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공 월드컵을 현지에서 지켜보고 있는 포르투갈의 살아있는 축구전설 에우제비오는 지난주 "상업주의가 축구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개탄했다.
"1960년대 저희 세대 때 저희들은 축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축구는 하나의 상업이벤트( a commercial)가 되어버렸어요"하며 못마땅해 했다.
에우제비오의 질타는 공교롭게도 대회 유력 스폰서인 아디다스가 1970년 월드컵의 영웅 독일공격수 게르트 뮐러와 함께 마련한 공동기자회견에서 터져 나왔다.
아디다스는 대회득점왕에게 주는 황금신발(Golden Boot Award)을 제작 후원한 스폰서다. '상업주의의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이 '상업주의의 잔치상'을 뒤엎은 꼴이 됐다.
그의 발언은 뜨겁게 달아오르는 월드컵 열기 속에 이내 묻혀버렸다. 그러나 "축구가 덜 상업화됐을 때 위대한 선수들이 더 많았다. 지금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훌륭한 선수들이 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상업적 쇼다. 대회는 '돈벌이 기획'(commercial enterprise) 이상의 것이 아니다" 등등 두고두고 곰씹어 볼만한 대목도 적지 않다.
월드컵은 명실상부한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다. 전 세계 7억1천5백여만명이 2006 독일 월드컵 결승전을 지켜봤을 정도다. 세계인의 스포츠이자 높은 흥행성 때문에 글로벌 초(超)상업주의(hyper-commercialism)의 유혹은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공식후원업체 후원금은 4년 전에 비해 80%가 치솟았다. 아디다스와 코카콜라, 에미리트항공(아랍), 현대/기아, 소니, VISA는 이번 대회 공식파트너가 되기 위해 각각 1억 달러씩을 쾌척했다. TV중계권료는 20억 달러로 2006 월드컵 때보다 50%가 올랐다.
신흥국가들의 경제력이 막강해지면서 중국, 브라질, 인도, 아프리카의 유수기업들이 후원업체로 속속 등장하고, 월드컵 광고마케팅은 금년에 아시아 태평양지역이 6.8%, 브라질은 11.6% 성장이 예상된다고 한다.
디즈니 ESPN의 온라인 경기스트리밍을 통한 온라인 광고는 10.1% 신장이 점쳐지고, 월드컵 경기 관련 게임과 동영상,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입소문(바이럴:viral)을 통한 보다 싸고 보다 효율적인 새 마케팅기법이 날개를 달아준다.
지구촌 최대의 축제가 최고의 축구게임을 보장한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다. 그러나 거대한 잔치와 세계적 축제 열기에 비해 게임의 질이 떨어지고, 그 주된 원인으로 상업주의가 지목을 받는 현실이 문제다.
최고의 기량에 최고의 경기는 커녕, 천정부지로 몸값이 오른 스타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한 채 스폰서 돈 잔치 속에 FIFA의 배를 불리는 머니게임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들이다.
2010 월드컵 '빅3'로 꼽혔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리카르도 카카(브라질)는 모두 소속팀이 4강 문턱을 넘지 못하고 일찌감치 귀국 봇짐을 쌌다.
유럽 3대 리그를 평정하고 UEFA 챔피언스 리그까지 돌아가며 석권한 세계 축구계 슈퍼스타들이 아닌가. 소속 클럽에서 보여준 눈부신 활약에 비해 조국을 대표해 참가한 월드컵에서 이들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초라했다.
이들의 부진이유를 전문가들은 세 갈래로 분석한다. 첫째 클럽축구와 대표팀 축구는 전술운용이 다르다고한다.
클럽축구에서는 슈퍼스타의 기량을 극대화시키는 전술과 선수기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표팀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한정된 시간 안에 손발을 맞추다보니 조직력이 따라주지 않고, 선수 자원 역시 국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둘째 월드컵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들은 클럽에서 60-70경기 이상씩을 소화하며 에이스로서 비중이 큰 경기를 소화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극도로 지친 상태에서 월드컵에 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셋째 '이기는 축구'를 위한 압박과 협력수비가 중시되면서 걸출한 기량으로 경기흐름을 주도하는 '환상적인 스타'가 점점 나오기 어렵게 세계축구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점도 한 몫 한다고 한다.
탈진한 슈퍼스타들을 상업주의와 국가주의로 묶어 세계축구 제전이 아닌 국가 간 치열한 승부게임을 벌이는 것이 오늘의 월드컵이란 얘기가 된다.
70년대 네델란드 토털사커를 이끌었던 요한 크루이프가 브라질과의 8강전을 앞두고 "남아공 월드컵에서 돈을 주고 브라질경기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둥가 감독의 '실리축구'를 꼬집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브라질축구 하면 누구나 화려한 개인기를 바탕으로 리듬감과 창의력이 넘치는 예술축구를 떠올리지만 둥가감독은 "스타는 없다. 팀만 있다"며 조직력과 공수밸런스에 치중한 '실리'를 고집하다 8강에서 도중하차하고 말았다.
월드컵의 감동 하면 1970년 브라질대표팀 부터 떠올린다. 펠레와 자이르징요, 토스탕, 히벨리노는 당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들이었고 공격과 미드필드, 수비의 3박자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월드컵사상 최고의 드림팀이었다.
그러나 근년 들어 유럽의 조직축구가 위세를 발하고, 선수개인의 스타의식과 개인주의가 팀을 망친다는 비판이 점차 주류를 이루면서 화려한 스타플레이어와 함께 브라질 축구의 마법도 시들해졌다.
스타선수들의 기량발휘나 경기의 질(質)에서 월드컵대회가 클럽축구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표팀에서는 뛰어난 개인기량을 팀 전술로 녹여내는 데 한계가 있고, 게다가 토너먼트 단기전에서는 조직력과 협력수비에 의한 '이기는 축구'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월드컵을 개최하면 개최국에 경제적 대박을 안긴다는 '월드컵 보난자'도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다.
가장 성공적이었다는 2006 독일 월드컵의 경우 관광객 2백만명에 관광산업추가수입 3억유로, 소매판매 20억유로, 5만명의 일자리창출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안젤라 메르켈 총리실의 한 보고서가 밝혔다. 독일은 유럽대륙 한 가운데 위치해 사통팔달 자동차로, 기차로 접근이 용이해 대륙의 관광객을 쉽게 끌어 모을 수 있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은 외딴 아프리카 대륙남단에서 열려 당초 45만명 유치목표를 35만명으로 내려잡았다. 치안불안에다 아프리카팀들 마저 모두 탈락해 사상 첫 아프리카 월드컵의 구호도 빛을 바랬다.
46억달러를 쏟아 부어 세계수준급 스타디움 10개를 건설했지만 앞으로 활용방안이 문제다. 경기장건설과 관련해 13만명의 일자리가 창출됐다지만 그 중 3만명은 거리의 실업자로 되돌아왔고 남아공의 실업율은 24%로 고공행진이다.
경기장 주변은 FIFA가 맥도널드나 코카콜라, 버드와이저 등 공식 후원업체 제품들만 판매가 허용되는 '배타적 구역'으로 지정해 현지상권의 반발을 사고 있다.
축구의 질이 떨어지고, 대회개최국이 빚더미에 올라앉고, 축구에 대한 사랑보다 승부에 집착한 국가주의가 횡행한 가운데 공식후원업체나 FIFA의 배만 불려주는 월드컵, 거기에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축구영웅 에우제비오의 용기 있는 문제제기는 한 가닥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