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수원세무서의 모습은 언제나 활기차다. 아침 7시 이전에 대부분의 사무실에 불이 들어오고,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불은 좀처럼 꺼질 줄을 모른다.
드넓은 주차장은 쉴 새 없이 드나드는 민원인 차량들로 꽤나 번잡하고, 출장차 드나드는 직원과 세무서를 찾은 납세자들로 현관문이 닫혀있을 틈이 없다.
동수원세무서엔 5년 안팎 경력의 9급 직원들이 유독 많다. 이들이 관장하는 세무서 업무가 과연 원활하게 처리되고 있을까. 또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납세자들은 이들의 일천한 경력 때문에 겪어야 할 불편은 없을까. 세무서의 하루를 살펴 본다.
■ 7시 이전 출근이 일상화된 세무 공무원들
올해로 국세공무원을 시작한지 5년째인 서은철 조사관(31세)은 아침 7시 이전에 세무서로 출근하는 일이 일상화 돼있다.
아직 9급 딱지를 떼지 못한 그가 근무하는 곳은 중부지방국세청 산하 29개 세무서 전체를 통틀어 일 많기로 소문나 대부분의 직원들이 근무하기를 꺼린다는 동수원세무서 그중에서도 부가가치세과다.
그가 매일아침 새벽공기를 가르며 출근해야 하는 이유는 공무원들의 법정 출근시간인 9시가 돼서야 밝혀졌다. 9시를 넘기자마자 하나 둘씩 울리기 시작한 전화벨소리는 자기 전화부터 받아달라는 듯 사무실 전체를 요란하게 뒤흔든다.
여기에 10시경에 이르러서는 하나둘씩 모여든 민원인들의 고함소리로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기조차 힘든 상황이 연출된다. 대뜸 고함을 치며 나타난 민원인들은 세무서 직원들의 차분한 설명을 듣고나면 대부분 조용히 돌아간다.
서 조사관은 “직원들이 하룻동안 받는 민원인 전화가 적게는 30통에서 많게는 50통에 이르고 이 사무실에만 하루 100명이 넘는 민원인이 찾아온다”며 “정상근무 시간엔 맡겨진 업무를 도저히 들여다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조기출근과 야근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동수원세무서 재산세과에서 7급 한시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세무사 강지희(사진)씨는 “공무원 하면 아무래도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칼퇴근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와서 보니 고정관념을 바꿀 만큼 이곳 직원들의 고생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베테랑 못지않은 9급… 국세청 미래의 주역들
국세공무원 경력이 오래된 베테랑 직원들은 “7급․9급 공채시험을 통해 들어온 신규직원들을 데리고 일을 하면, 도움은 커녕 되레 짐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아무것도 모르는 1～2년차 까지는 계장이나 반장이 옆에 붙어 하나하나 일을 가르쳐야 하고, 3～4년차는 돼야 어느 정도 말귀를 알아듣는 수준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자기 일을 찾아서 스스로 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이르고 시킨 일이나 제대로 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선임들은 입을 모은다.
그것도 과거의 이야기일 뿐 현재는 국세청의 순환보직 인사운영시스템에 따라 5년 미만 신규직원들은 세무서의 각 과를 1년씩 근무하며 경험을 쌓고 있기 때문에, 5년이 되기까지 신규직원들은 각 과에 처음 배속되는 것이어서 1년차 직원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동수원세무서에 근무하는 9급 직원들은 뭔가 달라도 많이 달라 보인다. 부가가치세과 서은철 조사관(31세, 사진)과 소득세과 민애희 조사관(30세)은 체납정리 현금징수 실적에서 베테랑 직원들을 제치고 중부청 전체를 통틀어 10위 안에 드는 실적을 올린 것이다.
이들의 실적을 눈여겨 봐야 하는 이유는 근무부서가 다름아닌 부가가치세과와 소득세과이기 때문이다. 법인세과와 재산세과의 경우는 체납금액이 기본적으로 크기 때문에 어쩌다 거액의 체납 정리 실적을 올릴 수 있지만, 이곳은 자잘한 체납자 수백명을 상대해야 하는 부서이다.
민 조사관의 경우 지난 6월부터 11월말까지 6개월 동안 체납세금 7억3600만원을 현금으로 징수했다. 이를 위해 상대한 사업자가 519명이나 된다. 영세사업자들을 상대로 그가 얼마나 적극적이고 또 창의적으로 일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서 조사관은 “사업자들이 세금을 내지 못하는 이유를 알기 때문에, 무조건 납부를 독촉하지 않는다”며 “자주 전화를 걸어 오늘은 장사가 잘됐는지 물어보기도 하며 납세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고 실적 비결을 귀띔했다.
사업이 어려워 세금을 내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 해주면서 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세금이고 늦게 내게되면 그만큼 여러 불이익이 따르는 것을 이해시키면서 납세자와 같이 어떻게 세금을 낼 것인지 계획을 세운다는 것.
