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성난 민심, 국가적 위험신호다

4·27 재·보궐선거 결과를 한나라당 참패-야당 압승이라는 도식(圖式)적 승패로만 보아 넘긴다면 큰일이다.

날로 심각해지는 사회전반의 양극화와 중산층 붕괴로 부글부글 끓어온 민심이 투표를 통해 표출됐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한 정권을 넘어선 국가적 위험신호다.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전하는 현장의 민심은 흉흉하다. "삼성이 수조원의 이익을 내고 나라경제가 6% 성장률을 기록하면 뭐하나.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전세대란과 물가고를 보라. 도저히 표를 달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말로는 서민을 위한다고 떠들지만 실제론 부자를 위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는 민심은 폭발직전이었다", "고장 난 레코드처럼 경제위기 극복을 자랑하는 식의 오만한 국정운영이 민심이반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국민이 당과 정부, 대통령을 믿지 않더라".... 하나같이 '섬뜩한' 보고들이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6.2%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수출실적은 올해 들어서도 사상최대를 거푸 경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성장의 과실이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집중되고 중소기업과 서민에게 돌아가는 몫이 미미해 소득불균형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민층이 가계 빚을 줄이려면 소득이 늘어나야 하는데, 실질소득은 낮아져 빚만 불어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분당 살면 적어도 중산층은 된다 했는데, 물가는 오르고 집값 떨어지지, 기업수익은 높다는데 월급은 똑같지, 의식주가 흔들리고 있다. 더는 정부를 신뢰할 수 없어 차악(次惡)을 선택했다"는 분당 한 여성유권자의 '민심'이 이를 웅변한다. 

소득 양극화현상은 지난주 국세청이 밝힌 종합소득세 신고내역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상위 20% 소득자의 1인당 소득금액은 10년 새 55%가 늘어 대부분 억대수입을 바라보고 있지만 하위 20% 소득자의 1인당 소득금액은 같은 기간 306만원에서 199만원으로 54%가 도리어 줄었다.

근로소득세의 경우도 상위 20% 소득자가 전체소득의 41.6%를 가져간 반면 하위 20% 소득자의 급여액은 총급여액의 8%에 불과했다. 양극화가 자영업자와 월급쟁이 모두에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양극화는 비정규직 문제부터 경제력 집중, 높은 부동산가격, 고용악화, 과다한 사교육비 등 여러 문제점들이 중첩되면서 '한국병'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수출대기업위주의 경제성장과 중소기업의 피폐화, 대기업의 영역확장과 '골목상권'으로 불리는 자영업자의 몰락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양극화를 부채질하고 있지만 이를 정책으로 풀어야 할 정부의 현실인식은 지금도 안이해 보인다.

재보선에서 표출된 '성난 민심'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무겁고 무섭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국민들의 뜻을 잘 읽어야 한다", "정부 여당이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거듭나고 뭘 바꾸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자신과 한나라당의 오만을 심판한 선거결과에 대해 "국민들의 뜻은 늘 정확했다"고 국민 편을 들면서 정작 자신은 '국민' 뒤에 숨는 듯한 모습마저 보였다.

그러나 야당이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 '안방'에서의 충격적 패배는 이명박 대통령과 그 정부에 대한 '민심의 거부'로 읽힌다. 전셋값과 치솟는 물가를 어떻게 할 거냐는 국회에서의 추궁에 주무장관은 "이제 짐을 내려놓고 싶다"고 했다.

동남권신공항 백지화 등에서 나타난 공약 뒤집기와 신뢰상실, 영업정지 직전 VIP고객예금만 빼돌린 부산저축은행의 '막장드라마', 강원도지사 여당후보 진영의 '불법전화방', 국민과의 소통소홀 등이 상징하는 '오만한 권력'에 민심이 등을 돌렸다는 것 이외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양극화해소는 정권의 안위와 차기 재집권 차원을 넘어 국가경제의 안위가 걸린 문제다.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우리 모두가 지키려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체제는 심각한 도전을 받기 때문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간의 간극을 정부는 '정책'으로, 부자들은 '나눔'으로 메워야 상생할 수 있다.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의식해 눈치를 보거나 움츠리지 말고 정부가 정공법으로 나설 때다.

대주주에게 수천억 원의 주식배당금을 안기는 대기업들의 실적잔치, 재벌계열 협력사들에게 일감과 이익이 집중되는 구조는 상생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사상최대의 수출실적은 수출대기업의 비정규직과 하청기업 근로자들에게는 딴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고 한다.

대기업들이 일자리 만들기와 재투자는 제쳐두고 계열사 확장이나 대주주의 이익배당 등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는 임금차별만이 아니고, 회사 통근버스에 좌석까지 차별을 두는 회사도 등장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이후 각종 친(親)기업조치로 기업활동을 뒷받침해왔다. 물가부담을 안아가며 고환율정책으로 수출을 지원했고, 대기업의 숙원이었던 출자총액제한도 풀고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지배구조 확립도 지원했다. 각종 규제도 풀고 법인세도 인하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최근 스스로 '고백'한 내용들이다.

이들 조치로 경기는 살아났지만 대기업으로 부의 편중은 심화되고, 대기업들은 300조원이 넘는 돈을 쌓아놓은 채 약속한 고용창출과 투자확대는 숫자놀음에 맴돌고 있다. 대기업들에 대한 압박카드로 '공정사회' 깃발을 내걸었고, 동반성장에 이익공유제, 급기야 '연기금을 통한 대기업견제' 구상까지 등장했다. 재계는 대통령이 반(反)기업적 정책으로 전환한 게 아니냐며 여론을 의식한 '대기업 때리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양극화문제는 정부-재계 간 일시적 때리기나 '기싸움' 차원을 넘어선다. 양극화 해소의 지름길은 대기업들이 벌어들인 수익으로 고용창출과 투자에 적극 나서면서 우리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이루어나가는 데 있다.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이 거의 같은 규모로 두 기둥을 이루면서 한쪽이 힘들 때 다른 쪽이 버텨주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대기업의 중소기업 '착취구조'가 없어져야하고,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영도 이해관계자 관점의 경영으로 바꾸어가야 한다.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과 제도적 인프라로, 대기업들은 인식전환과 '나눔'의 실천으로 상생에 제대로 다가가야 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일본 손정의 소프트방크 사장의 천문학적 개인재산 기부를 새삼 떠올릴 필요도 없다. 백 마디 동반성장 구호보다 바로 그런 배려와 '나눔'이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가장 탄탄한 힘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