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독일처럼 사죄 못하나

일본은 그들 군국주의 과거사 사죄에 왜 그토록 인색한가. 독일처럼 왜 깨끗이 사죄하지 못하는가.
 
한일강제합병 100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되짚어보는 의문이다.
 
간 나오토(菅直人)일본총리가 '일한병합 100년'을 맞아 지난 10일 발표한 '총리담화'는 얼마간 진일보한 것이었다.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표명'이라는 '큰 줄기'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지만 몇 가지 변화가 눈에 띈다.
 
우선 '한국인들이 그들 의사에 반하는 식민지지배로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표현으로 한국인들의 심정을 배려한 점이다.

일본 궁내청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실의 의궤를 한국인들 기대에 부응해 가까운 시일 내에 넘겨주고 싶다'고 한 것도 새로운 진전이다.

게다가 일본 내 야당 및 보수 세력의 비판과 반대를 무릅쓰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을 위해 담화를 '강행'한 점도 돋보인다.
 
그러나 병합과정의 불법성과 병합조약의 무효성은 사실상 인정하지 않았고, '사죄'(謝罪)  대신 '오와비'라는 일본식 표현으로 계속 둘러 대 피해자 보상과 배상 등 법적 책임을 피해가는 한계를 드러냈다.

병합의 강제성은 우회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불법성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는 일본이 왜 독일처럼 깨끗이 과거사를 정리하지 못하느냐, 독일에게서 사죄하는 것을 배우라고 곧 잘 다그친다.
 
두 나라의 전후(戰後) 과거사 청산과정을 비교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일본적 특수성에 주목한다.

독일의 경우 모든 것을 히틀러와 나치 일당의 소행으로 돌리면 됐었다. 사죄하기가 간단하고 상대적으로 쉬웠지만 일본은 그렇지가 못했다고 한다.
 
그들 천황의 존재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모든 잘못의 궁극적 책임은 천황에게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점령통치를 쉽게 하기위해 천황제를 존속시키고 그에게 전쟁책임을 묻지 않았다.

과거를 사죄하려면 대외적으로 천황을 히틀러처럼 속죄양으로 만들어야하는 데 일본인들이 그들의 '살아있는 신(神)'을 스스로 흠집을 낼 리 만무다.
 
더구나 히로히토의 '항복선언'에는 항복이나 패배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없었다.

일본의 전쟁목적이나 잔학행위에 대한 자기반성은 없고, 투항은 추가적인 원폭투하로 인간문명이 더 이상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귀한 결단'처럼 포장됐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일본인들 뇌리에 전쟁의 범죄자라는 죄책감 대신 인류최초의 원폭희생자라는 피해의식이 깊게 각인된 것이다.

스스로가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전쟁의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것이다. 전쟁의 직접 당사자인 히로히토 천황이 계속 자리를 보전했고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가 전쟁 후 총리직을 역임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미국과 소련간의 냉전이 격화됐고 전쟁책임자들이 미국을 도와 반공과 재무장을 주도하면서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 유야무야 됐다.
 
일본 내 60여개 박물관 가운데 자신의 침략행위를 사실 그대로 전시중인 곳은 '오사카국제평화센터'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나마 이곳도 원자폭탄투하 관련 전시물을 주요전시관에 배치하고, 카미카제(자살공격대)같은 전쟁참여자들을 영웅으로 묘사하는 전시물들로 채우고 있다고 들린다.

전쟁세대가 진실을 외면한 가운데 전후세대는 진실을 알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다.
 
1989년 히로히토 사망 이후 전쟁 때 잔학행위 등 과거사에 대한 반성논의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지만 사회주류를 형성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독일은 '성공적인 사죄'로 '정상국가'로 거듭 태어났고 이웃국가들의 동의 속에 재통일까지 이루었다. 그러나 일본은 제대로 사죄하지 않아 인접 피해 국가들의 불신을 사고 있고 과거사에 발목이 잡혀 미래지향적 관계구축은 겉돌고 있다.
 
중국 신화통신은 간 나오토 총리담화에 대한 논평에서 '사과는 행동이 중요하며 반성에는 공통인식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성공적인 사과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말보다는 행동을 통해 받아들이는 쪽의 마음을 움직여야한다.

일본총리의 인식을 모든 일본 국민들이 공유할 때만이 진정한 역사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간 총리의 담화는 민주당 총리로서 내놓을 수 있는 최상의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되돌아보는데 솔직하게 임하고자한다" 는 대목은 진정한 사죄를 위한 중요한 첫 걸음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총리의 이런 인식이 어떻게 전체 일본사회의 사회적 합의로 이어지느냐에 있다.  

일본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하며 국가적 합의를 주도할 수 있는 사람은 천황밖에 없다.

책임의 당사자이자 일본사회의 정신적 지주인 일왕(日王)이 진솔하고 구체적인 사죄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사죄 없는 사죄'가 거듭되는 가운데 사죄를 '카드'로 국가 간에 밀고 당기는 '사죄게임'의 양상도 빚어진다.

한국에 대한 이번 식민지지배 사죄를 놓고 "왜 한국에만 사과하느냐'는 중국의 항변이 눈길을 끈다.
 
일본은 2차 대전 종전 50주년인 1995년 아시아 이웃국가들에게 사과한 적은 있다. 이번은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이기 때문에 한국에만 사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 이후 극도로 민감해진 동북아 정세 속에서 일본이 한국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속내로 비쳐질 수도 있다.

일본이 경제 군사 분야에서도 '러브콜'을 발하며 한국에 다가오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감지된다.
 
따라서 우리정부의 대응이 안팎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간 총리담화를 진일보한 노력으로 평가하고 구체적 실천을 강조하는 선에서 그쳤다.

간 총리가 당 안팎의 거센 저항과 참의원 선거 패배 이후 불안정한 입지를 무릅쓰고 성의를 보인 마당에 그를 코너에 몰아넣는 것은 아무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총리담화로 조선왕실 의궤와 문화재 반환 등 실천적 후속조치들이 꼬리를 물 전망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과거사정리는 좀체 터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쉽게 인정 못하는 그들 특유의 의식구조에서 일본열도가 '해방'되지 않는 한 피해국들과의 역사적 화해는 구호에서 맴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