부분이 담기지 않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