그는 특히 “체납정리를 하면서 실질적으로 어려운 것은 내가 받을 돈이라면 포기하고 싶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라며 “종업원 월급도 제대로 못주는 사업자에게 세금 내라고 할 때나 세무서에 찾아와서 울먹거리면서 딱한 사정을 하소연 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동수원세무서 9급 직원들이 세무서의 존재이유가 납세자와의 상생에 있음을 벌써부터 깨우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한 세무사는 “처음부터 현장에 뛰어드는 이곳 동수원세무서의 9급들은 다른 곳의 9급들과 동급으로 봐선 아니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지난 여름 수임업체가 소명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세무서에 들렀는데, 담당자가 9급이라서 솔직히 처음엔 얕본 것이 사실”이라며, “대충 넘어가려 했다가 창피만 당했다. 동수원세무서는 직원들을 제대로 키우고 있음을 알게됐다”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 되레 큰소리 치는 납세자… 인력 부족의 '한계'
국세청 안팎에선 “세무조사는 성실납세를 담보하기 위해 이뤄진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세청 세무조사가 꽤나 무섭게 이뤄지기 때문에, 극소수 납세자들에 대한 세무조사만 벌여도 대다수 납세자들에게 일종의 ‘경종’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수원세무서에선 조사권한을 쥔 세무공무원이 세무조사라는 경고음을 내는 것이 아니라, 조사를 받아야 할 납세자들이 ‘세무조사를 하려면 해 보라’는 식으로 되레 배를 내미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도 일어난다.
이같은 현상은 법인세과를 비롯해 부가가치세과와 소득세과 등 직접 세무조사를 할 권한은 없고,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납세자들의 명단을 조사과로 이첩시키는 부서에서 이따금씩 일어난다.
세무서 직원들은 “세무서 상황을 뻔히 아는 사람들은 세무서 인력이 부족해 세무조사가 필요해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꿰고 있다”며 “탈세혐의가 있어서 납세자에게 소명을 요구하면, 일부 납세자들은 되레 더 큰 소리를 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세무서 조사과의 조사전담 인력은 8명으로 2인1팀으로 4개팀을 만들어 운영하는 상황. 세무조사를 받는 입장에선 2인1조의 세무조사팀을 만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세무서 입장은 다르다.
조사는 반드시 2명 이상이 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이나 출산휴가 등에 따른 결원이 발생하더라도 세무조사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선 3인1팀 운영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2명이 현장에서 조사를 하더라도 1명이 분석 등의 내부업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수원세무서 납세자인원은 8만명에 육박하는 상황. 큰 법인은 지방국세청 조사국에서 조사를 한다 하더라도, 4개팀으로 조사를 하기엔 극소수 세무조사로 경종을 울리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 지역주민과 동고동락… 섬김 세정 앞장
동수원세무서가 위치하고 있는 자리는 과거 경인지방국세청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곳이다. 때문에 동수원세무서는 대지(9580㎡, 2903평)가 넓지만 울타리가 따로 없다.
편안한 벤치까지 갖춘 청사 안의 넓은 정원은 시민들에게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세무서 직원들은 납세자를 포함한 시민들이 편하게 세무서를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 언제나 환경미화를 통해 깨끗한 세무서를 유지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영통사회복지관 독거노인들의 도시락 봉사와 함께 나사렛집 성금전달 등의 봉사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명절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소외계층과 따뜻한 정을 나눈다.
경기도 오산시의 두곡1동 마을과는 1사1촌 자매결연을 맺어 농번기 때의 일손 도움은 물론 판로개척을 통해 농촌의 소득을 높이기까지 바쁜 와중에도 기꺼이 한 팔을 내놓고 있다. 지역주민과의 동고동락(同苦同樂)을 통한 섬김 세정을 활발히 실천하고 있다.
■ 주광열 세무서장의 '짝 맺어주기' 크리스마스 깜짝 선물
젊은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소통하는 주광열 세무서장은 옆구리가 시린 젊은 직원들이 든든한 월동장비(?)를 마련,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지내도록 하기 위해 아주 특별한 깜짝 선물 을 했다.
경력이 짧은 직원들이 많은 동수원세무서는 미혼 직원도 많은 편이다. 주 서장이 은밀하게 확인한 결과 미혼 직원 가운데는 애인이 없는 직원도 총각이 15명, 처녀가 18명이나 됐다.
특히 이들 직원들은 지난 여름 내내 조기출근에 야근까지 잦아 데이트는 커녕 애인을 찾을 시간적 여유도 갖지 못했고, 세무서 내의 다른 부서 직원들의 신상파악조차 못할 만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 서장이 급기야 팔을 걷어 붙였다. 자기 머리를 깎지 못하는 직원들을 위해 기꺼이 이발사 노릇을 자처했다.
주 서장은 지난 23일을 ‘짝-프로젝트’의 ‘D-데이’로 정하고, 세무서 내 처녀와 총각들의 자체적인 만남부터 시도한다는 계획을 은밀히 세웠다.
행사는 관내에서 웨딩홀뷔페 사업을 하는 노련한 짝 전문가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푸짐한 음식으로 직원들의 연심을 흔들어 짝을 맺도록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