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가 사라진 그 자리, '정책'이 앉았다

13일 오전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재정위원회 종합 국정감사(기획재정부·국세청·관세청·통계청·조달청)에선 기재부를 비롯한 5개 피감기관에 대한 각종 문제가 두루두루 도마 위에 올랐다.

이날 의원들은 이전 국감에서 줄기차게 제기됐던 미르·K재단 의혹에 대한 질의를 멈춘 채 정책 질의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20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탈루했다는 감사원의 지적에 현재 국세청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외국계 담배회사의 한국 대표들이 증인으로 참석,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 표명하기도 했다.

유일호의 '뚝심'…"법인세 인상, 아직은 아니다"

여야의 오랜 논쟁거리 중 하나인 법인세 인상 문제는 이날 국감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여당의원들과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 위축을 이유로 아직은 법인세를 인상할 시기가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야당의원들은 양극화 해소와 세수 확보의 방법으로 법인세부터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법인세를 인상하면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냐"며 "전체 기업 중 0.04%에 해당하는 재벌기업이 법인세를 더 낸다 해서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건 우리경제가 잘못된 구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 간 심각한 양극화가 벌어지는 게 분명히 심화됐기 때문에 법인세 정상화가 꼭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 부총리는 "기업 간 실적차이가 분명히 확대되기는 하지만, 그걸 해결하기 위해 상위 계층의 법인세를 강화하는 게 맞는지, 다른 기업생태계를 높이는 게 맞는지에 대해 제 생각에는 후자가 좀 더 맞는 정책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 역시 유 부총리의 말에 동감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박 의원은 "법인세 이야기가 많은데, 역대정부가 (세율을)내려서 또 외국이 내렸다고 따라가야 할 필요는 없지만 역대정부가 계속 법인세를 내렸는데 왜 내렸느냐"고 물었고 유 부총리는 "국제적인 경쟁력 유지와 경기활성화를 위해서였다"고 답했다.

박 의원은 이어 "일본, 중국 등도 법인세 인하 경쟁에 나서고 있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도 법인세를 낮추고 있다"며 "아일랜드가 법인세율이 가장 낮은데 덕분에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IT기업들의 본사가 전부 아일랜드에 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법인세 인상 문제가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경제 상황에 따라 판단할 문제다. 그래서 지금은 인상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유 부총리는 "불변의 세율은 없다. 재차 말하자면 현재 상황으로 볼 때는 법인세를 인상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고 박 의원은 "집권 여당으로서 법인세 인상이 가장 쉬운 방법일 수도 있지만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동의했다.

재고차익 탈세 의혹에 말문 연 필립모리스 "법적으론 가능했는데…"

재고차익을 통해 담뱃세를 탈루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필립모리스 코리아와 브리티쉬 아메리칸 타바코 코리아는 이날 국감장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해명했다.

정일우 필립모리스 코리아 대표는 "법해석상 명백한 차이가 있다. 담뱃세는 반출할 때 확정이 되는데 2014년 말 전에 외부에 있는 양산공장에서 반출이 완료된 것이다. 감사원의 시각은 외부창고가 공장의 일부라고 봤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토니 헤이워드 브리티시 아메리칸 타바코 대표는 "부임한 지 5주 밖에 안 돼 업무를 파악하는 과정이라 상세한 설명을 드리긴 어렵다"며 "제가 알기로 반출 절차는 항상 같다. 국세청에서 이 문제를 조사 중인데 조사가 끝나면 정확한 사실관계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최경환 부총리 시절 1~8월까지 월평균 반출량이 104%를 초과하지 않도록 매점매석 고시를 하고, 매점매석 점검단까지 구성해 시세차익에 대한 탈세를 없애겠다고 했다"며 "그런데 감사원 결과를 보면 매점매석 고시가 안 됐고 점검도 제대로 안 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이어 "고시를 한 기재부가 제대로 고시를 이행하지도 않았다"라며 "이에 따른 국고손실이 필립모리스는 1789억원, 브리티쉬 392억원, 도소매상까지 합치면 7983억원이다.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유 부총리는 "매점매석 고시를 했으나, 대응이 미흡했다"라며 "(현재)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고 임환수 국세청장은 "재고차익 등 의도적인 조세포탈은 검토해서 추징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필립모리스 정일우 대표는 "저희가 해왔던 것들이 십 수년동안 문제가 제기된 적이 없었다. 똑같은 행위에 대해 위법하다고 지적하는 것에 대해 당황스러운 상황"이라며 "이 문제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많은 질문을 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법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모든 게 옳지는 않다는 걸 배웠다"고 말했다.

원상복귀한 '관피아'…"대통령 말의 유효기간은 1년"

이 밖에도 종합국감인 만큼 다양한 정책질의가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한미FTA 체결 이후 반덤핑관세가 늘어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고 국민의당 박주현 의원은 양극화 해소를 위해 '엉터리' 지니계수부터 고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새누리당 추경호 의원은 전반적인 노동시장을 분석하며 생산성 향상 방안 마련을 주문했고 같은 당 김광림 의원은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와 더불어 청약과잉, 집단대출 문제 등을 지적하기도 했다.

아울러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의원은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손실을 우려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고 같은 당 김두관 의원은 어려운 해운업계 상황과 관련한 대책을 유 부총리에게 요구했다.

국민의당 김성식 의원은 지난 국세청 국정감사에서도 제기한 국세청의 과도한 세금 신고 전 사전안내 문제를 지적했으며,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세월호 참사 이후 줄었던 '관피아' 비율이 1년 만에 원상복귀했다"며 "대통령 말의 유효기간이 1년"이라고 힐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