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 몰아주기 과세, 이번에는 가능할까?

'완전포괄주의'를 뛰어넘는 편법 증여

세간에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재벌세법'이라는 말이 있다. 재벌 기업주가 세금을 피하는 새로운 유형의 증여나 상속기법을 선보이면 정부는 뒷북치듯 세법을 바꾸는 일이 반복돼 생긴 말이다.

공익법인을 활용한 증여 및 상속,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신종사채를 이용한 편법증여, 상장주식의 임직원 명의신탁을 이용한 상속세 회피 등 '재벌세법'은 수없이 많다.

이러한 재벌의 편법상속 및 증여행태를 보다못한 노무현 정부는 2004년 위헌논란 속에서도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완전포괄주의 과세로 전환시켰다. 그 이후에는 한동안 새로운 편법증여나 상속이 등장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재벌의 2세 승계가 어느 정도 끝났거나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을 뿐 편법 증여·상속이 멈춰진 것은 아니었다.

본질적으로 증여는 일정 시점에서 재산을 무상이전하고 증여세는 이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그런데, 일정 시점에서 증여는 물론 경제적 실질이 비슷한 행위에 대하여 무차별적으로 과세할 수 있는 완전포괄주의를 뛰어넘는 3차원의 증여행태가 출현했다. 가치가 크지 않은 주식이나 부동산을 증여하거나 이를 가진 사람에게 거래를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재산가치를 높여주는 이른바 '물량 몰아주기'가 그것이다.

이는 주식가치가 높아진 주식을 직접 증여하거나 완전포괄주의 세제 도입으로 과세대상으로 흡수된 거래 대신 특수관계자가 대주주인 자회사에 그룹사의 물량을 몰아주어 궁극적으로 자회사의 기업가치와 주주의 주식가치를 높이고 이를 다른 재산을 취득할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잘못된 시그널에 재벌가 따라하기

우리나라 대표적인 자동차 그룹의 물류 자회사의 사례는 물량 몰아주기의 전형으로 유명하다. 그룹 사주는 2세가 대주주인 물류회사 자회사를 차리고 그룹 물류를 다 맡겨 엄청난 규모의 자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주식가치를 높여주었다.

지난해 자회사는 대부분의 그룹물류를 통해 무려 5조8000억원의 매출과 2269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이에 따라 그룹 총수의 2세가 소유한 주식가치는 30억원에서 약 2조원으로 뛰어 약 600배 상승했다. 그동안 335억원의 배당금과 비싸진 주식 일부를 팔아 상대적으로 별로 비싸지 않은 모기업의 주식을 사기도 하였다.

총수 자신도 이에 버금가는 이익을 보았다. 만약 당신이 그 그룹의 차를 구매하였다면 선택의 여지없이 자회사에 운송비를 지불하였을 테고 이는 곧 물량 몰아주기를 통한 세금 없는 증여·재산증식에 일조를 한 셈이 된다.

5년 전 한 시민단체는 이를 보다못해 대기업의 '물량 몰아주기' 행위에 과세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으나, 정부와 정치권은 입법상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결국 외면하고 말았다. 정부와 정치권이 입법을 미루는 동안 많은 재벌 기업주가 '물량몰아주기'를 합법적 절세방안으로 여겨 따라하기에 뛰어들었다.

한 민간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29개 재벌기업이 85개의 특수관계기업을 통해 물량 몰아주기를 했고 이를 통해 물량을 몰아준 회사와 특수관계인 190명이 6000억 여원의 배당소득을 포함하여 무려 10조원의 재산을 증식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만시지탄의 물량 몰아주기 과세

2011년 물량 몰아주기 과세 문제가 다시 핫이슈가 되었다. 이번에는 시민단체도 국회의원도 아닌 정부가 나서서 물량 몰아주기 과세를 하겠다고 나섰다. 세금 없는 편법증여를 통해 수백억, 수천억을 대물림하고 있는 재벌과 대기업을 보면서도 얇은 월급봉투에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10년 동안 세금없이 증여할 수 있는 3000만원도 제대로 자식에게 주지 못 해 서러운 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6월 재벌과 대기업의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물량 몰아주기 대응책에 합의하였고, 지난 6일에는 국책연구기관인 조세연구원의 주관으로 특수관계 기업간 물량 몰아주기를 통한 이익에 대한 과세방안 토론회를 가졌다.

