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직접 감리하고도 부실 징후 못찾아…실효성 논란
회계감사는 공공재…회계 투명성 위한 인식 전환 필요
기업에 대한 외부감사인의 회계감사가 공신력을 잃어가고 있다.
감사보고서를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투자자들에게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기업은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만큼 정확한 재무정보와 경영상황을 공시해 투자자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도 기업들의 분식회계가 줄어들지 않고 있고, 이를 외부감사인이 발견하지 못하는 감사실패가 이어지면 회계투명성을 위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 5년간 분식회계 기업 312곳 적발 =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3년 3월 말까지 분식회계와 관련해 행정조치를 받은 기업은 총 312곳이고, 이 중 143곳은 단순 회계기준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분식회계를 일으켰다.
고의적 분식회계는 위법사실이나 그 가능성을 알고도 분식회계를 한 경우로, 중요사실에 대한 의도적인 은폐와 중요 문서의 위·변조, 횡령·배임 등 부정한 방법으로 외부감사를 방해한 일체 행위를 말한다.
또 이 기간 분식회계로 검찰에 고발하거나 통보된 건은 모두 332건에 달했고, 이중 검찰고발은 223건, 검찰 통보는 109건이었다.
김영진 금융투자협회 세제지원실장은 지난 9월 30일 조세일보 주최로 열린 '제1차 회계감사품질 대토론회'에서 "중국고섬의 분식회계 및 상장폐지로 피해자 양산은 물론 지난 3년 동안 중국 기업의 국내 IPO는 전무했다"며 "감사보고서의 공신력에 의문을 갖게 되면서 신뢰에 기초한 금융시장 시스템 작동에 심각한 장애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감사실패로 인한 기업의 분식회계가 우리 자본시장 발전을 좀먹고 있다는 지적이다.
□ 금감원 감리, 분식회계엔 '까막눈'?=기업들의 분식회계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데는 금융감독원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달 16일 열린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금감원이 직접 감리를 하고도 분식회계를 발견하지 못한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기식 의원에 따르면 2004년 1월 1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금감원은 효성과 한솔제지, 삼우이엠씨, 희훈 디앤지, 엑사이앤씨, 인성정보, 파캔오피씨, 신텍에 대한 직접 회계감리를 진행했지만 법규위반 가능성이 없다며 종결 처리했다.
그러나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 조사 등을 통해 이들 기업의 분식회계가 드러났다.
효성은 2005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재고자산과 유형자산을 허위로 계상해 자기자본을 과대계상하는 방법으로 매년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까지 분식회계를 해 총 1조3000억원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효성이 한창 분식회계를 벌이던 2007년 금감원은 효성을 대상으로 회계감리를 실시했지만 분식회계를 발견하지 못하고, 국세청이 세무조사에서 탈세 등 분식회계를 확인하고서야 2차 감리에 나섰다.
한솔제지는 2003년부터 2010년 6월까지 회사 소유의 국민주택채권을 처분하고 선물투자 등에 사용했는데, 회사는 이를 매도 가능증권으로 계상해 24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그러난 금감원은 2006년 한솔제지에 대해 회계감리에 나섰지만 분식회계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후 2011년 검찰로부터 통보를 받은 뒤 2차 감리에 나서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검찰 수사와 국세청 세무조사와는 달리 금감원 감리는 재무비율분석과 회사 소명자료 등에 의해 실시되므로 특이한 변화가 없거나 회사가 증거자료를 고의적으로 조작하거나 은폐하면 분식회계를 적발하기 곤란하다"고 해명했다.
기업이 작정하고 분식회계를 한다면 이를 적발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금감원의 자조섞인 설명이다.
그러나 김기식 의원은 "기업의 회계투명성 제고는 우리 자본시장 발전의 전제조건인데 금감원이 감리를 실시하고도 분식회계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무능함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고 질타했다.
□ 기업·감사인·투자자 상생…회계 투명성이 '해답'=사실 기업의 회계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성숙을 기대하기 어렵다.
즉 기업의 회계 투명성 제고는 우리 자본시장 발전의 전제조건이고, 이를 위한 인프라가 바로 외부감사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회계감사를 '공공재'라고 말한다. 기업 회계정보의 신뢰성을 담보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의사결정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분식회계를 저지르거나 이에 가담한 감사인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승렬 한국상장사협의회 회원지원본부장은 "분식회계를 저지르거나 감사인에게 부당한 요구를 한 기업과 이에 가담한 회계법인은 일벌백계하는 등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회사의 대외적인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회계감사 수임료를 두 배 이상 인상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회계감사에 소극적이며 수임료를 삭감하려는 대부분의 기업들과 달리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는 판단한 것이다.
기업은 성장을 거듭할수록 자기자본만이 아니라 주식이나 채권 등의 증권을 공모해 외부 투자자를 적극 유치한다.
이런 상황에서 회계 투명성 확보는 외부 투자자에게 우호적인 투자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에 당연히 기업의 이익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회계감사 투명성 확보가 곧 지속 성장을 바라는 기업과 외부감사를 담당하는 회계법인들이 공존하는 '길'임을 기업과 외부감사인, 투자자 등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년공인회계사회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은 회계감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감사보고서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나올 수 있도록 컨트롤하려 한다"면서 "기업들이 지속 성장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