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親)기업에서 친(親)서민으로?

경제성장률 등 각종 경제지표와 대기업 실적 등은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데도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여전 얼어붙어있다고 아우성들이다.

경제가 좋아졌다고 하는데 도무지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좋아졌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울컥 화가 치민다는 격한 반응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지표경기와 체감경기 간에 얼마간 괴리는 있기 마련이다. 수출대기업의 호조 등 이른바 아랫목 온기가 중소기업과 서민가계 등 윗목으로 퍼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또 지표의 기저(基底))효과에 따른 착시현상도 한 몫을 한다. 경제가 아주 나빴던 작년과 비교하다보니 숫자상으로 지표가 실제 이상으로 좋아보이게 된다.

이런 '괴리'라면 참고 기다려 줄만도 하다. 우리경제는 전통적으로 위에서 모인 물이 아래로 넘쳐 흘러내리듯 대기업성장이 중소기업과 서민가계로 확산되는 전형적인 '트리클다운(Trickle-Down:낙수효과)구조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분배되지 않고 갈수록 대기업과 수출기업에 편중되면서 중소기업이나 서민가계에 온기가 전해지지 않고 있는 데 있다.

지표경기와 체감경기 간의 괴리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구조적인 문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내놓는 각종 경제지표를 보면 우리경제는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이전수준으로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분기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7.2%였고, 1분기까지 포함한 올 상반기 성장률은 7.6%로 10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취업자 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정부의 공공근로사업인 희망근로가 크게 줄었는데도 지난 6월 취업자 수는 31만4천명이 늘었다. 상반기 내내 늘어나고 있어 민간을 중심으로 고용의 자생력이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소득도 회복세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상용근로자의 실질임금은 241만6천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3.2%가 증가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7분기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반면 물가는 안정적이다. 지난달까지 소비자물가는 5개월째 2%대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이 늘고, 일자리와 소득이 좋아지면서 물가는 안정돼 있다면 이는 누가 봐도 완연한 회복국면이다.

그럼에도 '외환위기 때보다 더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꼬리를 물고 있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지만 내수산업과 중소기업은 더욱 어려워지고, 취업자 수는 늘고 있다지만 청년실업률은 치솟고 있고, 물가지수는 안정됐다고 하지만 체감물가는 껑충 뛰어 가계지출 증가가 소득증가를 웃돌고 있다는 푸념들이다.
 
지표경기의 호조는 반도체와 자동차 등 글로벌 대기업들의 수출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실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삼성전자는 2분기 영업이익이 사상 최고인 5조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포스코도 2분기 영업이익이 1조8천360억원으로 사상 두 번째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경제의 세계화에 따른 생산 및 판매의 현지화로 이들의 호조가 내수활성화와 국내 연관산업의 고용창출로 직결되지 않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LG의 경우 총매출의 70%가 해외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최경환 지식경제부장관 스스로 "회복의 성과는 수출대기업이 다 먹었다. 체감경기가 살아나려면 멀었다"고 실토할 정도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는 날로 커지고, 중산층이 날로 줄어들면서 '20대 80'을 넘어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 구도로 양극화가 악화되는 상황이다.

대기업들이 국내 중소기업들과의 상생(相生)은 고사하고, 크지 못하도록 싹부터 잘라 '대기업들의 사상 최대실적은 중소기업의 피눈물' '대기업-중소기업관계는 공멸관계'라는 맺힌 소리도 터져 나오는 판이다.

대기업들은 발생한 이익을 투자하지 않아 금고에 현금이 넘쳐나고, '천문학적'인 보너스지급액과 임원연봉이 상징하는 '그들만의 잔치'가 위화감을 심화시킨다.
 
지표경기회복에도 불구하고 취업난은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경기회복의 효과가 대규모 인력이 필요하지 않는 정보기술(IT)과 석유화학 등 일부 업종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다.

게다가 고용유발효과가 높은 소매 음식숙박 개인서비스 등 전통서비스업이 대형화와 전문화, 그리고 소비부진으로 영세업체들이 퇴출당하면서 고용흡수력이 크게 약해졌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를 앞세운 대기업들의 투자 및 채용계획은 발표만 요란했을 뿐 과연 얼마나 투자하고 얼마를 뽑았는지 실적으로 입증되지 않고 있다.

대기업 인턴 등 '불완전 취업'에다 경력직 중심의 결원충원이 보편화하면서 청년취업난은 가속화되는 경향이다.  
 
물가가 안정됐다고 하지만 주부들은 아우성이다.

전체 도시가구를 대상으로 측정한 규격 품목의 대표치와 대다수 서민들의 체감물가 간에 괴리는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성장과 회복의 과실이 대기업들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물가가 오르고, 이에 따라 금리도 속속 오른다면 중소기업과 서민가계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산서민층의 자산증식에 큰 몫을 해왔던 부동산재테크가 아파트값 하락과 금리인상으로 대출이자부담과 소비심리위축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 체감경기는 이래저래 싸늘해지고 있다.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괴리, 경제회복과정에서 양극화 심화는 경제의 세계화에 따른 글로벌 현상임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책대응이다. '삼성이 곧 한국경제'라는 착시(錯視)부터 경계해야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경제정책은 대기업 성장을 뒷받침해 그 성과가 사회전반으로 퍼지게 하는 트리클다운효과에 기반을 두어왔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이 구도가 깨지기 시작했고,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그 효과는 갈수록 흐려지고 있다. 정부정책의 근본 마인드가 달라져야한다는 얘기가 된다.
 
'친(親)기업'을 표방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친서민 친중소기업'을 강조하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문하고 나선 배경이 주목을 끌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발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존산업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도 전해진다.
 
정치적 위기를 포퓰리즘으로 돌파하려는 의도인지, 아니면 근본적인 마인드 변화인지는 앞으로 지켜볼 대목이다.

'친기업' 대 '친서민'으로 애써 어느 한 쪽을 감싸는 발상은 처음서부터 잘못된 것이며 '친서민'이 대기업들의 글로벌경쟁력을 훼손하는 '대기업 때리기'로 둔갑해서는 더 더욱 곤란하다.

세계화와 산업의 성숙도에 걸맞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투자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도록 유도하고, 그런 분위기와 여건을 조성해 나가는 것이 친기업과 친서민을 함께 아우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