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소송 서면 30쪽 제한에 대한 기대

앞으로 행정소송에서 당사자가 법원에 제출하는 소장이나 답변서, 항소, 상고이유서 등 서면이 30쪽을 넘을 수 없게 될 전망이다.

대법원이 민사소송규칙을 고쳐 민사, 가사, 행정소송에서 각종 제출서면이 30쪽을 넘기면 재판장이 이를 30쪽 이내로 줄여 제출할 것을 명령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마련하여 입법예고하였다.

다만 변론권 제한이 될 우려가 있어 30쪽을 넘더라도 접수거부 등의 제재는 하지 않기로 한다는 것이다. 쪽수 제한과 아울러 서면의 크기와 여백, 글자크기 및 줄 간격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강제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지금까지의 무한정 늘어만 가던 서면 쪽수 경쟁은 수그러질 전망이다. 법원이 모처럼 박수 받을 조치이다.

서면 쪽수 제한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 연방법원 및 주법원은 서면의 페이지와 단어 수를 제한하는 규칙을 두고 있다.

연방항소법원의 경우 최초 서면은 30 페이지 및 1만4000 단어, 반박서면은 15페이지로 제한된다. 글자크기, 여백에 대한 규제도 따른다. 서면 쪽수가 종전보다 비교할 수 없게 늘어난 이유 중의 하나는 문서가 전자화되고 인터넷 세상을 맞게 되었기 때문이다.

의뢰인이 입수하는 옥석 구분이 없는 사건 관련 정보가 무더기로 대리인에게 전달된다. 대리인은 의뢰인의 반영 요구에 응하거나 일일이 당부를 가려 설명하여 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의뢰인의 주장과 자료가 여과 없이 법원에 전달되는 경우가 흔하다. 대리인으로서는 당사자와의 공연한 마찰을 피하고 패소 시 질책에 대비할 필요를 느껴서이다.

또 하나, 상대방 대리인과의 외형적 경쟁도 관련이 있다. 상대방이 100쪽을 써냈는데 우리가 20쪽이라면 무엇인가 기싸움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 하는 의뢰인이나 외부의 시각을 무시할 수 없는 면도 있다.

그러나 사건의 승패는 쪽수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핵심적인 쟁점정리와 언어로서 법관을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 쪽수가 많으면 후반에 집중도가 자연스레 떨어지고 잡다한 주장으로 핵심이 흐려진다.

긴 서면을 읽기는 읽었으나 핵심은 잡히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쪽수 대결은 소송절차에서 가장 소모적인 경쟁으로서 쌍방 대리인, 재판부 모두 부담만 가중된다.

이번 대법원규칙의 30쪽 제한은 당사자들의 일방적인 요청을 자제시키거나 대리인 스스로도 좀더 짜임새 있는 논리구성과 효율적인 소송수행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대리인은 앞으로 서면 작성에 있어 문장을 축약하고 도표나 산식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궁리하여야 할 것이다.

이로 인하여 소송비용도 절감되고 법원으로서도 기록의 부담을 덜어 보다 나은 판결을 만드는데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서면 쪽수의 제한은 민사, 가사는 물론 조세행정소송절차에서도 유용할 것이다.

이는 전심이 필수적인 조세심판, 심사청구절차에서도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전심절차 진행에 있어 서면에 의한 공방은 나름대로 독특한 틀을 유지하여 법원에서의 소송절차에서보다는 덜 소모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전심절차에서도 법원절차에 익숙한 일부 대리인들이 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방대한 서면을 작성, 제출함으로 인하여 심판관계자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대법원의 소송규칙 개선으로 전심절차를 포함한 조세쟁송의 모든 영역에서 소모적인 서면 경쟁에서 벗어나 효율적이고 차별화가 가능한 새로운 공방의 틀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