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이 그 나라 국가브랜드 가치를 과연 얼마만큼 끌어 올릴 수 있을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 종합 5위의 성과를 거둔 이후 그 경제적 효과를 놓고 즐거운 숫자놀음들이 한창이다. 어느 유력 민간연구소는 동계올림픽 선전(善戰)의 경제적 가치를 20조2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했다.
해외방송 및 언론에 코리아가 집중 조명되면서 국가이미지 개선 및 국가브랜드 상승 등 직접적인 국가홍보효과가 1조2096억원, 그로 인한 기업이미지 제고 효과가 8400억원, 게다가 앞으로 14조8308억원의 기업매출증대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메달리스트가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간과 광고비용을 따져 메달 1개당 864억원에 준하는 광고가치가 발생하고, 해외언론의 반응까지 고려하면 이번 동계올림픽을 통해 한국의 국가이미지가 1%포인트 이상 높아진다는 계산이다.
스포츠 산업학 전문가들은 한국의 국가브랜드 이미지가 1％ 높아지면 12조원의 경제효과가 발생한다며 김연아의 금메달가치를 6조원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지난해 4월 야구대표팀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하고, 김연아가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그 경제적 효과는 둘을 합쳐 1조675억원으로 추정됐고, WBC 준우승으로 인한 미국과 중남미에서의 국가브랜드가치증대로 5년간 4억6000만달러의 수출증대까지 예상됐었다.
김연아 등 금메달리스트의 이미지는 대한민국 이미지에 연결되고, 대한민국 이미지는 대한민국 기업들의 이미지와 한국산 제품의 이미지에 즉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국하면 베컴, 러시아 하면 사라포바가 떠오르는 것처럼 김연아가 한국에 미치는 '후광효과'는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국가브랜드 상승효과를 불러온다는 주장들이다.
베컴과 사라포바가 영국과 러시아의 국가브랜드 상승에 과연 얼마나 기여할까. 그런 논리라면 '인간탄환' 으로 불리는 육상의 우사인 볼트, 만점을 받은 체조요정 나디아 코마네치를 낳은 자메이카와 루마니아의 국가브랜드는 엄청나게 치솟았어야 했다.
국가인지도와 국가브랜드파워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김연아를 모델로 광고 내지 후원한 기업들의 마케팅을 통한 국내 매출 증대효과와 '브랜드코리아', 즉 '품질의 한국'(Quality Korea)은 별개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세계 9위의 수출대국이고 경제력은 국내총생산(GDP)규모로 따져 세계 13위다. 그러나 국제적 국가브랜드평가기관 독일 안홀트·GMI사의 2009년 국가브랜드지수(Nation Brand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대상 50개국가운데 31위였다.
아시아에서 중국(22위) 싱가포르(24위) 인도(26위)에도 뒤졌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등 20개국 1만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조사결과다.
2008년의 33위에서 31위로 올라섰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과 바깥에 비친 한국 간에는 큰 격차가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1위로 올라선 미국과 비교하면 똑같은 제품이라도 국제시장에서 한국제품은 미국제품에 비해 평균 30% 값을 덜 받는다고 한다. 그 차이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국가브랜드는 그 나라가 만들어 수출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질은 물론이고 그 나라 국민들에 대한 인상, 투자 및 이민의 문호, 관광 매력, 민주적 국정운영, 문화 및 문화유산 등을 종합적으로 따진다.
그 나라에 대한 바깥세계의 총체적 이미지다. 분야별로 한국은 과학기술 수준(19위)을 제외하고는 거주 및 투자처로서의 매력(28위), 문화(31위), 한국 사람들(33위), 여행지 매력(41위) 등에서 여전 하위권이다.
제품의 브랜드가치가 올라가려면 그 제품에 대한 여론이 좋아야하듯 국가브랜드가치가 올라가려면 국제사회에서 그 나라에 대한 평판과 이미지가 좋아야한다.
세계를 감탄시킨 김연아의 무결점 기술과 연기, 그리고 빙상강국에로의 도약이 한국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지만 그로 인해 한국의 국가브랜드가치가 크게 올라갔다고 자가발전 함은 지나친 비약이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 당시 대한무역진흥공사는 한국의 국가이미지가 1％ 높아져 100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12조원의 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한국 축구의 국제축구연맹(FIFA)랭킹이 40~50위권에 머물러 온 현실에서 당시의 '4강 신화'가 국가브랜드가치를 얼마나 높였을지는 의문에 속한다.
'김연아 효과'가 글로벌기업의 인지도를 상승시켜 해외 판매증대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 또한 글로벌화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 부품조달과 생산 및 판매, 경영의 현지화로 오늘의 글로벌대기업들 제품에 국적은 갈수록 흐려지고 있다.
삼성과 LG, 현대차 등 한국의 대표적 글로벌기업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등을 의식해 '메이드 인 코리아'를 내세우지 않고 있다. 삼성이나 LG를 일본기업으로 착각하는 글로벌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김연아 효과'가 이들 글로벌기업들의 매출증대로 이어지게 하려면 먼저 이들 제품에 한국을 앞세웠어야 했다.
'품질의 한국'을 표방하고 그 품질의 살아있는 상징으로 '피겨여왕'과 '빙상한국'을 최대한 이미지 메이킹 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 브랜드전략(National Brand)이 먹혀들 때 매출증대효과는 가능해진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소비자들을 고객으로 상대하는 글로벌기업들 입장에서 제품에 국가브랜드가치가 높지도 않은 나라의 국적을 굳이 표기할 이유는 없다.
진정 글로벌 마케팅을 위한다면 김연아에게서 한국을 떼어내어 '세계인 피겨여왕'으로 각인시키는 접근법을 구사해야 한다.
'쏘나타 100만대 수출효과' '일본의 아사다 마오를 제압한 데서 오는 짜릿한 국민적 카타르시스'는 스포츠 승부를 지나치게 국가주의로 환원시키는 우리사회의 또 하나의 병폐다.
타이거우즈 같은 골프영웅에게서 미국인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스탠퍼드 대학을 다니는 미셸 위는 골프투어 중에도 호텔방에서 리포트에 몰두한다고 한다. 김연아를 이용한 '코리아 마케팅', 경쟁적인 '김연아 특수' 등등으로 김연아는 어느새 국가주의와 상업주의의 '볼모'로 되어가고 있다.
김연아 와 대한민국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김연아의 가녀린 어깨에서 '국가'나 '국민' 같은 국가주의의 짐을 덜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한국의 국가브랜드를 진정으로 높이는 길이다.
[변상근 논설고문]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