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복지' 시험대…대선 정국서 구체화해야
0~2세에 대한 보육예산 고갈사태로 인해 무상보육정책에 빨간 불이 켜졌다.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 간 해결법이 다른데다 실무를 집행하는 지자체 역시 추가예산을 지원할 방법이 없어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야 모두 올 연말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며 '복지'를 강화할 전망이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무상보육 뿐 아니라 복지정책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하듯 재정여건에 대한 고려 없이 '복지'만 외칠 경우 '보육예산 고갈사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번 보육예산 고갈을 불러온 데는 '복지'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준비 없이 따라간 데에 있다.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에서 새누리당의 주도로 '0~2세 보육료 무상지원'이 갑작스럽게 통과됐는데 이는 앞서 치른 10.26 서울 시장 재보궐 선거의 패배에서 비롯된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무리하게 추진하며 투표율 33.3% 미달로 투표함 뚜껑조차 열지 못한 '굴욕'을 맛본 새누리당이 추락하는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4.11총선을 겨냥한 무상보육안을 내놓았던 것.
갑작스런 재원 마련을 위해 보육료 3697억원을 증액, 관련예산만 총 1조 8606억원을 편성했다. 이렇게 무상보육 정책을 급하게 편성하고 증액을 하다 보니, 재원 마련에 실패, 시행 4개월 만에 좌초되는 위기를 맞게 된 셈이다.
때문에 재정마련과 예산 조율 등에 대한 검토가 없을 경우 '복지'수혜를 제대로 받기도 전에 '폐단'만 겪게 될 수 있어 여야 '복지'정책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 더욱이 19대 국회 여야 모두 '민생'을 강조해 개원 첫날인 지난 5월 30일 제1법안으로 '복지'법안을 내놓았다.
새누리, 0~5세까지 보육 확대, 3~4세 양육비 지원도 공약...구체성 떨어져
먼저 새누리당은 현재 0~5세까지 보육지원을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영유아 보육법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다. '박근혜표 복지'인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에서 총선공약인 '가족행복 5대 약속'을 기반으로 한 '희망사다리법'이 그것이다. 새누리당은 내년 3~4세까지 보육료를 지원하는데다 양육비도 총선공약으로 내놨다.
문제는 이에 대한 재정 마련과 예산 조정에 대해 정확히 밝힌 게 없다는 점이다. 0~2세 무상보육이 좌초되는 상황에서 5세까지 보육료 지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해법이 없다보니 새누리당과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복지'가 대선용 '포장'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박근혜 경선캠프'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은 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만들어놓은 것은 그야말로 안(案)이고 현실에 타당한가 아닌가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 유승민 의원도 당 무상보육 정책에 대해 "속도조절이 좀 필요하다고 본다. 밀어붙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다.
앞서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새누리당이 내놓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실현하려면 복지인프라 확충이 선결돼야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며 "그런데도 새누리당의 공약을 살펴보면 복지인프라를 확충하겠다는 내용은 발견할 수 없다"고 꼬집은 바 있다.
새누리당은 또한 무상보육 외에 '반값등록금'을 위한 '사립학교법 개정안'도 입법한 상태다. ▲교비를 등록금 회계와 비등록금 회계로 구분하여 등록금의 사용을 제한 ▲등록금 심의위원회의 심의 의무화 ▲공인회계감사제도 도입 등으로 대학의 투명 회계 관리를 유도해 등록금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공동대표는 언론 기고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평가할만하다"면서도 "그러나 근본적으로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경감시킬 방안이나 획기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은 들어 있지 않고, 사립학교 재단의 차입금 상환에는 등록금이 사용될 수 있도록 조항을 만드는 등 대학 등록금 부담 완화와 동시에 대학교육의 질적 개선을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와 요구에는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민주, 반값등록금법 "국민적 공감대 얻을지 의문"
민주당 역시 민생법안 19개를 127명 의원전원이 서명해 발의한 상태다. 그중, 한명숙 전 대표가 대표 발의한 제1호 법안인 '반값등록금법'(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은 고등교육재정이 국내총생산(GDP)의 1%가 되도록 내국세 수입의 8.4%까지 단계적으로 교부금을 인상하고 등록금 상한액을 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반값 등록금의 재원 마련 방안과 등록금 산정위원회 설치 방안 등은 들어 있으나,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대학 운영의 투명성 강화나 국가의 재정지원이 대학 교육의 질적 개선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책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아직 고등학교 의무교육도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매년 5조 원 규모에 이르는 국민의 세금을 대학 등록금 지원에 투입하는 것이 과연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의 방안을 조세개혁과 재벌개혁에 맞추고 있다. 이에 새누리당은 "서민과 중산층의 세금부담을 늘려 중산층이 붕괴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박근혜 대선 캠프'의 정책메시지본부장을 맡은 안종범 의원은 지난 총선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복지는 후대의 빚을 내서 이번 세대가 복지혜택을 누리는 구조"라며 "재정건전성을 고려해야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보육예산 고갈사태로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최대이슈가 된 것처럼 이번 대선 정국에서도 무상보육을 비롯한 '복지'가 판가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복지국가 소사이어티는 전날(5일) 무상보육 고갈사태와 관련, 논평을 통해 "정부의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도록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은 공무원의 직무 유기"라고 일갈하면서 "사전에 지방정부와 협의를 하지 않은 기획재정부와 예산을 심의한 국회, 특히 날치기를 감행하였던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재벌가의 손자들에게까지 보편적 무상보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서 "소득 하위 70% 계층만 혜택을 보는 보육이라면 세금의 대부분을 부담하고 있는 소득 상위 30% 국민들이 자신들은 혜택을 누리지도 못하는 보육복지 예산의 증액에 따른 추가적 세금 부담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극심한 양극화로 '복지'가 시대정신이 된 만큼 대선정국에서 복지정책을 구체화하지 않고 '구호'로써만 외친다면 제2의 고갈사태가 나올 수 있다"며 "여야 모두 정책 실현방안을 내놓고 국민에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