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안화 절상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원화가치가 1년 7개월 만에 한때 달러당 1110원대로 치솟았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중국의 자체 절상계획을 고수하겠다고 다음날 한마디 하자 기대감이 꺾이면서 원화가치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여전히 1120원대 강세다. 위안화는 오를 시늉도 않는데도 서울 외환시장은 그 기대감으로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 됐다. 선(先)반영이란 설명도 따랐다.
위안화가 절상되면 달러화가 약세가 되고, 원화 절상에 대한 미국의 압력도 거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중국이 달러 매수규모를 줄이게 되면 달러는 글로벌 약세통화가 되면서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는 덩달아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지난 2년여 동안 원-위안화 간의 상관계수를 적용하면 위안화는 4%만 절상되어도 원화는 달러대비 1100원 아래로 떨어진다는 계산이다. 성장을 중시하는 '고환율주의자'가 청와대 경제수석에 복귀하는 마당에 이 무슨 가당찮은 원고(高) 타령인가.
위안화는 2005년 달러와의 고정에서 풀리면서 2008년 말까지 20% 가량 올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8년 7월 이후 달러당 6.8위안에 거의 고정돼 있다.
특히 2009년 3월 이후 달러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졌는데도 위안화 환율은 그대로 유지돼 저평가된 위안화는 미· 중 두나라 간 무역불균형은 물론, 글로벌 경제회복에 '최대의 위협요인'으로 지목받아왔다.
시카고대학의 노벨상 수상 국제경제학자 로버트 앨리버 교수는 위안화 저평가 효과를 중국이 수입하는 미국상품에 50 내지 60%의 관세를 물리는 것에 비겼다.
미국에 수입되는 중국제품에 일률적으로 10% 관세를 매기자는 과격론이 미국 조야에서 힘을 얻고, 하원의원 130여명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등 위안화 갈등은 '환율전쟁'으로 치닫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중국은 위안화 환율을 '합리적이고 균형 있는 수준에서 안정을 유지하겠다'는 '공자말씀'으로 대응해왔다.
위안화가 절상되면 국내 실업이 증가할 것으로 중국은 우려한다. 위안화 가치를 낮게 유지해야 외국인 직접투자를 많이 유치하고, 선진국 고기술제품들의 수입을 억제해 중국 국내기업들에게 제품개발시간을 벌어 줄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중국은 지금도 개발도상국으로 아직 갈 길이 멀고, 중국의 '핵심이익'에는 어떠한 양보도 있을 수 없다며 버텨왔다.
그러나 미· 중 두나라 간 위안화 갈등이 오바마가 주도한 워싱턴의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전기(轉機)를 맞았다.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미국의 애를 태우다 오바마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한 뒤 참석의사를 밝혔고, 며칠 뒤 미 재무부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한 환율보고서의 발표를 미루었다.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이 인도를 방문한 길에 중국에 들러 왕치산 부총리와 비공개회담도 가졌다. 두 정상의 워싱턴 회동에서 양국 간 현안이 폭넓게 논의되고 이 과정에서 위안화 절상 문제에 어떤 진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나올법도 했다. 그러나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후진타오 주석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중국 자체의 절상계획을 고수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거두고 중국이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몇 달 유예기간을 이미 부여했다. 환율보고서는 1년에 두 번 만들어 공표한다. 따라서 중국당국자들은 다음 보고서 작성 때까지 몇 달간 시간을 번 셈이다. 이와 관련 런던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제 중국 당신네가 나설 차례요(Over to you, China)'라는 표현을 썼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제재 등 국제문제에서 중국의 협력을 얻어내야 할 것이 한 둘이 아니다. 특히 위안화절상 압박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불편해지면 이른바 주요 2개국(G2)으로 중국과 함께 세계경영을 주도하는 데 소탐대실(小耽大失)할 우려가 크다.
중국의 외교는 과거 '재능을 숨기고 때를 기다린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뜻을 이룬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로 몰라보게 당당해졌다. 티베트와 타이완 문제 등 이른바 '핵심이익'이 침해당했을 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력한 비난성명이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거리낌 없이 경고메시지를 던진다.
오바마의 달라이 라마 면담 이후 중국은 후진타오 주석의 핵안보정상회담 참가 여부를 무기로 미국을 다그쳐 '하나의 중국' 정책지지입장을 다시금 확인받았다.
위안화 절상문제는 미·중 양국이 티격태격하는 것보다 G20회의 등 다자간 협의를 통한 압력이 효과적이라는 현실적 판단도 크게 작용했다.
저평가된 위안화에 대한 불평의 목소리는 미국이 가장 크게 내고 있지만 인도와 브라질 등 신흥국가들 불만 역시 만만치 않고 앞으로 더 지속될 경우 G20의 중심의제가 될 공산이 크다.
위안화 절상은 무역상대국 뿐만 아니라 중국 자신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끈질기다.
저평가된 위안화는 외국인직접투자를 과다하게 끌어들여 중국경제를 과열시킨다. 위안화 절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통화투기를 불러들이고 이들 핫머니는 주식과 부동산 거품을 부채질한다. 위안화의 유동화만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들이다.
중국은 책임 있는 국가로서 국제적 협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위안화의 '합리적이고 균형 있는 수준의 안정'이 구체적으로 절상을 하겠다는 것인지, 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그 해석부터가 엇갈린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인민은행장은 환율메카니즘은 "중국 국가전략과 정책에 부합되게 이뤄져야하는 역동적인 프로세스"라며 위안화환율은 정치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달러는 극히 중요한 통화이며 중국은 그 가치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위안화 평가절상보다 건강한 달러가 세계경제의 작동에 더 중요하고, '미국 당신들부터 달러가치나 잘 챙기라'는 메시지로 들리기도 한다.
중국은 경제덩치가 공룡이면서도 빈곤인구가 10억이나 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제로섬(零和) 게임논리로 중국흑자를 문제 삼거나, 중국 견제 내지 포위전략은 성장과 글로벌 수요회복이 절실한 오늘의 글로벌경제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들도 만만치 않다.
중국당국이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력에 밀려 위안화를 상당 폭 일시에 절상하는 일은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중국이 고집하는 '안정바탕에서 유연한 운용'은 사실상 미세조정을 뜻한다.
위안화 절상은 미국과 중국 간의 길고 지루한 힘겨루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섣부른 예단과 대응을 자제하고 장기적으로 인내를 갖고 지켜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변상근 논설고문]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