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금융정책 시스템은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인해 기존 재정경제부-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 체제가 해체되고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체제로 이원화됐다.
금융위는 과거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가 가지고 있는 금융정책기능과 금감위의 금융감독기능을 통합한 기구로 탄생됐으며, 금감원은 금융위의 손과 발 역할을 하는 하부기관으로 전락, 검사·감독 기능만 수행하게 됐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한 곳에서 하게 되면, 정책이 감독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등 관치 우려를 낳기도 했지만 금융정책 시스템에 대한 개편은 이명박 정부의 방침대로 현실화됐다.
그러나 이 같은 시스템의 개편은 '완전정착'을 이뤄내지 못한 상태에서 안팎의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에서부터 불어닥친 세계적 금융위기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금융위의 정책기능과 감독기능을 분리하고, 감독기능을 순수한 민간기관에 맡기는 형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주장의 상황적 배경은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가 제공하고 있는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과감한 '실험(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체제 수립)'이 경제현장에서 목적했던 만큼의 효율성을 발휘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 논리적 배경도 깔려 있는 모습이다.
□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 불안감 휩싸인 한국경제= 이명박 정부 출범 초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경제가 이렇게 악화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이명박 정권이 침체된 한국경제를 수렁에서 건져낼 확실한 '대안'이라는 일종의 집단최면에 걸려있었기 때문.
그러나 이 같은 집단최면은 미국에서부터 시작, 전세계적으로 파급된 '금융위기' 파고가 한국에 도착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은 상당했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3000선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난무했던 증시는 900선 아래로 주저앉으며 주식투자자들을 울렸다. 환율급등은 '키코'에 가입했던 수출중소기업들에게 엄청난 손해를 안겼다.
금융시장을 주도하는 은행들도 금융위기에 직격탄을 맞았다. 단기외채를 갚지 못한 은행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대규모 지원책(1000억 달러 지급보증)을 내놓기도 했다.
금융시장의 불안은 실물경제에까지 타격을 줬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민간소비 침체까지 겹쳐져 기업들을 위기로 몰아 넣었다. 건설사들을 포함해 중소기업, 일부 대기업들까지 자금난에 허덕이면서 정부차원의 기업 구조조정 필요성이 화두로 떠올랐다.
정작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경제위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예측이 어렵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내년 혹은 내후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불안한 예측들이 난무하고 있어 심리적 불안감을 더욱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 '시험대' 오른 금융당국= 세계적 돌림병인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처방전'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전적으로 금융당국의 두 어깨에 놓이게 됐다.
대한민국 경제정책 총괄은 기획재정부의 역할이지만 기업 구조조정, 금융사 구조조정 등 경제위기 상황 전반에 걸친 실질적인 정책추진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주도해야 하는 형편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국내 금융시장 불안에서부터 비롯됐기 때문에 금융위와 금감원이 주도적 위치에서 금융시장의 체질을 개선하고 부실기업 퇴출, 방만한 금융사들의 군살을 제거하는 데 정책역량을 쏟아 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출범 1년도 채 되지 않은 현재의 금융정책 시스템을 재조정, 금융위와 금감원을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러한 맥락.
따라서 두 기관이 어느 정도의 역량을 발휘해 위기의 진앙지인 금융시장 개선을 이끌어내느냐는 두 기관의 향후 운명(?)을 결정짓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바야흐로 '시험대'에 올라선 셈이다.
□ 주요 '이슈'를 통해 돌아본 2008년 금융당국= 이명박 정권이 꼽은 금융시장의 대표적인 규제 '전봇대'는 금산분리 완화.
금융위 출범과 민간출신 위원장(전광우)을 선택한 것은 시장원리를 체득한 민간인 위원장 주도로 금산분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후 금융위는 시민단체와 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월 산업자본의 은행주식 보유 한도를 대폭 완화(3%→10%)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사실상의 금산분리 완화 법안(은행법·금융지주회사법 등)을 발표했다.
금산분리 완화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 여당인 한나라당은 이 법안을 '경제살리기 법안'으로 규정,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민주당 등 야당의 반발이 거세 연내 입법작업 완료 여부가 불투명한 형국이다.
파생금융상품 '키코' 파동은 정치·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환헤지 상품인 키코는 환율급등의 여파로 상품에 가입한 수출중소기업들에게 엄청난 손실을 입혔다. 특히 은행들의 키코 '불완전 판매' 의혹까지 겹쳐져 금융당국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환율 급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손실로 인해 우량 중소기업들이 쓰러지고 금융당국의 미숙한 키코사태 대응 문제가 정치 쟁점화 되면서 금융당국의 주도 하에 유동성 지원과 불완전 판매 여부 조사 착수 등 정책이 시행됐지만 '뒷북대응'이란 비판은 면치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