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의 새 질서와 한국

무릇 위기는 낡은 틀을 부수고 새 질서를 잉태하기 마련이다.

미국이 주도해 온 글로벌 자본주의질서가 세기의 금융 쓰나미로 무너지면서 글로벌 리더십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미국은 이제 어제의 그 미국이 아니다.

조지 부시대통령이 2008년 11월 워싱턴에 G20정상들을 급거 불러 모은 이래 지난 4월의 런던, 지난 주 피츠버그 등 불과 열 달 새에 G20정상회의가 세 번이나 열렸다.

내년 6월에는 캐나다에서, 그리고 11월에는 한국에서 5차 회의가 예정돼있다. 위기극복이 화급한 과제이고 미국의 처지 또한 그만큼 다급함을 반증한다.

G20정상회의는 G7의 연장·확대가 아닌, G7의 대체다. G20을 누구도 'G7+13'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1999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수습하기위해 발족된 20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들 포럼이 근 10년 만에 국가정상들 포럼으로 승격된 것이다.

공식멤버는 19개국에 유럽연합(EU)대표를 포함해 20이지만 국제통화기금(IMF)및 세계은행총재 유엔사무총장 세계무역기구(WTO)등 국제기구 대표와 유수 국제포럼대표들, 그리고 네델란드와 스페인이 참석하는 등 실제 회의참석자는 29-30을 헤아린다.

세계인구의 3분의 2, 세계전체 총생산의 90%, 전체무역량의 80%(EU 역내교역 포함)를 차지하는 국가그룹들의 모임이라는 점에서 지구촌 '만국경제회의'로 불릴 만도 하다.

G7은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요 선진국 재무장관 모임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6개국 그룹(G6:Group Six)에 1976년 캐나다가 초청됨으로써 탄생했다.

재무장관회담이 국가정상들의 연례회담으로 이어지고, 이 정상회담에 러시아가 개최국이나 의장국이 되지 않는 조건으로 초청되면서 G8 정상회담으로 확대됐다. 의장국은 회의의제를 설정하고 옵서버를 초청할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금융문제와 기후변화 논의에 개발도상국들을 회의에 참석시키는 것이 좋겠다며 중국과 인도 브라질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G8+5'로 옵서버로 초청하면서 G13이 등장했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또는 이집트 등 이슬람국가나 스페인 등을 추가해 G14 내지 G16으로 확대시키자는 책동들도 꼬리를 물었다. 한국이 이들 그룹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아 속을 끓이는 가운데 'G7 플러스 알파' 체제가 사실상 종언을 고한 것이다.

G20은 글로벌경제협력을 위한 최고의 포럼(premier forum)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선언했다. 정치 안보분야에서 G7/8 정상회담은 계속 유효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경제 분야에서만은 그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G20의 당면과제는 금융위기의 재발을 막고, 거시경제정책에 계속 국제공조를 취하면서 보호무역의 세계적 확산을 저지하는 일이다. 그러나 도전은 결코 만만치 않다. 참여국 숫자가 많을수록 회의의 효율성은 떨어진다.

G20 멤버는 누가 선출하는 것이 아니다. 회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IMF의 스트라우스 칸 총재는 G20에 아프리카국가를 참여시켜야한다고 주장했다. 참여국들 스스로 자신의 가치와 정당성을 입증해야하고 이 과정에서 백가쟁명이 십상이다.

외환정책에서 20개국을 상대로 합의를 끌어내는 일은 지난한 과제다. 게다가 G20은 논의와 협의체 일 뿐 구속력이나 강제력 등 '이빨'(teeth)이 없다.

위기의 주요원인의 하나인 글로벌불균형 문제와 관련해 G20 공동성명은 어떤 나라들은 소비를 늘리고 저축을 줄여야한다고 개괄적으로 언급했을 뿐 대상국들의 실명을 거명치 않았다.

이를 이행치 않아도 IMF의 평가가 비우호적일 뿐 이를 강제하는 메커니즘은 없다. G20체제는 위기의 산물이다. 미국이 주요 신흥국들을 끌어안으면서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계산을 깔고 있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데 무슨 G20이냐며 G14체제로 가자고 발목을 잡았고, 독일은 그들의 국내정책을 구속하는 어떠한 바깥의 정책강제도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이 시큰둥하고, G20에서 제외된 나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경기가 회복되고 위기감이 줄어들 경우 국제공조의 모멘텀을 계속 견지할 수 있을 것인가도 의문이다. 새로운 보호주의 장벽에 경고를 발하면서도 중국산 타이어에 긴급수입금지를 발동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놓고 벌써부터 경제적 반달리즘(고의적 파괴 범죄)이라는 비난도 쏟아진다.

IMF 개혁의 첫 단추는 신흥국들에 각기 경제력에 상응하는 투표권을 주는 일이다. 중국은 경제규모가 프랑스보다 50% 크지만 IMF 투표권은 3.7%로 프랑스의 4.9%에 크게 못 미친다.

전반적으로 유럽국가들의 투표권이 경제력에 비해 과다하지만 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저항 또한 드세다. 중요한 것은 말의 잔치를 넘어선 실질적 협력체제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래 20여년 동안 이렇다 할 국제적 합의가 없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내년 11월 G20정상회의 한국개최는 분명 국가적 경사다. 이명박정부의 적극적인 유치노력에다 한국이 순번에 따른 내년도 G20 의장국이라는 사실, 그리고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일본에서 열린다는 사정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G20정상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한다고 국격과 한국의 위상이 저절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주도적 역할에는 희생과 책임이 따른다.

우리 힘에 버거운 제의나 과잉약속은 자제하며 새로운 G20 질서아래서 국가적 전략과 게임플랜을 차분히 모색할 때다. '단군 이래 최대행사' '외교사에 큰 획' 등 국내용 과잉홍보나 지나친 의미부여는 대외적으로 낯간지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