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정의(租稅正義)'.
이 단어가 2012년 대한민국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조세정의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사전적 의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조세평등주의와 같은 개념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흑룡의 해 임진년, 대한민국은 연이은 초대형 정치 이벤트로 들썩이고 있다. 4·11 국회의원 총선거에 이어 12월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1992년 이후 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정치의 해'인 것이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선거는 국가의 미래에 대한 투자다. 하지만 정치권의 입장에서 풀어본 선거는 '승리'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아니다. 표심(票心)의 무한자극을 위한 포퓰리즘(Populism)의 준동은 선거철만 되면 극에 달한다.
이미 '복지' 이슈가 부상, 정치권은 치열한 이슈 선점 다툼을 계속하고 있다. 복지 이슈에서 파생된, 현재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것이 바로 조세정의다.
조세정의는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상당히 낯선 이슈에 속한다. 현재 정치권이 말하고 있는 조세정의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부자증세'다. 
□ "대한민국 조세는 공정하지 않다(?)" = 일반 국민들이 체감하는 대한민국 조세는 공정할까. 이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내놓기는 힘들지만, 국민들의 인식 속에 자리잡은 조세의 현 주소를 알 수 있는 수치는 존재한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0년 한국 사회의 질적 수준 제고를 위한 미래연구' 결과에 따르면 각계 전문가가 평가한 우리 사회 공정지수는 10점 만점 기준 3.61점에 그쳤다.
이 정도 수준이면 대한민국 사회는 '불공정사회'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일반 국민들이 공정사회 구현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분야로 조세(27.8%)를 꼽았다는 결과도 나와 있다.
법전 속 제도는 공정할지 몰라도 국민들의 인식 속에서, 사회에서 작동하는 조세제도는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설명을 가능케하는 대목.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해 "조세정의는 수평적·수직적 공평성을 말한다. 수평적 공평성은 소득이 비슷한 사람들은 비슷한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고, 수직적 공평성은 더 버는 사람들은 누진적으로 더 많이 내는 것인데 한국은 이것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치권이 조세정의를 화두로 꺼내놓은 것은 '아귀'가 맞는 측면이 있다. 사회와 조세제도에 대한 불신과 정치권의 포퓰리즘 성향이 융합되면서, 부자증세를 간판으로 한 조세정의가 2012년 정치권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 '부자'(富者)들을 쥐고흔드는 정치권 = 정치권이 처음부터 조세정의를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조세정의 화두의 근본적 배경에는 '복지논쟁'이 자리잡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실정으로 팍팍해진 중산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 복지논쟁 촉발의 배경이다.
정치권은 앞다퉈 복지논쟁의 불을 지폈다. 민주통합당이 무상시리즈로 대표되는 '보편적 복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신호탄을 쏘아 올리자 한나라당은 박근혜식 복지로 요약되는 '단계적 복지'를 대응카드로 꺼내들었다.
복지논쟁은 지난해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전후해 극에 달했고 부자정당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던 집권여당은 결국 패배의 쓴잔을 들이켰다.
이후 복지 재원 확충을 위한 증세논의가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움트기 시작했다.
이른바 '한국판 버핏세'다.
한국판 버핏세는 부자증세를 복지논쟁의 핵심으로 떠오르게 만든 신호탄 격이다. 보편적 복지를 위한 재원은 각종 비과세·감면 축소로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민주통합당도 입장을 선회, 부자증세 논쟁에 발을 들여놨다.
□ '조세정의' 탈을 쓰고 나타난 '부자증세' = 현재 정치권이 화두로 밀고 있는 조세정의는 확실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다. '부자증세'다.
최근 일련의 정치권 동향에서도 이는 극명하게 증명되고 있다. 지난해 12월31일 수면 아래로 내려간 줄 알았던 고소득층 소득세율 인상 방안이 전격 국회를 통과했다.
'한국판 버핏세'다. 과표 3억원 초과 구간 신설 및 최고세율 인상(38%)이다.
민주통합당이 막판에 뛰어들어 '2억원 초과' 소득세 과표구간 신설을 골자로 한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한나라당에게 밀렸다.
민주통합당은 해가 바뀐 이후 공세의 끈을 바짝 죄고 나섰다. 당내에 '조세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 국민들이 현행 조세제도에 품은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획기적인 세법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나선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지향점은 '부자증세'다.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강화는 물론, 대기업들을 타깃팅한 '재벌세' 신설 검토안도 내놓았다. 이를 통해 복지 재원 확충과 함께 조세정의를 확립하겠다는 것이 민주통합당의 입장이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한나라당도 방법론만 다소 상이할 뿐 조세정의 확립을 위한 부유층 과세강화라는 '정신'은 대동소이한 모습이다.
□ "'조세정의' 쟁탈전은 시작됐다" = 중산서민층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일 수도 있지만, 정치권이 외치고 있는 조세정의 확립은 지극히 정치적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고 현실이다.
아직까지 구체화된 실체도 없을뿐더러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측면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윤곽이 잡혀나가겠지만, 현시점에서 놓고 볼 때 '현실화' 가능성에는 무수한 의문부호가 찍혀 있다.
그동안 정치권이 보여준 행태를 감안할 때도 섣부른 판단을 꺼리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일각에서 조세정의 이슈는 선거 이후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가능성을 현재로서는 더 높게 쳐야 한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떠나 '조세정의'를 둘러싼 정치권의 쟁탈전은 시작됐다. 문제는 '진정성' 있는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단순히 부자와 중산서민층을 구분하는 색깔론 측면에서 접근한 조세정의 확립은 진정성을 확보했다고 볼 수 없다.
기획취재팀 : 김진영 정책팀장, 유엄식, 장은석, 이희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