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의 허(虛)와 실(實)

단군 이래 최대 국제행사라는 G20(주요 20개국) 서울정상회의가 마침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G20은 선진 7개국그룹이었던 G7의 확대판이다. G7이 아닌 나라에서 G20정상회의가 처음으로 열린다는 점에서 G20서울정상회의는 우리에게 역사적인 이벤트다. G20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나면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은 크게 달라진다고 정부가 홍보에 '올인'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뜻 한대로 역사적 의미와 성과를 살리기는 쉽지 않다. G20은 대표성이나 효율성 양면에서 적잖은 취약점과 문제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로 국가 간 상호의존이 심해지면서 지구촌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글로벌연대는 갈수록 긴요하다. 그럼에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 글로벌 연대를 주도할 리더십이 무너졌다.

미국은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되면서 지도자로서 자격과 역량에 큰 손상을 입었다. 금융위기 때마다 개발도상국들에게 가혹하게 굴었던 국제통화기금(IMF)도 막상 미국발 위기에는 이례적으로 침묵을 지켜 신뢰가 실추됐다.

G20은 주요 19개 국가와 유럽연합(EU), 여기에 IMF와 세계은행(World Bank)대표가 참석하는 비공식그룹이다. G20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가 그 모태다. 1997년 한국과 동남아시아 등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G7재무장관들이 '브레튼우즈체제 의 틀 속에서 비공식협의의 새 메카니즘' 으로 G20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를 발족시켰다. 1999년 12월 베를린에서 첫 회의를 연 이후 매년 가을 총회를 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1월 미국의 조지 부시대통령은 위기수습과 대응책 협의를 위해 G20정상들을 워싱턴으로 초청해 G20 첫 정상회의를 가졌다. 당시 모였던 정상들은 다시 모이기로 합의했고 2009년 4월 런던에서 두 번째 정상회의를, 9월에는 미국  피츠버그에서 세 번째 정상회의를 가졌다.

올 들어 6월 캐나다 토론토의 4차 정상회의에 이어 11월 서울에서 다섯 번째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내년부터는 연 1회씩 매 가을에 회의를 갖기로 해 2011년에는 프랑스, 2012년은 멕시코가 의장국으로 예정돼있다.

어떤 국제기구나 협의체가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대표성과 효율성을 함께 갖춰야한다. G7은 효율적이지만 대표성을 갖기에 7개국은 너무 적다. 유엔은 회원이 192개국으로 대표성은 손색이 없지만 효율성을 발휘하기에 회원이 너무 많다.

G20국가들은 세계 국민총생산(GNP)의 85%, 무역량 80%(유럽역내교역 포함),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해 대표성과 정통성은 충족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20개국 구성이 너무 자의적이고, '자기가 자기를 지명'한(self-appointed)구성이어서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명실상부한 글로벌경제협의체(Global Economic Council)가 되려면 그 구성에는 인구와 GDP(구매력평가 기준), 지역대표성, 회원국 간의 인간적 유대 등 네 가지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

인구 및 GDP에서 세계 2%를 넘는 나라는 16개국이다. 여기에 5 대륙을 대표하는 5개국, 그리고 유엔사무총장과 유엔총회의장을 포함해 G23을 만들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인구와 GDP 2%기준으로 따지면 현재의 G20국가 중 아르헨티나와 호주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 터키가 빠지고 대신 스페인과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가 G20에 들어가야 한다.

더구나 G20에는 '세계의 G7화'라는 목적이 숨어있다. 선진국 대 신흥개도국이라는 남북대결을 피하면서 G7의 아이디어와 이니시어티브를 더 넓은 세계에 확산시키려는 의도다. G20을 구성하는 '비(非) G7'국가들은 G7 이니시어티브를 제안 받아 동참하는 형식으로 합의해 줄 뿐 의제 자체에 대한 독자적 영향력은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G20 구성과정에서 호주와 한국 터키를 제외하자는 의견도 나왔었고, 말레이시아와 태국 대신 인도네시아가 민주화와 인권개선요구를 충족시키며 막판 티켓을 받기도 했다.

G20은 정상회의로는 너무 큰 모임이다. 정상 20명이 각자 준비된 성명을 읽고, 주고받는 토론도 없이, 정다운 포즈로 합의수준이 낮은 '물 타기' 공동성명을 내놓는 상황에서 효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의사결정 기구도, 상설기구도 아니고 사무국도, 전담직원도 없는 '비공식 협의포럼'일 뿐이다.

위기대응의 성격이 강하고 지속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없지 않기 때문에 세계정상회의로서 정통성을 확보하려면 상설기구가 되어야 한다. 대표성과 효율성을 높이도록 참가국 구성을 재편하고 G20에 참여 못하는 빈곤국과 개발도상국의 관심이슈도 충분히 반영되는 장치도 갖추어야 한다.

서울정상회의에서는 우선 정상회의 상설화를 위해 의장국인 한국이 적극적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내년과 내 후년 정상회의까지 이미 정해져 있는 데다 G20회의가 전임 의장국, 현재 의장국, 차기 의장국의 트로이카체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연속성도 어느 정도 담보된 상태다.

세계경제에서 또 다른 위기의 재발을 예방하고 국제공조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지배구조)를 확립하는 일이야말로 어느 개별사안에 대한 구체적 합의보다 훨씬 소중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세계경제를 지배해 온 미국주도의 워싱턴 컨센서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무너졌다. 글로벌 경제질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서울 컨센서스'를 핵심어젠다로 제시하려는 의장국 한국의 의욕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환율갈등을 놓고 미국의 '달러 찍어내기'에 맞서 '1대 19'의 전선이 형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회의가 세계경제의 신질서 모색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의 장이 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겉치레 말잔치보다는 인내와 성심으로 내일의 합의로 이끄는 과정이 의장국으로서는 더욱 소중하다. 회의성과만 의식해 이것저것 덤벙대다보면 혼돈에 빠질 위험도 있다. 지난해 체코가 EU 의장국을 맡았다가 중재를 잘못해 EU 주요 국가들로부터 '작은 나라들에게는 의장국 맡기는 것이 아니다'는 개탄을 산 선례도 있다.

'신흥국 최초의 의장국', '국민의 자긍심 고취', '21조원 경제효과', '국가브랜드가치 상승',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등등 낯간지러운 국내용 과잉홍보는 뒤집어보면 일종의 한국적 열등의식의 발로다. 2012년 의장국 멕시코가 우리처럼 난리를 피우고 감격해 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한국 국민들이 국격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스위스로 조사됐다고 한다. 그 스위스가 G20에도 끼이지 못한 나라라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까. G20은 올림픽도, 월드컵도 아닌 최고위급 포럼이다.

이 포럼개최를 둘러싸고 찬반논란과 시비가 그치지 않는 것은 바로 'G20의 국내정치'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