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책이 성공을 거두려면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한다.
우선 정책의 질(質)이 좋아야하고, 다음으로 원활한 소통을 통해 이해당사자의 공감과 자발적 협력을 얻어내야 한다. 정책콘텐츠는 정책성공의 필요조건이고, 국민과의 소통은 충분조건에 해당한다.
아무리 잘 디자인된 정책일지라도 소통이 원활치 못하면 정책집행이 지연되고 사회적 갈등 등으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거나 집행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정책결정을 독점해왔던 정부의 권한이 점차 축소되고, 정책의 법적 강제보다는 정책이해당사자들의 자율적 참여와 협력이 중요시되는 협치(協治)의 시대에 와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전통적 마케팅 원리들이 상품판촉에서 뿐만 아니라 공공정책의 정책소비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견지에서 '정책마케팅'이란 용어도 등장한 판이다. 특히 위기극복이나 개혁을 추진할 경우 소통을 통해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그 성패를 가름한다. 소통의 전선은 정책을 수립하는 정부 및 여권 내부의 소통과 정책이해관계자 등 국민과의 소통 양 갈래다.
소통을 통해 정책효과를 극대화한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곧잘 꼽힌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뉴딜정책도 훌륭했지만 수시로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며 정책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설득한 '소통의 리더십'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와 세종시 원안수정 등 두 개의 뜨거운 감자를 놓고 반대세력 및 여론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민과의 대화'에 이어 영 호남지역을 차례로 방문하며 지역여론 수렴에 적극 나섰다.
그러나 반대여론을 잠재우거나 설득할만한 이렇다 할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국이 얼어붙은 가운데 찬반공방이 더욱 첨예화되자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욕을 먹더라도 국가백년대계와 역사의 소명 앞에 할 일은 하겠다며 정면돌파 의지를 굳혀가는 분위기다.
소통에는 커뮤니케이션 스타일과 전략 노하우가 중요하다. 소통을 잘 하려면 듣는 것을 잘 해야 한다. '대통령과의 대화'는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기보다는 대통령이 자신의 입장을 국민이 이해해야 한다는 식으로 강요 하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진솔한 대화를 위한 '타운 홀 미팅' 형식을 취했지만 내용상 국민을 대상으로 한 요란한 홍보이벤트에 불과했다.
대선 때 세종시 원안추진을 공약한 데 대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고 심경을 밝혔지만 세종시 추진의 대전제였던 국토균형발전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철학이나 입장 변화에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수정의 이유로 옮겨 갈 중앙행정부서들의 불편을 애써 강조하고, 수정을 반대하는 충청도민들을 향해 기업이 들어가면 고용기회가 생긴다고 역설함으로써 국가적 문제가 아닌 충청지역의 문제로 논의를 격하시킨듯한 인상마저 풍겼다.
더구나 한나라당의 친박계가 '원안 플러스알파' 입장을 고수하며 강력한 차단막을 치고 나서 같은 여권 안에서의 소통문제가 심각함을 드러냈다.
말라 비틀어져 죽어가는 4대강을 살려야한다는 필요성은 모두가 인정한다. 다만 어떻게 살릴 것이냐가 문제다. 논란의 핵심은 대통령의 추진방식에 문제점이 많아 적잖은 전문가들과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는데 있다. 우선 사업규모가 한반도대운하를 미리 염두에 둔 듯 너무 거창하고, 국회에서 소요예산안도 통과되지 않았는데도 착공을 서두르는 등 추진과정이 석연치가 않았다.
뒤늦게 수질대책비를 책정하는 바람에 사업비가 14조원에서 22조원으로 늘어나고, 국가재정법시행령을 바꿔 4대강사업을 예비타당성조사대상에서 제외시키고, 환경영향평가를 3개월 만에 약식으로 끝내는 등 사업규모에 비해 준비가 허술하고 졸속이라는 비판들이 그치지 않았다.
'물일은 빠를수록 비용이 적게든다'는 대통령의 한마디로 이 모든 의문이 잠재워 질 수 있을 것인가.
모래를 깊이 파내어 물을 가득 채운 강은 유람선이 다니는 수로일 뿐 물고기가 알을 낳는 생명의 강은 아니라는 지적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거대한 인공의 강에 자연의 강을 수장(水葬)시켜 생태계를 교란하고 물을 흐름을 왜곡한다면 일시적 고용증대를 위해 국토를 항구적인 불구상태로 만들 위험성도 적지않다.
"어느 대통령이 환경오염이 뻔한 사업을 하겠는가. 우리의 공사장비와 기술은 세계적 수준"이라며 이를 '반대를 위한 반대'로 치부하는 대통령의 자세에서 소통 아닌 오만을, '경부고속도로도 처음에는 반대했다'는 비유에서는 잘 모르면 잠자코 따라오라는 식의 일방통행을 읽기에 족했다.
대통령은 한걸음 더 나아가 4대강사업이 환경을 오염시킨 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앞으로는 (이 문제에) 답변하지 않으려한다."(2일 열린 경북지역발전위원회 회의석상)며 소통의 문을 스스로 닫아버렸다. 4대강 살리기에 관한 여론조사는 찬반이 팽팽한 가운데 '사업은 하되 규모를 줄이자'는 사람들이 40% 안팎에 달한다. 국민에 대한 이 무슨 무례인가.
국민과 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 지도자들은 '역사와의 대화'를 들고 나온다. 반대세력이나 여론에 연연하지 않고 후일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며 밀어붙이는 행위다.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와 세종시 원안수정을 선진화의 기초를 닦는 일로 중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럴수록 여론을 수렴하고 타당성을 점검하고 차근차근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야했다.
세종시의 경우 정교한 대안을 마련해 박근혜 전 대표를 설득하고 여당의 중지를 모아 야당과 국민의 뜻을 타진했어야 옳았다.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초대형 국책사업이 착수 1년 만에 환경영향평가까지 끝내며 첫 삽을 뜨고, 3년 내 사업을 끝내는 식으로 밀어붙인다면 국민들이 의아해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반대행위를 지역정치논리로 일축하며 정치과정이 불도저식 행정에 압도당할 때 민주정치는 위기에 빠진다. 민주정치는 가장 비효율적인 정치체제라고 하지 않던가. 번거롭고, 시간이 걸리고, 중대한 국책사업일수록 일의 순서와 민주적 절차가 요구된다.
대통령은 인내심을 갖고 귀를 열어 듣고, 국민 앞에 열 번이고 직접 나서 설명하고 설득하고 진정성을 갖고 호소할 때 국민과의 소통은 이루어진다. 선진화의 기초는 대통령이 국민과 통하고, 일의 순서와 민주적 절차를 지킬 때 더욱 탄탄하게 다져진다.
[변상근 논설고문]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