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사고가 블랙홀처럼 우리사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면서 국론분열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사고발생 후 거의 한 달이 되어가는 데도 원인규명은 오리무중이다. 민·군 합동조사단이 침몰원인을 어뢰·기뢰 등의 외부폭발에 의한 것으로 잠정 결론지었다지만 그에 대한 의문과 반론은 그칠 줄 모른다.
사고 이후 군(軍)과 정부당국의 허둥대는 모습과 말 바꾸기, 이에 편승한 억측과 은폐의혹에다 '천안함의 정치'까지 끼어들면서 편이 갈라지고, 급기야 천안함과 함께 나라까지 두 동강 난다는 위기감마저 증폭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명확한 침몰원인과 단호한 대응'을 거듭 천명하고, '대한민국이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여·야 3당대표와 '천안함 간담회'를 자청한 그 자체가 사태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천안함 침몰 이후 우리 군과 정부의 대응능력은 국민들에게 '대한민국 수준이 아직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느냐'는 자괴감을 안길 정도였다.
우리 군과 정부는 사고 후 30여 시간이 지나서야 구조작업에 착수하고, 긴급소집 된 네 차례 안보장관회의에서도 '북한연루' 발언이 오락가락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생존자 구조는 해경이, 함미 발견은 어선이, 천안함 인양은 민간이 주도하고 국방장관 스스로 위기대응 매뉴얼조차 없었다고 실토하는 등 군과 정부당국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크게 실추됐다.
천안함 침몰은 군의 위기대응능력과 대통령의 안보리더십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국가안보차원의 중대사태'다.
사고원인을 과학적, 객관적으로 투명하게 밝혀내는 일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사고당시의 정황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필수적이다. 사고원인에 대한 갖은 억측과 유언비어는 지극히 상식적인 의문들에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여태 없고, 무언가 숨기고 있지 않느냐는 일반의 의혹들이 가시지 않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진실규명에 좌(左)와 우(右)가 있을 수 없다. SBS방송이 지난 17일 밤 방영한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런 의문과 궁금증을 대변한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민관 합동조사단 발표와는 달리 기뢰나 어뢰, 또는 수중폭발의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어뢰의 공격을 받았다면 엄청난 화염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생존자들 가운데 화상환자가 전혀 없었고 죽은 물고기 떼도 없었다. 열상감시장비(TOD)에도 전혀 열기가 감지되지 않았고 음파탐지기도 어뢰를 감지하지 못했다.
버블제트, 이른바 수중기뢰에 맞았다면 엄청난 물기둥이 솟구쳐 오르고 함실내부 승조원들 고막이 파열될 충격이 있었을 텐데 물기둥을 보지도 못했고, 갑판의 두 감시병이 물 한 방울 젖지 않은 채 구조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1200톤 대형초계함이 수심이 25m밖에 안 되는 백령도 부근에, 야간에 접근한 것은 이 고장 어민들도 이해가 안 간다는 지적이다. 첨단장비를 갖춘 속초함이 새 떼를 미확인 물체로 오인하고 경고 사격한 경위와 당시 교신내용도 미스터리다. 침몰당시 장면이 일선 초소 TOD 감시화면에 녹화가 안 돼 있다는 것도 여전 논란거리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사고당일 서해에서 한미합동 독수리 해상훈련이 진행중이었다고 한다. 미 하원청문회에 참석차 워싱턴에 출장중이던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이 침몰사고가 나자 일정을 취소하고 3월 27일 급거 한국에 돌아 온 점, 그리고 '북한이 개입한 증거는 알지못한다'고 입장을 밝힌 점 등도 주목을 끈다.
사고당시 가공할 정보력을 지닌 이지스함이 부근해역에 있었다면 미군 측이 뭔가 공표된 이상의 정보를 갖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양한 천안함의 프로펠러가 휘었고, 배 밑창이 엉망인 점에 비추어 뭔가에 부딪혀 물이 차고 결국 함체가 찢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원인규명에 22명으로 구성된 외국전문조사단이 투입됐지만 구체적인 물증으로 진실을 밝혀내는 일은 쉽지않다.
9·11테러의 경우 미국이 알카에다의 소행이라는 것을 초기에 알았지만 정부와 의회차원에서 진상을 규명해 이를 입증하는 데 3년여가 걸렸다. 국가적으로 이를 기다려줘야 하지만 우리에게 이런 인내가 없는 것이 문제다.
대통령이 '심증만으로 목소리를 내서는 안된다. 국제사회에서 신뢰할만한 균형감각을 갖고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맞다'고 거듭 강조하는 데도 여권은 북한의 소행을 기정사실화하고 군사적 보복까지 거론한다.
누구보다 신중해야 할 외교통상부장관이 "가상적인 얘기지만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난다면 유엔안보리에 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공공연히 얘기하는 정도다. 천안함 비극을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천안함 포퓰리즘'이다.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의 공격이나 불의의 사고 그 어느 경우든 후폭풍은 엄청날 수 밖에 없다.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날 경우 한반도는 '위기모드'로 치닫는다. 강력한 응징과 보복이라는 국민적 요구 앞에 정부는 난감한 입장에 처한다.
군사적으로 응징할 경우 경제가 발목이 잡히고,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해보려던 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진다.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된 것이 공식화되면 국가신용등급이나 투자등급도 곤두박질 칠 우려도 적지 않다.
반면 우리 측 사고에 의한 침몰의 경우에도 후폭풍은 그에 못지않다. 허점투성이의 위기대응 및 국가안보태세에 국민적 질타가 쏟아지고 대통령의 안보리더십까지 흔들릴 우려도 다분하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안함 표퓰리즘이 '천안함 정국'을 조성해 선거에서 일시 재미를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침몰 원인이 북한소행으로 드러나고 정부가 단호한 응징조치를 취해야 할 때 천안함 포퓰리즘은 정부와 여권에 어김없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침몰원인규명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고 대한민국의 국격이 걸려 있다.
침몰원인 규명 이후가 더 골치 꺼리일 수도 있다. 사고원인이 명확히 드러난 이후의 대응책이 여의치 않을 경우 아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겨두는 것이 국가이익을 위해 나을 수도 있다는 계산법 마저 고개를 든다.
김태영 국방장관 스스로 19일 국회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뢰나 어뢰가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지만 물증이 제한되기 때문에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 말이 의미심장하다.
함수까지 모두 건져 올린 후 모든 것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것으로 기대는 되지만 '천안함 정치'의 복잡한 계산법이 끼어들 경우 '천안함의 진실'은 백령도 근해 바다 밑에 계속 가라앉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변상근 논설고문]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