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중국, 지는 일본...한국의 전략은?

중국경제 규모가 마침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로 올라섰다.

엊그제 일본정부가 공식 집계 발표한 올 2분기 중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달러환산 1조 3370억 달러로 일본의 1조 2880억 달러를 넘어섰다.

중국 상하이의 거리 신호등에 세계 두 번째 경제대국을 자축하는 '02' 숫자가 깜박였다고 한다.
 
2분기 중 중국은 10.3% 성장한 데 반해 일본은 예상 성장률 2.3%를 훨씬 밑도는 0.4% 성장에 그쳤다.

달러 명목가치가 아닌 실질 구매력평가(PPP)로 따진다면 중국은 근 10년 전에 이미 일본을 능가했다는 계산도 나온다.
 
한 나라의 진정한 경제적 실력을 평가하는 데는 명목 GDP보다는 1인당 GDP가 더 의미가 있다.

중국의 1인당 GDP는 3678달러로 일본과 미국의 10분의 1, 프랑스와 영국의 6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아직은 중(中)소득국가에 속한다.

그러나 경제규모 '세계2위'가 글로벌 경제 및 정치무대에서 갖는 영향력과 상징은 엄청나다.
 
일본이 독일을 제치고 미국 다음의 제2경제대국이 된 것은 1968년이었다.

비(非)백인국가가 선진경제대국이 되기 어렵다는 당시 서방국가들의 인종적 편견을 깨부순 쾌거였다.

일본은 전후(戰後) 관민이 성장에 올 인하고 엔화 환율도 달러당 360엔에 고정되는 등 국가적 수출드라이브를 통해 경제 강국 서독을 능가했다.
 
1980년대 초 넘쳐나는 흑자로 미국의 상징적 부동산들을 사들이며 한 때 넘버원 미국을 넘보기도 했지만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화가치가 달러당 평균 240엔에서 128엔으로 갑절 가까이 치솟은 후 '떠오르는 태양'은 석양 길로 접어들었다.
 
중국은 불과 5년 전만해도 일본정부가 제공하는 대외개발원조의 최대수혜국의 하나였다.

이 돈으로 공항과 도로를 건설하던 중국이 저평가된 위안화와 '인해전술'로 42년간 2위 자리를 지켜 온 일본을 밀어낸 것이다.
 
일본이 제2 경제대국으로 잘 나갈 때도 일본경제가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보는 예측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중국은 머지않아 미국마저 앞지를 정도로 그들 경제의 성장속도와 활력은 위협적이다.

중국은 현재 세계 제1의 생산기지이자 세계 제1의 수출대국이고, 세계최다 외환보유국이며 내년에는 세계최다 에너지소비국이 된다.
 
높아진 경제적 위상은 바로 국제정치와 외교 분야에서의 영향력행사로 나타나고 있다.

'평화적으로 우뚝 일어선다'는 화평굴기(和平崛起)가 '필요할 때 참지 않고 할 말은 한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로 바뀌면서 '핵심이익'이 걸린 일이라면 미국과 파워게임도 불사하는 대결자세로 돌아선 것이다.
 
국제사회 힘의 축이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바뀌는 현상은 도처에서 감지된다. 사실 중국을 빼놓고는 어떤 해결책도 찾을 수 없는 것이 국제정치·경제의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명실상부한 G2(Group2)시대의 개막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정작 중국은 G2라는 말 자체에 시큰둥하다.

중국을 서방질서에 편입시키려는 미국의 속셈이자, G2라는 올가미를 씌워 국제문제의 책임을 중국에 지우려는 의도로 읽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을 '그룹'으로 묶으려면 공통의 이념과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G7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키려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터지면 수시로 만나 머리를 맞대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상 북한·이란 핵문제 인권 등 대부분의 글로벌 문제에서 '적대적'이라고 할 정도로 부딪친다.

천안함 사건과 한 미 서해합동군사훈련은 물론이고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격돌도 마다않는다.
 
중국당국의 외환보유액 다변화전략도 주목을 끈다.

지난 6개월 사이 중국은 일본정부채권 1조 7000억 엔어치를 사들였다. 올 들어 한국 국채를 집중 매입해 최근 채권시장에 '차이나쇼크'까지 몰고 왔다.

원·달러 현물시장에서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산 뒤 이 돈으로 한국국채를 매입해 6월말 현재 3조 9900억 원어치를 보유중이다.

중국이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의도인지의 여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한국 금융시장이 중국당국의 정책결정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게 됐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 않는다.
 
중국경제의 부상에 따라 동아시아 역학관계도 중국을 중심으로 달라지고 있다.

1990년대말 이후 한국과 일본의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약화되고 한-중, 중-일 관계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동북아 국제관계가 중국을 핵(核)으로 한-중, 일-중 양자관계로 재편되는 경우 중국과 미국 간 패권경쟁이 심화되고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중국은 2002년을 기점으로 한국의 최대무역상대국이고 최대해외투자대상국이며 남북관계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친미·반중- 친중·반미의 이분법은 접고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발상은 위험하며 사안별 선택적 지지로 자체역량을 키워나가는 접근법이 바람직하다.
 
24일로 한·중 수교 18주년을 맞았다.

양국 간 접촉이 확대될수록 이해상충이 잦아지고,  한편으로 중국을 중시하며 다른 한편으로 의구심을 갖는 모순된 양태를 보여 왔다.

노무현 정부 때는 탈미친중(脫美親中)으로 기울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미동맹 공고화 쪽으로 무드가 급선회했다.
 
한국이 냉전시대 유물인 한미동맹에 집착해 동북아안정이라는 '큰 안보'를 놓치고 있다는 중국 측 핀잔도 그치지 않는다.

수교18주년을 맞아 "중국은 개혁 개방 30년을 지나면서 정부도 공산당도 언론도 변했다. 그런데도 한국을 비롯한 외부세계는 달라진 중국을 대할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고 한 어느 중국유력 언론인의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5일로 집권 반환점을 돌아 2년6개월간의 집권후반기로 진입한다.

후반기 국정목표 외교 안보부문에서 G20회의 성공적 개최와 6자회담 참여국들과의 협력외교만 강조됐을 뿐 중국에 대한 전략적 대처 등 큰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영향력을 과신하고, 미국 등에 업혀 국제사회에서 한국위상을 높여보겠다는 전략은 구시대적인 것이다.

세계 경제대국 2위와 3위 사이에서 한국이 앞으로 뭘, 어떻게 먹고 살 것이며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어떻게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일구어 낼 것인가.

이것이 G20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공정한 지구촌'을 위한 새 국제질서를 창출한다는 '뜬구름' 잡기보다 우리에게 훨씬 절박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