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복지제도

사회복지의 문제가 향후 선거에서 핵심 쟁점사항이 될 전망이다. 국가의 존재이유를 개별 구성원들의 복지(Welfare)증진 이외에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다. 그렇게 보면 선거에서 복지문제가 쟁점사항이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선거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선출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 올바른 프로그램과 정책을 가려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피선거권자들에게는 인생의 드라마가 연출되겠으나 선거권자들에게는 특정 인물이나 정파를 그들이 제시하는 정책의 합리성과 신뢰성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가 남의 잔치가 아니고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국민 개개인의 중요한 정치행위임을 우리는 이번 정부에서 더욱 절실하게 체험하고 있다.

현재까지 제시된 각 정파의 복지에 대한 그림은 아직 구체성이 매우 결여되어 유권자들이 그 내용의 합리성과 신뢰성을 판단할 단계가 아니다.

복지제도의 역사가 오랜 유럽 국가들의 선거에서는 동 제도 실행의 아주 구체적 내용이 선거의 쟁점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의료보험 재정이 악화되면 근로자들이 더 부담해야하는 의료보험요율을 급여의 1% 또는 0.5%를 더 올리는 것이 좋으냐, 혹은 의사가 처방한 약에 대하여 보험수혜자가 비용을 몇 유로 더 부담하게 하는 것이 더 나은 방안이냐 하는 것 등이다. 

복지제도의 큰 틀이 확립되어야 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와 같은 디테일이 선거에서 쟁점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무상복지냐 아니냐와 같은 프로파간다만 난무해서는 각 정파들의 입장의 적절성을 가리기가 매우 힘들다. 또 정치인들이나 정파들은 자기들에게 표를 확보하는데 불리한 발언은 함구한다.

이 단계에서는 학계나 사회단체에서라도 이들 직업정치인들에게 구체적인 질의를 던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논의가 겉돌게 되고, 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선거과정에서 올바른 복지제도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게 된다.

올바른 복지제도란 어떤 것인가? 국민들이 그 내용을 잘 이해하면서 선택한 복지제도가 올바른 복지제도이다. 어떠한 분야의 복지 혜택을 확대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고 또 비용은 국민들이 서로 어떻게 나누어 부담해야 하는지, 그 양지와 음지 측면을 잘 알면서 선택한 제도만이 오래 유지된다.

올바른 복지 프로그램과 이를 제안하고 실현할 대표를 선택하는데 필요한 판단의 기준이 되는 질문을 설정해, 정파에서 그들이 프로그램에 담을 구체적 내용에 대하여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해결책의 진솔성으로 정파는 판단되어야 한다.

어떠한 질문이 가능할까? 

복지의 내용과 수준을 논의할 때 무상복지라는 개념의 적절치 않음을 우선 지적하고 싶다. 사회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복지제도는 여러 분야를 포함한다. 그 중 일부 분야에서는 재원이 수혜자들에게서 부담되지 않고 재정에서 지원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 복지제도가 수혜자들 스스로 재원을 부담하는 일이 없이 무상으로, 즉 고소득자들이 부담한 세금으로 이루어진 재정에서 조달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무상복지란 개념은 비생산적인 정쟁의 대상이 될 뿐이며 복지에 대한 선동스러운 반대만 야기할 것이다. 

정치가들에게는 복지의 혜택을 확장하는 것보다 재원조달 방안에 대하여 얘기하는 것이 더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일이며 이에 대하여 방책을 들어야 한다.

우선 조세감면의 축소를 재원조달방안의 하나로 제시하는 정치가를 신뢰해서는 안된다.

기재부에서 발표하는 우리나라의 조세감면통계에서 감면액의 가장 큰 부분이 근로자에 대한 소득공제(2009년 기준 총 28조의 국세감면액 중 약 6조를 차지함)와 농어민에 대한 지원으로 구성된다.

근로자에 대한 소득공제(보험료, 교육비, 의료비 등에 대한)는 소득공제라는 형식 때문에 조세감면으로 분류되고 있으나 이는 소득세에서 응능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이며 기능적으로는 조세감면으로 분류될 부분이 아니다. 농어민에 대한 조세감면도 삭제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결국 조세감면의 축소 가능성은 매우 제한적이고 기대할 수 없다. 조세와 사회보장요율만이 복지제도를 위한 재원조달의 대안이 된다.

복지의 분야 중 보육과 교육 분야(무상급식을 포함한)는 재정으로 해결할 문제이다. 여기에서 혜택받는 사람들에게 재정분담을 요구할 방법은 없다. 따라서 예산을 얼마나 어떻게 사용해서 사보육과 사교육의 부담을 덜어주고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해줄 것이냐에 대한 프로그램을 정치가들은 제시해야 한다. 

의료보험은 커다란 쟁점사항이 될 것이다. 현재 국민들의 건강리스크는 의료보험을 통하여 부분적으로만 커버되고 있으며 자기비용의 부담이 크다. 의료보험비 외에 추가적으로 부담하는 사적인 의료비가 연간 25조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의료보험의 혜택은 늘려야 할 것이며 기본적으로 그 비용부담은 의료보험 가입자들의 몫이다.

우선 어느 정도로 혜택을 확대하느냐가 주요 쟁점이며 이에 따라 의료보험요율의 인상폭은 결정된다. 의료보험재정이 장기적으로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의료보험료를 납부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에 대하여는 의료보험비용을 정부가 재정으로 지원하여야 한다. 이 내용이 정치가들의 복지 프로그램에 구체적으로 밝혀져야 한다. 

의료보험과 달리 국민연금은 정부의 재정적 지원없이 전적으로 연금요율에 의하여 재정이 조달되어야 한다. 국민연금의 문제는 대다수 국민들이 노후보장에 국민연금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여금도 많이 내고 연금도 많이 받도록 제도를 점진적으로 개정해 나가서 연금이 국민들의 노후설계에 가장 중요한 기둥이 되도록 발전해 나가야 한다. 이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정치가들은 제시해야 한다.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의 강화는 이에 내재된 분배장치로 인하여 사회에서 부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큰 도움이 된다. 의료보험혜택은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고르게 받으나 보험료는 소득에 비례하여 납부하며 연금의 경우도 그러한 요소가 부분적으로 작용한다.

중요한 것은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의 강화가 노후안정, 질병으로부터의 보호, 양극화 해소 등 사회안정화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만 다른 한편 기업에 비용부담으로 작용하는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의료보험료와 연금갹출료는 근로자의 경우 급여에서 절반, 그리고 기업이 같은 금액을 부담하기 때문에 기업의 노동부대비용을 증가시킨다. 우리 현실에서 이러한 노동부대비용을 충분히 부담할 수 있는 기업도 많다. 그러나 많은 한계기업에게는 부담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지에 대한 정당과 정치가들의 제안들이 과연 장기적으로 실현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도 매우 중요하다.               

사회안정을 위한 복지의 다른 중요한 두 분야는 일자리와 주거에 관한 복지이다. 이 두 분야는 문제를 복지제도로 해결하기 이전에 시장에 선결과제가 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실업보험의 문제 이전에 노동시장에서는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어야 하고 주거문제와 관련하여서는 정부는 소형공공임대주택의 공급확대에 나서야 한다.

요약하면 선거에 임한 정치가와 정파들은 보육·교육, 취약계층의 의료보험 혜택을 위하여 예산을 얼마나 지원하고 이를 어떻게 사용할지, (기업의 노동부대비용의 증가부담을 충분히 감안하면서)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의 강화를 위하여 혜택수준과 보험료율을 어떤 속도로 올려갈지,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와 소형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하여 진솔하게 제안하여야 하며 유권자들은 이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