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세·법인세 추가 감세계획이 내년도 예산안에서 빠졌다. 한나라당과 정부가 고위 당정청회의를 통해 추가감세를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세법개정안이 발표되던 날, 미리 배포된 자료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하고 당정청회의 결과를 기다리던 재정경제부 출입기자들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고 전한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낮추지 않더라도 법인세 감세는 예정대로 시행하자고 정부가 막판까지 버텼지만 선거를 의식한 한나라당의 완강한 반대에 부닥쳐 결국 손을 들었다고 한다.
이명박(MB) 대통령의 대선공약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감세정책까지 뒤집어진 것이다. '줄줄이 공수표가 된 MB노믹스(MB의 경제학)', 'MB노믹스의 파산선고'라는 격한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막상 MB측근들은 "MB노믹스가 철회된 것이 아니라 유예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법인세 감세를 철회하는 대신 법인소득 2억~500억 원 구간을 신설해 20% 세율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한 점을 내세운다.
법인세 감면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투자를 늘리겠다는 MB의 철학은 변한 것이 없다고한다. 25%이던 법인세율을 22%까지 낮추었고, 이제 남은 것은 2%포인트인데 상대적으로 어려운 중소기업에 대해서만 세율을 20%로 감세해주고 최근 이익이 많이 난 대기업은 2~3년은 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여건에 따라 계획을 수정한 것이라는 해명들이다.
하지만 2단계이던 법인세율을 3단계로 복잡하게 만든 것부터가 또 하나의 문제다. 한나라당에서는 세수확대를 위해 500억 원이 아닌 100억 원 구간을 신설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추후 변경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얘기다.
법인세를 단순화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인 상황에서 과표 구간을 3단계로 더 늘리는 것은 문제다. 경기침체로 당장 세수가 줄어드는 것만 생각해 세율을 높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성장 동력을 훼손해 세수증대에도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예정된 감세를 전제로 투자했던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로 인한 기업 활동위축이 세수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반(反)기업적' 처사라고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MB노믹스는 한마디로 '작은 정부, 큰 시장'이다.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풀어 기업투자를 활성화하고 새로운 성장산업을 키워 '7% 경제성장, 일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강국 진입'을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 '747'공약은 애초 목표자체를 무리하게 잡은 데다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일찌감치 '공약'(空約)이 됐다.
감세와 더불어 '작은 정부'의 상징이었던 공기업 민영화는 2008년 촛불사태 여파로 전력, 철도 같은 핵심 분야에는 손도 못 댄 채 7개 기업을 민영화한 것으로 막을 내렸다. '공기업 선진화'도 구호에 맴돌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부 보유 지분 일부를 국민주방식으로 매각하려는 계획도 외국기업에 대한 특혜설, 국부유출 주장, 매각대금 사용처 논란 속에 파묻혀 있다.
교육·의료 같은 서비스산업 규제를 풀어 성장산업으로 키운다는 서비스업 선진화 역시 관련부처 간의 입씨름으로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 8개 분야 695개 과제를 선정해 5차례나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서비스업 활성화에 나섰지만 핵심 사업들은 진척이 없다.
의료 서비스 질을 높이겠다며 추진키로 했던 영리법인의 경우 보건복지부의 반대로 겉돌고 있고 경제자유구역 내에 외국유명학교를 유치하는 사업 역시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발 빠른 경기부양책으로 남보다 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는 성과를 거두기는 했다. 그러나 성장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물가는 치솟고, 국제경쟁력은 해마다 내리막길이다. 저금리 기조는 물가를 끌어올리며 버블을 키웠고, 그 결과 가계 빚이 1000조원을 넘어서며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MB정부 출범이후 21차례에 걸쳐 부동산활성화대책을 내놓았지만 결과는 주택거래량 감소와 매매가격하락에 이은 전·월세가격의 폭등이었다.
시대착오적인 물가통제방식으로 물가를 잡으려는 MB정부의 물가관리와 그 대책은 '시장중심 경제운용'이라는 기본원칙을 누누이 되묻게 만들고 있다. '작은 정부, 큰 시장'을 향한 MB노믹스의 로드맵에 대한 역주행이라는 평가들이다.
MB노믹스는 대기업과 부자들의 과실이 아래로 흘러내릴 것이라는 '낙수효과'(트리클다운: trickle-down)에 바탕을 뒀다. 이는 환상이었다. 대기업과 부자들의 부는 늘고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양극화만 심화됐다.
'대기업들은 감세, 저금리, 수출증대 등을 통해 많은 이익을 냈지만 사회적인 기여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청와대에서 나올 정도였다. 야당은 '부자감세'를 물고 늘어졌고, 민심이반을 걱정한 여당의 거센 압박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들에 투자와 고용을 압박하고, 골목상권 잠식과 대기업계열회사 일감몰아주기에 '채찍'을 들고, 공정사회와 동반성장, 공생발전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로 이어지는 MB정부의 일련의 '대기업 옥죄기 시리즈'는 MB노믹스의 실패에 대한 자기고백이다.
내 건 목표와 비전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반대의견에 대한 논리적 무장과 설득, 정책추진의 구심점과 리더십 모든 면에서 무능과 부족이 실패를 자초한 것이다.
MB노믹스 실패이후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부 경제정책의 방향성 상실이다. 글로벌 금융쇼크가 장기화되면서 그 위기가 실물경기로 급속하게 번지고, 수출대기업들의 매출목표달성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한국경제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추석연휴가 끝나면 저축은행에 대한 구조조정, 물가의 고공행진, 유로존의 대규모 채권 만기도래 등 해외변수로 벌써부터 '추석 이후'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와 한나라당은 구체적인 재원조달에 대한 치밀한 검토 없이 하루가 멀다 하고 친서민대책을 쏟아내는 데 골몰하고 있다. 추석 전 비정규직 대책과 청년창업 활성화, 대학등록금 부담완화 등 '친서민 종합선물세트'에 이어 추석 후에도 저출산 보육대책과 일자리 창출대책 등을 줄줄이 발표할 예정이다.
이 모두가 선거를 의식해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모양새다. 반값등록금이나 무상급식 등 야당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을 손가락질 해 온 정부 여당이 스스로 포퓰리즘에 매몰되는 형국이다.
대통령의 '변심'에 대기업들이 등을 돌려 '집토끼'마저 놓치고 있다는 얘기도 고개를 든다. 포퓰리즘에 MB노믹스가 무너지면서 방향성을 상실한 MB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한나라당에 끌려 또 다른 포퓰리즘에 매몰되는 일이 없도록 MB는 지금부터라도 '경제대통령' 다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