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그 세무법인 국세청에 찍혔답니다"

세무대리 업계에 '동업자 정신'이 시들고 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동업자 정신은 사라지고 뒤에서 서로를 물고 뜯는 비정상적 행태가 암암리에 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경쟁의 어두운 이면, 그 속에서 세무대리 업계는 멍들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생존을 위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세무법인 상호간 비방과 음해, 깎아내리기가 심각한 수준에 치닫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는 꽤 오래전부터 나왔었다.

특히 몇몇 대형 세무법인들이 치열한 시장 주도권 싸움을 본격화하면서 도를 넘어서는 수준의 비방전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정 세무법인의 업무능력이나 경영상태에 대한 비방은 기본이요, 검찰이나 국세청의 조사 또는 감시를 받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허위사실, 심지어 대표 개인에 대한 인격적 비하까지 난무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업계 상호간 비방과 음해가 상대 세무법인의 매출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정도가 되는 등 법적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을 정도다.

28일 조세일보(www.joseilbo.com)가 국내 유수의 세무법인 대표들과 개별 취재를 진행한 결과 적지 않은 수의 세무법인 대표들이 허무맹랑한 음해와 비방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 세무법인 검찰 조사 받는 것 모르셨어요?"

익명을 요구한 A세무법인 대표는 "다른 세무법인에서 우리가 수임하려는 고객에게 접촉해 대표가 검찰조사를 받을 예정이라는 둥 국세청에 밉보여 찍힌 세무법인이라는 둥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를 지속적으로 양산해 고객을 가로채고 있다. 이 때문에 매출에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다"며 "아무리 경쟁이 치열하다지만 이런 방법은 너무 비열한 것 아닌가"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법적 대응 등 방지책을 구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권유에 그는 "하루이틀 문제도 아니고, 법적으로 문제를 삼을 경우 더 골치가 아파질 수 있다. 게다가 말이 이리 저리 돌면서 부풀려졌기 때문에 누가 먼저 잘못했다고 딱 잡아내기도 힘든 측면이 크다. 답답하지만 그냥 흘러가는대로 놔두는 것이 상책이라는 판단이다"라고 말했다.

비방과 음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밝힌 B세무법인 대표도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서 다른 세무법인에 대해 험담을 하는 경우가 수시로 있다"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세무법인에 대한 험담은 물론이고 대표의 인간성이 안좋다는 식의 인신공격도 난무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비방전으로 인해 매출액이 떨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라며 "물론 경제적인 타격을 계량화 할 수는 없지만 세무사 업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는 것인데 이런 이야기가 돈다면 업계 동료 간 신뢰에 금이 가는 일이 생길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업계에 뛰어들어 성장을 하고 있는 C세무법인의 경우 '일감을 모두 쓸어간다. 국세청이 그 세무법인 대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는 소문이 업계는 물론 기업에까지 쫙 퍼지면서 일감 수주는 물론 상당 기간을 심적 고통 속에 보내야 했다.

'혀의 전쟁'

고객을 상대로 한 이러한 '혀의 전쟁'은 대형세무법인이 중소세무법인들의 고객을 빼돌리기 위해서도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중소세무법인 대표는 "대형세무법인들이 중소세무법인이 수임하기로 한 고객에게 접근해 '중소세무법인은 전문성이 떨어진다. 대형세무법인에게 일을 맡겨야 제대로 처리된다'는 식으로 일감을 빼앗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우리도 상당 부분 매출에 피해를 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중소세무법인 대표도 "세무조사대응 수임업체를 살펴보면 상당 부분 몇몇 대형법인들이 독식하고 있을 것"이라며 "중소세무법인에서 수임하기로 한 고객에게 관할 세무서장이나 지방국세청 조사국 직원이 전화를 걸어 업체를 바꿀 것을 요구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나면 십중팔구 그 고객은 예상되는 범위의 대형세무법인으로 달려간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 같은 작은 세무법인은 해당되지 않지만 대형세무법인들 간에는 서로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악의적인 비방이나 음해 등 공격도 서슴치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세무대리 업계에서 상호간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는 것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고 '상도덕'을 지키는 문화가 지켜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세무사 상호간의 동업자 윤리와 도덕이 중시되어야 한다"며 "선을 지키지 않고 치킨게임을 벌이다보니 도를 넘어선 비방과 음해가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부 세무사들이 다른 세무사의 고객을 자기 고객으로 끌어오기 위해서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그런 사람들은 시장에 누만 끼치는 사람들이다. 세무사들끼리 신뢰를 무너뜨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하는 것은 함께 죽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러한 비방과 음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무사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며 "서비스 품질을 위한 경쟁을 해야 상생이 가능한 것인데 세무사들이 너무 많이 양산되다보니 저가 전략의 수수료 경쟁 및 비방과 음해같은 반칙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는 20년 전 수수료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납세자들이 요구하는 서비스 수준은 커졌다"며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시장은 더욱 혼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