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상대적으로 조세저항이 덜한 고소득자만을 표적으로 한 증세(增稅)를 선택했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금액) 구간을 늘리고, 현행보다 3%포인트 높은 45%의 세율을 매기기로 한 것이다. 소득이 더 많은 근로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둬 소득재분배율이 높이겠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는 둘째 치고, '낮은 세율, 넓은 세원'이란 조세의 원칙에 어긋난 행보라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2일 기획재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0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 고소득자 세금 얼마나 더 내야 하나 |
◆…(자료 기획재정부)
개정안에 따르면, 소득세 과표 구간에 '10억원 초과'를 새로 만들고, 현행 최고세율보다 3%포인트 인상한 45%를 적용한다. '5~10억원' 구간의 세율은 42%다. 현재는 5억원 초과 때 42%의 최고세율을 적용받는다.
이 조치로 직접적인 증세 대상은 약 1만60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양도소득세를 제외하고 근로·종합소득세 기준으로는 상위 0.05% 해당하는 약 1만1000명이 과세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과표 30억원을 적용받는 근로자가 있다고 치자. 기재부에 따르면, 현재의 42% 세율을 적용했을 때 산출세액은 약 12억2460만원인데, 세율 개정 후에는 6000만원이 늘어나게 된다. 기재부는 이 같은 세법개정으로 9000억원 수준의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분배상황 어렵다'…최고세율 인상 이유 |
◆…(OECD 국가 소득세 최고세율 현황, 자료 기획재정부)
정부가 소득세 최고세율이 인상하려는데는 계층 간 소득격차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조세의 재분배 기능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올해 1분기 하위 20%(1분위) 근로소득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3% 줄었고,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5분위 배율은 1년 전(5.18)보다 0.23커졌다. 5분위 배율은 숫자가 커질수록 소득 불균형이 깊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지방세를 포함했을 땐 49.5%까지 치솟는다. 이러한 인상 폭을 가져가더라도 우리나라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국가들과 유사한 수준이라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현재 국민소득 3만 달러·5000만명 이상인 6개국(우리나라 제외)의 평균 소득세 최고세율은 43.3%(지방세 포함 49.1%)다.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도 최고세율을 45%로 운용하고 있다.
다만, 부담 능력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응능과세원칙'만을 강조하다 보니 '표적 과세'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모양새다. 여전히 다수의 중산·저소득층은 '무세(無稅) 근로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내에서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는 2018년 기준 38.9%다. 홍남기 부총리는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상대적으로 그 파급영향이 비교적 다른 분야에 비해서 크지 않고 또 담세여력도 있다고 생각되는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해서 아주 제한적으로 최고세율을 부과하게 됐다"고 말했다.
| 가상자산 기타소득 과세…年 250만원 까진 비과세 |
거주자가 가산자산을 양도하면 기타소득으로 과세된다. 상표권 등 무형자산에서 발생한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과세하고 있는 현행 과세체계 등을 감안해서다. 양도대가(시가)에서 취득가액·부대비용을 뺀 금액을 과표(가상자산 소득금액)로 삼고 20%의 세율을 적용한다.
단, 가상자산 소득금액이 연간 250만원을 넘지 않는다면 과세되지 않는다(비과세). 예컨대. 가상자산 소득금액이 400만원이라면, 과세 최저한 금액인 250만원을 제외하고 150만원에 대해서만 과세된다는 소리다.
납세의무자는 매년 종합소득세 신고(5월1일~31일) 때 가상자산 거래소득을 연 1회로 신고·납부하면 되는데, 종합과세 대상에서 제외해 별도로 분리과세를 할 수 있다.
비거주자나 외국법인은 '국내원천 기타소득'으로 과세된다. 가상자산 사업자는 매달 원천징수 세액(양도가액의 10%, 양도차익의 20% 중 작은 값)을 다음 달 10일까지 납부하면 된다.
과세적용 시기는 내년 10월 1일부터다. 기재부는 "가상자산 개념 등을 정의하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의 시행 시기, 가상자산 사업자들의 과세인프라 구축 준비기간 등을 고려해 시행시기를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 액상형 전자담배 세율 오른다 |
◆…(자료 기획재정부)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개별소비세율이 니코틴 용액 1㎖당 370원에서 740원으로 오른다. 담배 종류 간 세율 차이로 인한 '과세 불형평'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4500원 판매가 기준으로 현재의 세율비율을 보면, 궐련이 100·궐련형 전자담배는 90인데 반해, 일반 담배 1갑으로 보는 쥴의 '팟' 1개(0.7㎖)는 43.2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난해 신종담배의 판매를 계기로 '액상형 전자담배 세율이 낮다'는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적정세율을 구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실시한 바 있다. 용역 결과에 따르면, 궐련 1갑은 액상형 전자담배의 액상용량 약 0.8㎖와 니코틴 배출량, 흡입횟수가 동일한 것으로 분석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궐련 1갑과 흡연 효과가 동일한 액상용량을 산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세율을 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개소세 과세대상 담배의 범위에 연초의 '뿌리·줄기' 추출 니코틴 등을 원료로 해서 제조된 담배도 들어간다.
| 초과배당 증여이익에 대한 과세 강화 |
현재 초과배당(차등배당)에 대해서 소득세와 증여세를 비교해 큰 금액을 과세하고 있는데, 앞으론 증여세와 소득세 모두 과세된다. 다만, 증여가액을 산정할 때 초과배당금액에서 배당소득세액은 뺀다.
차등배당이란 법인의 주주들이 지분비율에 따라 균등하게 배당받지 않고 주주간 배당금 또는 배당률을 달리한 배당을 말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대주주가 직접 배당을 받은 후 자녀 등에게 증여하는 경우와 비교시 세부담이 감소해 조세회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최대주주가 배당 받은 후 증여하는 경우와 동일하게 증여세와 배당소득세를 함께 부과하는 것이 과세형평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또 매출액 1000억원·자산 5000억원을 초과하는 대규모 조합법인에 대해선 과세특례를 적용하지 않는다. 2018년 기준으로 대상 조합법인 수는 244개다. 현재 농협, 수협 등 단위조합법인에 대해 낮은 법인세율이 적용(과표 20억원 이하 9%, 20억원 초과 12%)되고 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는 모든 이자·배당소득 과세특례 상품의 신규가입이 제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