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에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집값하락으로 미분양아파트가 쌓이고, 준공 후 미입주 아파트까지 늘면서 건설사들의 새 아파트 분양연기가 꼬리를 물고 있다.
주택거래는 여름휴가철이 다가오기 훨씬 전부터 거의 '올스톱' 상태다. 그나마 팔리던 급매물도 금리가 오르면서 매수문의마저 끊겼다.
살고 있는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새 입주 아파트로 옮겨가지 못하고, 집값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심리로 매기가 실종되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궁지로 내몰리고 있다.
대출받아 무리하게 집을 마련한 중산 서민 가구들은 집값이 떨어지고 대출이자는 올라 은행에 비싼 월세를 꼬박꼬박 내고 사는 세입자 신세이자 '집의 노예'로 전락했다.
집은 사두면 값이 오른다는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고 전 재산을 집에 올인 하다 가계부도위기로 내몰리면서 '내집 마련의 꿈'이 도처에서 '악몽'으로 둔갑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주택의 덫'에 걸렸다는 자탄(自嘆)들도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정부가 마지못해 다시 '부동산카드'를 매만지고 있다. 주택거래를 어떻게든 활성화시켜야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단기적으로 거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묘안이 없다는 데 정부의 고민이 있다.
주택업계는 주택금융규제를 완화하고, '보금자리주택'이란 이름의 대규모 공공주택공급계획을 축소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주택수요자들이 보다 쉽게 은행대출을 받게 하고 공공주택공급을 줄여 민간주택시장을 활성화해 달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쉽지가 않고 근본대책이 못된다. DTI(총부채상환비율)와 LTV(담보인정비율)규제를 완화하면 단기적으로 거래활성화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가계부채를 더욱 늘리고 장기적으로 집값 안정 기조를 해친다.
분양가가 민간아파트보다 싼 '보금자리주택' 공급은 저소득계층에 내집 마련 기회를 쉽게 하겠다는 MB정부의 대표적 사회정책적 역점사업인데다 거래부진을 전적으로 보금자리주택 탓으로 돌리는 것도 무리다.
문제는 더 깊숙한 곳에 있어 보인다. 정부는 지난 4월 주택거래활성화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내 무용지물이 돼 버렸고 다시 대책을 준비할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거래 올스톱' 위기의 원인으로 관련업계와 전문가들은 대충 네 가지를 꼽는다.
수요자들에게 집값 하락 기대심리가 팽배해지고 있는 점이 첫째다. 저가의 보금자리주택에다 미분양확산에 따른 민간아파트 분양가할인이 기존 주택매매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고, 여기에 부동산시장 장기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집값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심리가 시장에 확산됐다.
전반적 경기가 상승국면으로 돌아서면서 가계대출증가에 따른 부실을 우려한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의 고삐를 조인 것이 둘째다. LTV와 DTI 이중규제가 유동성자금의 부동산시장 유입을 차단한 것이다.
부동산 불경기로 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것을 우려한 금융권이 주택업계 자금줄 노릇을 해온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사실상 중단시킨 것이 셋째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해 출구전략에 따라 앞으로 금리가 단계적으로 오를 것이라는 심리적 압박감이 시장에 가세했다. 돈줄이 마르니 시장에서 거래가 꽁꽁 얼어붙었다는 얘기로 요약된다.
돈줄을 풀어 이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과연 그럴까.
2000년대 부동산 폭등은 가계부문에서만 340조원의 부채를 쌓아올려 만든 거품이다. 아파트는 일단 사놓고 보면 돈을 번다는 심리로 너도나도 몰려들었고, 적은 돈으로 대출에 대출을 끼고 여러 채를 사 수십억을 버는 투기행위가 횡행했다.
여유자금을 은행에 예금하는 것보다 소규모 아파트를 여러 채 사두는 것이 훨씬 수익률이 높았다.
부동산으로 쉽게 큰돈을 벌다보니 씀씀이가 커져 과소비를 낳고, 투기적 수요에 따른 부동산값 폭등과 생활 속의 거품을 키워온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부동산 거품을 빼기보다는 ‘부동산 연착륙’을 구실로 오히려 건설업체의 정상적 시장 퇴출을 지연시키고 부실 은폐를 방조하고,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겨왔다.
눈앞의 성장과 경기부양에 골몰하는 정부, 부동산담보대출위주의 소매금융으로 재미를 보는 금융회사, 선분양제로 '땅 짚고 헤엄치는' 건설업계, 부동산관련 광고물량에 매달리는 언론의 부동산띄우기 등이 합작해서 '아파트공화국'을 일구어 낸 것이다.
국토해양부의 실거래가 흐름으로 보면 집값은 이미 대세하락국면에 들어섰고,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면서 주택수요도 감소하는 쪽으로 인구구조가 바뀌고 있다.
16개월간의 사상최저금리에다 경기부양을 위한 유동성이 급증한 상황에서도 집값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앞으로 금리가 더 오르면 집값하락세가 더욱 가팔라진다는 얘기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부동산거품 붕괴압력이 커졌다는 의미다.
현 상황에서 DTI 규제 완화가 얼어붙은 시장에 가장 효과적인 대책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DTI 규제를 완화해서 쉽게 대출을 받게 하면 과연 부동산경기가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
LTV 및 DTI비율은 원래 은행의 대출회수가능성과 돈 빌린 사람의 상환능력을 알 수 있게 해 은행의 건전성을 유지케 하는 척도다.
대출받는 입장에서 대출을 많이 끌어 쓸수록 소득에서 대출 원리금 상환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특히 집값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과도한 원리금상환부담은 가계차원의 어려움을 넘어 경제전체의 위험으로 번진다.
서민들 입장에서 아파트가격은 더 내려야한다는 분위기가 강하고, 정부 안팎에서 현재의 집값 '하향안정' 추세가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상황에서 DTI규제완화 등 투기를 부추기는 듯한 대책들을 내놓는 것은 '친서민'을 표방하는 정부입장에서 큰 부담이다.
"20년 전 서울서 집을 팔면 미국에 유학생 1명을 보낼 수 있었지만 10년 전에는 2명, 지금은 유학생 2명에 엄마가 살 수 있는 집도 마련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서울의 집값은 거품이 끼었다고 한다.
'경착륙'이냐 '연착륙'이냐 그 방법만이 다를 뿐 거품의 붕괴는 피할 수가 없다. '주택의 덫'에 걸린 구매자들이 대개 '막차를 탄' 사람들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부동산 붐에 편승해 무리하게 사업을 벌여온 건설업계, 금융기관의 PF대출 부실, 시설운영자금 등의 명목으로 대출받아 부동산에 투자한 중소기업들의 숨겨진 부실들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주택시장에서 본격적인 충격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단기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 가격조정을 지연시킬수록 부동산거품 붕괴의 에너지는 커지고 주택시장의 침체도 길어진다는 데 '아파트 공화국' 한국의 고민이 있다.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