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적인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 도입한 증여세 완전포괄주의를 바탕으로 휘둘렀던 과세권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무효화' 되면서 국세청은 말 그대로 비상이 걸렸다.
지난 2003년 도입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2조3항 등은 재산의 무상이전 등 사실상의 증여에 해당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는 완전포괄주의 개념을 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에 대해 대법원은 조세법률주의와 납세의무자의 예측가능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포괄주의를 무제한적으로 적용한 사례에 대해 제동을 거는 판결을 줄줄이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0월15일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내려진 이후 현재까지 국세청의 패소로 귀결된 소송건이 20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세금을 토해내는 것은 물론 거액의 소송대리비와 이자(국세환급금)까지 얹어 물어줘야 하는 국세청의 발등에 커다란 불덩이가 떨어진 것이다.
□ 일선에 내려간 국세청의 '비밀지침' = 최근 대법원이 내린 판결에 따르면 수증자가 특수 관계인으로부터 부동산 또는 주식 등을 증여받아 실제 회사의 주식가치가 상승했더라도 흑자법인에 해당하는 경우 법인세 등을 이미 납부했기 때문에 증여세를 다시 과세할 수가 없다.
이는 2014년 이후 거래분부터는 적용되지 않는 판결이다. 2014년 세법개정에서 결손금이 없는 법인(흑자법인)이 재산을 증여받는 경우를 대비한 규정이 신설돼 이중과세 논란에서 벗어난 과세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법 개정 이전(2013년 12월31일 이전 거래분 관련) 완전포괄주의를 무기삼아 무더기 과세처분을 내렸고, 이는 대규모 '소송전'으로 비화됐다. 그리고 결과는 국세청이 보기좋게 패했다.
국세청은 최근 전국 6개 지방국세청 및 일선 세무서에 '흑자영리법인 주주에 대한 증여세 대법원 판결에 따른 후속업무 처리 지침'이라는 제목의 업무지침을 시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업무지침의 기본 뼈대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2004년~2012년까지 있었던 흑자법인 주주에 대한 증여세 과세와 관련해 문제가 된 상증법 제41조 및 제42조를 적용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또한 흑자법인에 자산을 증여해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가치 상승이익에 증여세를 부과한 건이 행정심에 계류 중인 경우 직권취소 결정을 내리도록 가이드라인을 쳤다.
이와 함께 결손법인을 통한 증여이익이 1억원 미만인 경우에도 직권취소를 하도록 했다.
아울러 현재 조사중이거나 착수전인 건에 대해서도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도록 했으며 2013년 이후 거래분은 상증법 제41조 및 제42조에 따라 과세하고 2014년 이후 거래분은 개정 세법에 따라 지배주주 등의 주식보유비율이 50%이상인 흑자법인인 경우 제41조에 따라 과세하도록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일선에 지침을 통해 완전포괄주의 패소판결이 있었다는 내용을 알리고 이 같은 부분이 쟁점이 되어 현재 조사나 검토, 이의신청, 심사, 심판단계 등에 있는 것이 있으면 대법원 판례 내용대로 조치하라고 전달했다"고 말했다.
□ "끝장 보자"…국세청의 위험한 '마이웨이' = 문제는 국세청이 결손법인에 결손금을 초과해 증여한 사건의 경우에는 계속해서 소송전을 이끌고 가겠다고 밝힌 부분이다.
국세청은 결손법인에 결손금을 초과해 증여한 사건이 행정심에 계류 중인 경우 불복을 유지하되, 추후 관련 해석에 변경이 있을 시에는 그 결과에 따라 처리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앞서 대법원은 판결문(2013두13297)에서 상증법 제41조1항은 결손법인과의 거래로 인한 이익 중 결손금을 초과하는 부분이나 결손금이 없는 법인과의 거래로 인한 이익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과세하지 않도록 하는 한계를 설정한 것으로 보아야한다고 판시했다.
판결문에 명확하게 적시되지는 않았지만 결손금을 초과한 증여는 사실상 흑자법인과의 거래와 같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증여세를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암시한 셈.
실제 결손금 부분은 상증법 제41조에 따라 증여세가 과세됐으며 결손금을 초과한 부분은 흑자법인과 마찬가지로 자산수증이익에 대해 이미 법인세가 과세됐다.
대법원이 흑자법인 주주에 대한 증여세 부분을 '이중과세'라고 결론 지은 마당에 국세청이 결손금 초과부분에 대한 증여세 부과를 유지하라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조세전문가는 "국세청은 해석을 달리해 대법원 판례에 정확히 나오지 않은 사안이기 때문에 불복을 유지해야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법원이 정확히 판시하지 않았지만 유사한 사례는 제41조를 적용해 과세하지 말라는 것인데 국세청은 대법원 판례에 적시되지 않은 것이라면 모두 과세해야 한다는 고집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