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충격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 원인
채권 평가손실 급증에 결국 '뱅크런'
오히려 대형은행 안정성 부각 가능성
연준 50bp 인상 확률 낮아져...25bp 인상 가능성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에 있는 로고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등 경제·금융 수장들은 12일 거시경제·금융현안 관련 간담회를 열고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여파를 점검했다.
이들은 "아직까지는 미국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란 전문가들의 시각이 우세하다"면서도 "금융시장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국내은행의 경우 이번 사태와 관련된 게 없고 사업모델도 달라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모니터링을 지속하기로 했다.
앞서 10일(현지시각)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유동성 위기로 주가가 급락한 가운데 미국 금융당국이 은행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SVB는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으로 벤처캐피탈(VC) 및 스타트업과 주로 거래해왔다.
예금 대량인출(뱅크런)이 지속되자 지주회사인 SVB파이낸셜그룹은 210억달러 규모의 보유 증권을 매각했으나 18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22.5억달러의 대규모 자금조달 계획 발표에도 실패했고 결국 파산이 결정됐다.
SVB 파산의 이유로는 고금리 충격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가 꼽힌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SVB파이낸셜은 주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으로부터 예금을 받아 이를 다른 기업에 지원하는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며 "그러나 연준의 긴축 기조가 장기화되며 기업의 비용 부담이 늘어났고, 예금 규모가 줄어들면서 결국 자산매각 단계까지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SVB 포트폴리오상 문제도 지적된다. 이영주 하나증권 연구원은 "SVB의 문제점은 투자 포트폴리오가 지나치게 장기채권에 집중됐다"며 "지난해 금리 인상과 맞물려 평가 손실이 급증하면서 예금자의 뱅크런이 유도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사태로 미국 은행권 전반의 채권 포트폴리오 손실 문제가 크게 부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4분기말 기준 미국 대출기관의 증권 포트폴리오에서 미실현 손실 규모는 6200억달러로 이례적으로 크다고 평가된다.
김 연구원은 "주요 은행들은 많은 채권을 자산으로 보유 중이며, 연준의 금리인상 장기화로 인해 손실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악의 시나리오는 예금 인출을 충당하기 위해 일부 증권을 손실로 매각함으로써 SVB를 따라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연구원은 "SVB가 파산할 경우 예금 손실로 인해 VC, 스타트업의 자금 경색이 발생할 것"이라며 "기술 생태계는 더 큰 감원과 도미노 붕괴 가능성이 초래될 수 있는 만큼 미국 정부의 개입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다만 이번 사태가 미국 은행산업 및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전이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영주 연구원은 "은행 전반의 위기로 성급하게 판단할 필요는 없다"며 "오히려 이번 사태로 인해 대형은행의 안정성이 부각돼 가치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대형은행의 예금 환경은 안정적이며 지난 15년간의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자본건전성이 개선됐고 고객층이 다변화됐기 때문에 SVB와 같은 뱅크런이 발생할 우려가 적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구조적으로 취약한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신뢰도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은 있다.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최근 캘리포니아주 내 중소은행들의 유동성 불안 사태는 자금조달과 투자가 편중된 일부 은행만의 문제일 수도 있다"면서도 "구조적으로 취약한 일부 소형은행들은 물론 벤처캐피탈 산업, 해외 은행권 외에 연준의 통화정책 향방 등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SVB 사태 직전까지 시장은 3월 FOMC 빅스텝(50bp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했으나 분위기가 전환되고 있다. 페드워치(FedWatch)의 3월 50bp 인상 확률은 78.6%에서 60.2%로 하락했으며 25bp 인상 확률은 21.4%에서 39.8%로 상승했다. 5.05%까지 상승했던 미국 2년 국채금리도 SVB 사태 직후 4.74%까지 급락하며 달라진 시장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