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던 경제적 주장이 정책적 일상에서 다시 주목받는 모습을 보게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경제학자 토빈이 (너무) 잘 돌아가는 자본시장의 엔진에 모래를 뿌려넣어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제창한 토빈세가 EU 국가들의 논의의 장에서 재등장하였고, 당초 외환거래에 국한하여 제창된 토빈세가 작금의 논의에서는 자본시장거래세로 그 과세대상을 대폭 확대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자본시장거래세의 재등장은 금융위기로 인하여 크게 바뀐 정책결정 관여자들의 경제 및 금융에 대한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자본시장의 효율적인 움직임에 대하여 정부의 규제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다. 자본시장의 거래규모가 커지고 누적될수록 시장은 안정되고, 자율적으로 형성된 상품의 가격은 더 정확하게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믿음은 무참하게 깨어져 버렸다.
규제되지 않던 자본시장은 바람직한 결과를 시장참여자들에게 선사하지 못했으며, 형성된 금융상품의 가격이 리스크에 합당하지도, 시스템이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완전히 개방된 자본시장과 세계적으로 연계된 컴퓨터거래시스템으로 인하여 자본의 움직임은 한 가지 방향으로 일단 정해지면 세계적으로 동조되고 증폭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자본시장의 불안정성이 시장참여자들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 혹은 세계 경제 전체에 대한 시스템리스크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본시장에 대하여는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고 세금이 역할을 같이 해주면 좋겠다는 것이며, 이 배경에서 자본시장거래세가 국제무대에 재등장하게 된 것이다.
현재 금융부문에 부과되어야 한다고 국제적으로 거론되는 세금은 자본시장거래세 뿐 아니라 금융활동세와 금융안정분담금이 있다.
이러한 세금을 금융부문에 부과하는 이유는 우선 금융기관에 대하여 지원된 공적자금을 회수하여 납세자 부담을 줄이고 또 이를 통하여 향후에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을 차단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융시장에 부과될 새로운 세금은 충분한 세수의 확보 가능성과 미래에 대한 규제효과로 평가되어야 한다.
현재 EU에서는 자본시장거래세의 적정세율을 거래볼륨의 0.01%에서 0.5% 사이로 보고 있다. 낮은 세율이지만 워낙 거래규모가 방대하므로 여기서 예상되는 세수입은 금융활동세와 금융안정분담금으로 부터의 예상 세수입을 압도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금융활동세와 금융안정분담금은 개별 금융기관의 활동에 대하여 투기적 성격이나 위험자산의 소유 등을 기준으로 세율을 차별화하므로서,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만 작동하게 된다면, 금융기관들은 시스템리스크를 유발한 정도에 따라 세금을 부담하게 되고 규제효과를 가진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활동을 이러한 기준으로 구별해 낸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보아 매우 어렵다.
또 만약에 금융활동세와 금융안정분담금의 과세에서 그러한 차별과세가 가능하다면 자본시장거래세를 통하여 차별과세가 안될 이유가 없다. 시스템리스크를 유발하는 금융활동이나 상품의 거래에 대하여 다른 거래와 비교하여 높은 거래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당연히 규제효과도 있다.
EU국가들이 자본시장거래세를 선호하는 반면에 미국은 금융안정분담금 쪽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축통화국이며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한 미국의 입장에서는 스스로가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은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이 자본시장거래세로 인하여 현재보다 자본거래가 위축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 입장에 서는 것은 이해가 된다.
아직, 자본시장거래세의 도입은 국제적으로 결정된 바가 없다. EU 국가들은 캐나다에서 6월에 열리는 G20 회의에서 예상되어지는 미국의 반대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부산하다. EU 차원에서의 단독 도입에 대하여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국제적인 공조가 안되는 상황에서 일부국가들이 도입하는 자본시장거래세가 시장에 어떤 효과를 가져올까?
증권거래의 경우 우리나라는 현재 0.3%의 세율을 부과하고 있고 개별나라들이 각각 다른 세율을 부과하고 있거나 부과하지 않는 나라도 있지만 별다른 문제가 없다.
채권거래와 파생상품의 경우 우리나라는 과세하지 않고 있지만 몇몇 나라들은 과세하고 있고 이 경우도 특별한 문제가 예상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분야는 외환거래로서 달러/유로의 거래의 경우 미국과 유럽에서 각각 거래가 이루어지므로 유럽에서만 과세하고 미국에서 과세하지 않는다면 달러/유로의 거래는 미국쪽으로 거래의 비중이 옯겨갈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러나 달러/원화의 거래의 경우 원화가 국제통화가 아니므로 주로 우리나라에서 거래되고 거래세 부과로 인하여 그 장소가 외국으로 옮겨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어떠한 선택이 가능하고 필요한가?
우리 경제는 금융강국인 미국, 영국과는 다르다. 상대적으로 제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이를 지원하는 안정적인 금융산업을 원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경제는 (영국을 제외한) EU의 국가들과 유사한 특징을 가진다.
G20에서 우리의 올바른 입장은 자본시장거래세 도입을 위하여 EU국가들과 같이 미국을 설득하는 일이다.
[김유찬 객원논설위원] 독일 Hamburg 대학교 경제학 석/박사,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KPMG 독일 프랑크푸르트 Branch 근무, 계명대학교 경영대학 세무학과 교수, 중부지방국세청 납세지원국장, 홍익대학교 경영대학/세무대학원 교수(現), 서울지방국세청 납세자보호위원회 위원장 (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