이 토론회에서는, 물량 몰아주기 과세대상의 범위를 사주일가의 지분보유율이 3~ 5% 이상인 계열사에 대해 매출의 30% 이상 특수관계자 물량이 차지하는 경우로 하고, 구체적인 과세방법으로는 물량 몰아주기에 따른 주식가치 증가분에 증여세 과세, 영업이익에 대한 증여세 및 배당소득세 과세, 수혜기업 및 지원기업의 법인세 과세, 물량을 몰아준 기업의 손금불산입 등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중 정부가 채택할 것으로 보이는 가장 유력한 방안은 물량 몰아주기로 발생한 특수관계 주주의 주식가치 증가분에 증여세를 과세하는 것이다. 현재의 다른 증여 또는 증여의제 규정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이 물량 몰아주기를 통해 계열사의 이익을 증가시킴으로써 특수관계 주주의 주식가치를 증가시킨 부분은 경제적 실질에 의한 증여행위에 해당하여 충분히 과세방법으로 타당하다고 보았다.

증여세 과세의 논란

하지만 물량 몰아주기로 수혜기업의 주주가 이익을 얻은 것으로 보아 증여세를 과세하는 경우라도 많은 논란이 있다. 기업 간 물량 몰아주기를 할 때 고·저가가 아닌 시가거래를 한 경우에도 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는지와 완전포괄주의 도입 이후 물량 몰아주기 거래분에 과세한다면 소급과세에 해당하는지 등이 그것이다.

먼저, 특수관계 계열사에 물량을 몰아줄 때 다른 곳과 동일한 가격조건으로 거래한 경우도 증여세 과세를 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 물량 몰아주기로 인한 초과이익을 얻은 주식에 과세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지만, 과세요건의 설계는 물량 몰아주기와 주식평가가액의 증가로 충분하고 거래가액의 적정성을 따질 필요는 없다.

기업 간 거래가액이 다른 곳보다 고가인지 저가인지는 법인세법에서 부당행위계산 부인으로 단속되고 있다.

주식가치는 회사의 수익력을 나타내는 손익가치만이 아니라 거래물량이나 자산의 증감에 따른 자산가치는 물론 시장에서 안정적인 거래관계로 인한 평판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좁은 의미에서 주식의 과세가액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물량 몰아주기에 따라 증여가액의 계량화 과정을 거치면 되어 '물량'을 몰아주기만 하면 과세요건의 기초로 족하고 '싼 가격'으로 몰아주었는 지는 따질 필요가 없게된다.

또 하나의 쟁점인 소급과세는 어떨까?

정부와 물량 몰아주기 과세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완전포괄주의 입법에 따라 '기여에 의하여 재산가치가 증가된 부분'에 해당하므로 납세자가 조세를 신고하지 않은 것일 뿐 세법은 이미 경제적 실질에 의해 과세대상으로 삼고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증여세를 과세하고자 한다면 증여자와 수증자는 물론 증여시기도 정해져야 하고, 주주의 주식가치 증가분이 기업 간의 물량 몰아주기로 발생한 것이라는 상관관계도 밝혀주어야 한다. 이러한 요건이 충족되어야 경제적 실질인 '증여'로 볼 수 있고 그렇지 않는 경우 과세요건을 따로 하여 증여의제 규정을 두지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이유에서 현재의 세법으로 물량 몰아주기로 인한 주식가치 증가에 대해 증여세를 과세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새로 입법하여 과세기간을 최대 연 단위로 하는 경우 지난 기간분은 납세의무 성립시기가 이미 지나 과세가 불가능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몇 년 전 물량 몰아주기로 변칙증여가 시작될 때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 과세검토와 함께 세법개정을 수없이 요구했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손을 놓고 있었다. 소급과세에 해당하여 물량 몰아주기 과세를 제대로 할 수 없게된 정부보다 세금제도를 뒤늦게 만들어 대기업 대신에 애먼 세금을 더 내야하는 서민과 중소기업의 원통함이 더 크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순 없다. 이런 상황에서 소급과세 논란을 피하고 과세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주식을 양도할 때 물량 몰아주기로 인한 주식가치 상승분에 대하여 양도소득세를 중과세(증여세 최고세율과 같은 50% 수준이 좋을 것이다)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물량 몰아주기로 주식이익이 발생한 후 아직 양도하지 않은 주식이라면 양도시점에서 과세하는 양도소득세 중과세는 언제든 가능하게 되어 소급과세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증여세를 과세한 후 양도세에서 취득가액으로 인정되도록 입법되는 경우라도 증여세 과세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

