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건전성은 숫자놀음?

재정건전성과 복지 포퓰리즘은 반대방향으로 내달리는 두 마리 토끼다. 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고 정부가 야심찬 목표를 내걸었다.

지난주 기획재정부는 국가재정운용계획(2010-2014)을 통해 앞으로 5년간 국가재정운용전략은 재정건전성회복에 최우선 순위를 두되 '친(親)서민'복지와 지속성장을 위한 미래대비투자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말은 쉽지만 과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친서민 복지예산은 지난 5년간 연평균 10.3%씩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정부지출 증가율(6.9%)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복지예산은 내년에도 6.2% 늘어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27.9%)이 사상 최고에 이른다. 재정건전성에 빨간 불이 켜진 상태다. 

복지예산은 일단 도입되면 자동으로 늘어나는 속성을 지닌다. 더구나 친서민복지에는 여야가 따로 없어 국회심의 과정에서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소득 상위 30%를 뺀 전체 가정의 보육비를 전액 지원하겠다고 하자 정치권에서는 곧바로 양육수당 지원대상도  넓히자는 얘기도 나온다.

실효성과 재원확보 방안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여야가 선심성 지원을 다투어 늘리려는 포퓰리즘에 매몰돼 있다.
 
2008년 309조원에 달한 국가채무는 지난해에만 50조6000억원이 늘었다. 금융위기에 따른 대규모 추경편성 때문이었다. 문제는 올해와 내년에도 국가채무가 각각 47조5000억원, 39조6000억원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올해 77조7000억원인 국채 발행 규모는 내년에 80조원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국채이자비용만도 13조8000억원으로 올해보다 2조4000억원이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국가채무비율은 아직도 선진국 절반수준이지만 문제는 증가속도다.

국가채무는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 새 4배로 늘었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추경과 감세를 통해 66조7000억원을 재정에서 투입했다. 그 덕분에  어느 나라보다 빨리 위기를 벗어났지만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선 시점에서 재정건전성을 다시 높여야 할 때다.
 
그럼에도 GDP에 대한 국가채무비율은 올해에 36.1%로 되레 높아진다. 정부는 내년에 이 비율을 35.2%로, 그리고 2014년에 31.5%까지 낮춘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숫자놀음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를 제외한 실질적 나라살림 수지(관리대상수지)는 올해 30조원에 이어 내년에도 25조원이 넘게 적자가 나도록 예산을 짰다. 그러나 2014년이면 관리대상수지는 경제성장과 그에 따른 재정수입증가로 흑자로 돌아 설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친서민'과 '미래대비'를 위한 지출증가는 물론이고 세종시 건설(12조원), 4대강 개발(22조4천억원), 새만금개발(21조원) 등 초대형 국책사업들이 줄줄이 추진되고 있다. 복지예산은 저출산 고령화로 증가세가 가팔라 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언제든 국민세금으로 메워야 할 공공기관 부채(2009년 377조원)가 뇌관으로 숨어있다.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내년에 1조2천억원을 시작으로 2015년까지 3조3천억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이는 공기업부채 떠안기의 시작이다. 최근 6년간 22개 공기업들은 자산이 94%, 자본이 41.4% 각각 증가하는 사이 부채는 무려 156.4%가 늘어났다.      
 
국가 빚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문제가 생기면 국가가 갚아 주어야하는 국가보증채무가 내년에 41조원을 넘어선다. 지난 3년 사이 13조2천억원이 늘어났다. 해외자금조달이 어려워진 금융권을 돕기 위해 정부가 1000억달러 한도의 지급보증을 선데다 자산관리공사에 구조조정기금을 설치하고 채권을 발행했기 때문이다.
 
나라 빚은 400조원이 넘어 계속 증가하는 데도 국가채무비율은 어떻게 해서 내년부터 하락세로 돌아서 불과 5년 만에 31.8%로 무려 5%포인트 가량이나 떨어질 수 있는가. 

한마디로 경제성장률에 대한 정부의 과신(過信) 때문이다.

정부는 2011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 전망치를 5%로 잡고 있다. 이에 따라 재정수입은 연평균 7.7% 증가하고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세수입도 연평균 9.1%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재정지출 증가율은 연평균 4.8%로 낮게 관리해 통합재정수지는 내년에 흑자로 전환시키고, 관리대상수지도 2014년에 흑자로 반전시켜 균형재정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균형재정 실현에 대한 정부 의지는 높이 사줄만 하지만 문제는 대전제가 되는 경제성장률과 세입증가율, 총지출증가율 전망치가 너무 장밋빛 일색으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미국의 경기둔화, 유럽의 재정위기,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에다 우리의 성장잠재력이 날로 약화되는 상황에서 연평균 성장률 5%는 너무도 안이하고 낙관적이다.
 
국내 주요 연구소들은 내년에 4% 성장도 쉽지 않다며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내려잡고있고, 삼성경제연구소는 내년 성장률이 3.8%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 판이다.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주요국 장기경제전망에서 한국은 2011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3.9% 성장에 그칠 것이며 구조개혁을 할 경우 4.2%까지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세수입은 MB정부 들어 부자감세 등으로 세입기반이 훼손돼 매년 경상성장률보다 국세수입이 낮게 들어오는 추세다.

국세수입증가율을 9.1%로 높이려면 획기적인 증세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세제개편안에 나타난 5년간 세수증가는 2조원에 불과한 반면 2012년부터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로 2014년까지 약 14조원의 세수감소가 예상된다. 
 
MB정부 임기 내 예산지출 증가요인이 110조원에 이르고, 총지출 증가율이 6%를 웃도는  상황에서 재정지출 증가율을 4.8%로 관리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성장률과 세입증가는 과다계상하고, 지출증가는 과소계상 해 균형재정을 짜 맞춘 숫자놀음이라는 비판도 무리가 아니다.

건실한 재정은 한국의 대외적인 자랑거리의 하나였다. 그러나 국가채무의 빠른 증가속도와 엄청난 '그림자 부채'가 유로존 리스크에 놀란 신용평가기관들의 주목을 받을 경우 대외변수에 약한 수출주도형 한국경제가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림자부채' 양성화와 그 체계적 관리 등을 통해 재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