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가 9월로 벌써 1년이다.
각국이 다투어 경기부양에 안간힘을 쏟고있는 가운데 한국경제의 회복속도가 나라안팎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 침체속에서 한국이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나라의 하나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올 2분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증가율은 2.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가운데 가장 높았다. 유럽연합(EU) -0.3%, 주요 7개국(G7) -0.1% 성장에 비하면 괄목할 수준이다.
한국경제는 지난해 4분기 글로벌 경기침체로 -5.1%까지 추락했지만 곧바로 올 1분기 0.1% 성장으로 돌아섰고 2분기에 2.3% 성장으로 가속도가 붙었다. 고용지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표가 위기이전의 수준을 속속 회복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개선추세도 두드러진다.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7월 이후 13개월만에 1600선을 돌파했고, 지난 3월 1500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환율은 1200원선에서 하향안정세다. '너무 빨리 좋아져 오히려 불안하다'는 우려가 나올 만도 하다.
한국경제의 빠른 회복세는 세갈래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가 숫자의 마술이다. 급락 뒤의 급등이라고나 할까, 골이 깊으면 산도 높아 보인다. 이른바 기저효과(base effect)다.
둘째 재정을 통한 적극적인 경기부양이다. 세계 각국이 다투어 재정지출을 늘렸지만 그 집행속도와 폭에서 한국이 재빠르고 과감했다. 연중 집행계획을 지난 연말에 다 짰고 연초 부처업무보고도 연말로 앞당겼다.
10년 전 외환위기에서 배운 학습효과가 셋째다.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이 크게 낮아진데다 현금보유가 상당했다. 금융선진국들에 비해 금융의 국제화가 덜 되어 금융회사들의 피해와 손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국제화가 엉성하게 많이 된 독일이 특히 피해가 극심하다. 재정확대와 통화신용 완화, 금융시장안정책의 삼각대응으로 금융시스템의 조기 안정화를 통해 회복의 흐름을 탈 수 있게 한 것은 10년 전 위기에서 터득한 정책의 노하우다.
회복의 흐름을 탔다고는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재정을 통한 각종 일자리사업은 하반기에 끝난다. 재정적자가 누적돼 경기부양을 위한 '실탄'도 소진된 상태다.
지금까지 정부가 앞장 서 회복을 이끌었고 이제부터는 민간부문과 기업들이 나설 차례지만 불안요인은 도처에 도사려있다. 제조업가동률이 작년 9월 글로벌금융위기 이전수준으로 회복됐다고는 하지만 이는 기업들의 재고조정과 일부 업종 및 관련 대기업들의 선전에 크게 힘입었다.
내수경기는 여전히 한겨울속이다. 무역수지가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내용상 수출증가폭보다 내수침체영향으로 수입감소폭이 더 커 무역수지가 개선되는 '불황형 흑자'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수출시장수요는 꽁꽁 얼어붙은 상태다. 중국이 이들 수요를 대신해 줄 것으로 일부 기대를 했지만 지난 상반기 중 중국의 대외수입은 오히려 크게 줄어들었다.
GDP증가률은 계속 좋아지는데도 가계의 실질소득과 소비는 3분기 연속 동반감소하고 있는 현실도 예사롭지가 않다. 가계부채 고용부진 유가상승세 등 내수의 발목을 잡는 불안요인들이 도사려있어 앞으로 지속적 경제회복은 낙관을 불허한다.
회복세가 빠른 만큼 풀어놓은 돈을 거둬들이는 '출구전략'도 남들보다 먼저 고민해야한다.
이스라엘의 뒤를 따라 금리를 올릴 첫 번째 후보국으로 한국이 공공연히 지목되는 상황이다. 세계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현재의 재정 통화정책을 지속할 수도, 그렇다고 그만 둘 수도 없는 일대 딜레머에 봉착해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적자를 지속시킬 경우 인플레기대심리가 커지고 재정이 블랙홀로 빠져들 위험이 다분하다. 그렇다고 세금을 올리고 지출을 줄이고 풀린 유동성을 흡수한다면 경제회복은 지체되고 경기침체는 가속화할 우려가 크다.
회복세가 빠른 나라일수록 금리인상과 세금인상의 유혹은 커진다. 그동안 감세에 무게중심을 두어왔던 한국의 조세기조도 증세 쪽으로 돌아섰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아직 출구전략은 이르다"고 밝혔지만 문제는 과다한 유동성이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에서 일으키는 거품이다.
주택가격은 버블세븐지역의 경우 지난 2~3년 사이 최고점 대비 30% 정도까지 하락했지만 부동산경기활성화 정책과 한강르네상스, 재건축, 재개발 등 각종 개발사업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상승해 2006년의 최고점 수준으로 돌아왔다.
세계적으로 과잉유동성에 따른 부동산거품이 꺼지고 집값의 하향안정세가 두드러지고 있는데도 빠른 회복세에 따른 기대심리에 투기수요까지 가세해 한국의 집값은 치솟고 있다. 시중유동자금이 800조원을 넘고, 주택담보대출은 340조, 올 들어 28조원이 증가했다.
국민소득 대비 주택가격의 비율로 따질 때 우리의 수도권지역 주택가격에는 상당한 거품이 끼어있다. 금리인상 등 출구전략 발동여부가 부동산가격동향에 좌우될 정도로 집값상승은 우리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부동산시장의 정상화' 수준을 넘어 건설경기와 부동산경기를 활성화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자업자득인 측면도 강하다.
대외적 충격에 취약해 글로벌금융위기 때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은 나라가 1년 만에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것은 대견한 일이다.
그러나 세계가 'U'자형 내지 'W'자형 '더블 딥'을 걱정하는 마당에 대외의존적인 한국경제가 'V'자형 회복을, 그것도 부양책 없이 지속할 수 있을지는 실로 의문이다. 지표 회복세에 대한 과신과 착시(錯視)를 경계한다.
[변상근 논설고문]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