한편, 물량 몰아주기로 인한 주주 과세 이외에 거래기업에도 과세를 추가로 할 수 있는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물량 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 과세는 가능하다해도 세금제도로 일감몰아주기 자체를 금지할 수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낮은 가액으로 물량 몰아주기를 한 기업은 법인세법상 부당행위계산 부인규정으로 단속되게 되고(하지만, 물량 몰아주기 증여세 과세와는 달리 부당행위계산 부인으로 법인세를 과세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거래가액이 시가보다 낮다는 입증이 필요하다) 낮은 가액으로 일감을 받은 계열사는 법인세가 과세되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입법 등 과거 사례에서 보았듯이 필요 이상으로 조세의 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면 과세제도마저 흔들릴 우려가 있다. 기업 간 거래 자체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재벌과 계열사가 물량 몰아주기를 하는 경우 공시 또는 보고의무를 부여하고 정당한 사유없이 일정한 수준을 넘는 경우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회사법이나 공정거래법을 고치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다.

'재벌세법', 이번이 마지막이 되어야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재벌세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작업은 완전포괄주의가 도입된 올해에도 또다시 재현될 전망이다.

물량 몰아주기 과세논란은 우리 정부와 국민에게 많은 교훈을 되새겨준다. 정부는 그동안 포괄주의 과세제도와 경제적 실질에 의한 과세를 앞세웠을 뿐 기간과 물량을 이용한 신종 기법에 대해 세법규정을 하루빨리 고쳐 대응하지 않았다. 만약 재빨리 대응했더라면 물량 몰아주기에 대해 이미 많은 세금을 거둘 수 있었을 터이고 재벌가의 변칙증여 따라하기와 그로인한 중소기업의 피해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늦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변칙증여 등 세금 없는 부의 무상이전을 막기 위해 세법을 서둘러 고쳐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세무행정도 변칙증여행위를 상시 전담하는 조사, 분석조직 등 관련 세무행정기능을 강화하여 변칙증여를 손쉽게 일삼는 재벌가에게 엄정한 과세권 행사의 시그널을 보여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한다. 한국 최대의 재벌가에게 4조 5000억원을 세금 한 푼없이 상속시켜 준 것은 세금제도가 미비해서만은 아니다.

변칙 증여행위로 논란의 출발점이 되고있는 재벌과 그 기업주도 물량 몰아주기의 적정성에 대하여 보다 엄격한 심사를 받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증여 등을 통한 부의 이전은 금지된 것이 아니라 자유로이 보장되며 단지 세금을 제대로 내라는 것이 자본주의의 시스템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입법이 무산되거나 실효성 없는 입법에 그쳐 엄청난 규모의 부의 이전이 세금없이 용인된다면 이는 단순히 중소기업과 서민의 일감을 뺏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결국 그들에게 세금 부담마저 지우는 꼴이 되어 대기업과 재벌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더욱 요원해 질 것이다.

[약력] 국립세무대, 고려대·경원대학교 경영학박사, 한국세무사회 연구이사(現), 세무사고시회 연구담당 부회장(現), 고려대학교 법무대학원․경원대학교 겸임교수(現), 국세청 공평과세추진평가위원․서면질의심의위원, 국민권익위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