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위에 '종교인'…종교인 과세 '골든타임' 놓치나

종교인 과세 법안 처리가 또다시 불발되면서 46년 동안 아무도 침범하지 못했던 종교인 과세 문제가 수면 아래로 내려갈 태세다. 하지만 이 문제를 둘러싼 '여론'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인 종교인 과세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자꾸만 뒷걸음치는 등 종교계와 국회의원들의 '민낯'이 드러나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 본 국민들은 깊은 실망감을 넘어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데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모노리서치'가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1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한 결과에 따르면 75.3%가 종교인에 대해 '조세형평성 차원에서 과세를 해야 한다' 과세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봉사활동 등 자율성을 감안해 과세하지 말아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14.4%였으며 '잘 모른다'는 응답자는 10.3%였다.

여당도 이런 여론을 감안한 듯 대통령령(시행령)으로라도 종교인 과세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이들은 적다. 여론만 가지고 접근했다면 이미 도입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정치권의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풀리지 않고 있는 셈이다.

□ 종교계의 '이기심', 정부 의지 꺾었다 =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종교인 과세안을 내놓을 당시 종교계가 반발했던 이유는 자신들의 신성한 종교활동을 매도한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소득을 일종의 '사례금'으로 보는 정부가 종교활동을 폄하하고 있다며 정부에 강하게 반발했고 국회는 종교인들의 의견수렴이 더 필요하다며 법안 처리를 하지 않았다.

해가 바뀌고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정부는 근로·사업·연금·이자·배당·기타소득으로 분류돼 있는 소득세 체계에 '종교인 소득'을 추가하겠다며 한발 물러났다.

종교인들에게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특별소득공제도 가능하게 해주는 한편 저소득 종교인들에게는 근로장려금(EITC)를 주겠다고 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거둬들이는 세수보다 나가는 세수가 더 많다며 법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정부는 '국민 개세주의'의 입각한 종교인 과세라는 상징성 자체에 더 많은 무게를 두는 듯했다. 

정부는 올해 정기국회에서 종교인 과세를 통과시키겠단 의지를 불태웠고 여당은 종교인들을 불러 공청회를 개최해 의견을 수렴했지만 정부가 내놓은 근로장려금 등의 유화책 등에도 종교계는 꿈쩍하지 않았다.

저소득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연 최대 210만원까지 지급되는 근로장려금은 일반인이라면 없어서 못 받는(?) 세제지원 혜택이지만 종교인들은 이런 유화책에도 자발적 납세를 하겠단 입장만 되풀이하면서 종교인 과세 법제화 자체가 싫은 것이란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 국민 여론보다 더 무서운 종교인들 = 종교인 과세 문제의 필요성이 더 부각된 것은 세월호 사고가 터진 뒤였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를 등에 업고 부를 축적한 일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성역으로 존재하는 종교계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다.

최근 구원파가 기부금 허위 영수증을 발급한 부분을 국세청이 건드리면서 이에 반발, 서울지역 모 세무서 앞에서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종교인 과세를 통과시켜야 한다는 여론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표'를 먹고 사는 의원들은 이런 여론을 외면한 채 법안통과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올해는 국회 기재위 조세소위 소속 의원 구성도 달라져 법안이 통과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기도 했었지만 종교계의 반발을 의식한 의원들의 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비례대표 출신 의원들이 종교인 과세에 찬성하고 있지만 조세소위에서 소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다른 의원들을 설득하기는 역부족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세소위 소속인 한 지역구 의원은 "지역구 의원이라면 종교인 과세에 찬성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에 여당 지도부에선 정치적 충격이 덜한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종교인 과세를 추진하는 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시행령 자체가 국회의 심의 없이 개정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이는 제도 도입시 정치권으로 쏠리는 정치적 충격파를 줄이겠다는 포석이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같은 여당 지도부의 계획도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종교계와의 협의가 동반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를 '무방비상태'로 만들어 제도 도입 자체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기재위 관계자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다 해도)종교인들이 또 다시 지역구 의원에게 압력을 넣을 것은 뻔한 일"이라며 "지금은 국회가 정부에 공을 떠 넘기는 모양새"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