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2050억 부채에 채무보증 약속...기한은 아직
증권사, 50~200억 사들여 개인신탁·법인계정에 판매
◆…강원도 춘천 레고랜드. 연합뉴스 제공
강원도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의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ABCP를 사들인 증권사들은 물론 개인투자자들의 손실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채무보증을 약속한 강원도가 보증이행에 언제쯤 나설지 주목된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레고랜드 ABCP의 주관사였던 BNK투자증권은 전날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채권단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레고랜드 ABCP를 인수했던 증권사(미래에셋·한국투자·NH투자·삼성·KB·신한투자·대신) 등 10개 기관과 강원도청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강원도는 채무를 조속히 이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구체적인 지급 시기나 방법은 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채권단은 강원도의 검토 결과를 받은 뒤 추가 회의 여부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
앞서 2020년 레고랜드 사업 주체인 강원도중도개발공사(GJC)는 건설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특수목적법인(SPC)인 아이원제일차를 세우고 2050억원 규모의 ABCP를 발행했다.
BNK투자증권은 발행 주관사를 맡았고 강원도는 지급보증을 섰다. BNK투자증권은 ABCP를 10여 곳의 증권사를 비롯한 기관에 매각했다. 증권사들은 50~200억 수준으로 ABCP를 인수한 뒤 개인신탁계정과 법인고객계정 등을 통해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9일 ABCP 만기가 도래했지만 강원도는 GJC에 대한 법원 회생절차 신청을 결정했다. 이후 30일 BNK투자증권에 채무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ABCP의 신용등급은 ‘A1’에서 ‘D’로 강등됐고 최종 부도 처리됐다.
◆…한국신용평가 제공
모든 시선은 강원도의 채무보증 이행 여부에 쏠려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금 만기는 9월 29일 도래했으나 내년 11월 28일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출 만기일이 연장될 수 있었다”며 “강원도가 당장 보증채무 이행능력이 부족했어도 ABCP의 차환발행을 통해 1년 이상의 시간을 벌면서 이행능력 확보 방안을 찾을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는데 이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강원도는 “지난 8월 GJC는 아이원제일차 측과 내년 1월까지 대출기한 연장에 합의하고 4개월간의 선취이자 납부를 완료했다”며 “이는 강원도가 보증채무를 회피하지 않겠다는 것과 투자자들의 이익도 계획대로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GJC 회생신청에 대해서는 “보증채무를 회피하거나 채무를 경감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라며 “충분한 자산과 실력을 보유한 개발사업자를 찾아 사업을 정상화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번 사태로 인해 자본시장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신용보강한 PF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유동화증권의 상환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유동화의 거래참가자로서 강원도의 책임 있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한국신용평가는 강원도의 지급의무 불이행사태가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김용건 한신평 연구원은 “지방자치단체 신용보강을 통한 유동화 건의 차환위험이 상승했다. 투자 기피로 인한 차환발행이 여의치 않을 것에 대비해 주관회사 및 지방자치단체 등의 대응책 마련이 제때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여타 PF론 유동화의 조달금리, 차환 등 조달환경에 부정적 영향은 불가피하다”며 “금융시장의 PF론 투자 기피는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에 부정적 요인이며 매입확약 등 우발부채 형태로 유동화 익스포저(노출액)를 보유한 증권사에도 유동성 부담을 가중하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가 다른 지방자치단체로 확산하진 않을까 하는 시장의 우려도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6월말 기준 국내 유동화시장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신용보강에 의한 유동화회사는 약 30건, 발행잔액 기준 약 1.3조원 수준이다. 신용평가사와 증권사들은 추가 확산 여지는 적지만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등 부정적 영향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이번 사안은 강원도와 중도개발공사에 국한된 이벤트로 다른 지자체의 유동화 보증채권의 신용도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투자자들이 회피 반응을 보이면서 관련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지자체는 유동화증권의 차환발행이 안될 것을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도 “지자체 전체로 확산할 가능성은 적지만 지방 공기업채의 차환 및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투자심리를 더욱 위축시켜 PF-ABCP 및 A등급 건설사의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를 증폭시킬 트리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대호 KB증권 연구원은 “레고랜드 대출 SPC의 회생신청 결정 후 우량 CP 가격은 오히려 비싸진 데 반해 PF-ABCP 스프레드가 급등했다”며 “지급불능 이슈 자체보다는 PF-ABCP를 편입한 금전신탁 시장의 신뢰훼손으로 연결되는 게 본질적인 걱정거리”라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