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안에서 결제하고 자동차가 주유하는 시대 눈앞
'보안 서비스' 우려…개인 정보 유출 때 대량 피해
회사로 출근하면 오늘 할 업무의 목록을 알려 주는 컴퓨터. 퇴근 후 집에서 균형 잡힌 식사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첨단형 조리 기구.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 속에서 떠올릴 법한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스마트폰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사물 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이 실물경제뿐 아니라 금융 분야에도 그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는 것이다.
□IT와 금융의 결합, 이미 생활 속 자리잡아= 미국 리서치 업체 가트너(Gartner)는 2020년 사물 인터넷의 경제적 부가가치가 1조9000억달러(약 1940조원)로 글로벌 GDP의 2.1%를 차지하고, 이 중 제조·헬스 케어·금융 부문에서 기여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1인당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물 수가 10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사물 인터넷이 금융 서비스와 접목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냉장고가 자주 필요한 식품을 자동으로 주문 결제하고 스마트폰으로 소액 결제를 하고 자동차가 통행료나 주유비를 자동 결제하는 시스템이 가능해질 것이다.
중국 텐센트나 알리바바는 IT 기술을 활용한 송금·결제 비즈니스 모델을 이용해 은행 설립, 자산 운용 등 전통적인 금융업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미국 이베이는 간편 결제 서비스를 통해 금융업에 진출, 전 세계 1억4800만명의 고객을 보유 중이다. 이탈리아 보험사 게네랄리세구로(Generali Seguros)는 통신사 텔레포니카(Telefonica)와 함께 사물 인터넷을 활용한 자동차보험을 출시했다. 차량에 센서를 설치해 운전자의 정보와 습관을 분석하고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무료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가 직접 결제할 수 있는 일명 '카톡뱅크'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최근 '카카오의 금융업 진출의 영향 및 시사점'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통해 카톡뱅크가 텐센트나 알리바바와 같이 금융회사와의 제휴를 통해 사실상 기존의 금융회사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또 카카오 간편 결제 서비스가 신용카드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4월 기준 카카오톡 누적 가입자 수는 1억4000만명, 국내 가입자 수는 3700만명을 넘어섰다.
김종현 전략연구실 연구위원은 "금융 소비자의 니즈(needs)와 IT 회사의 경쟁력을 볼 때 비금융 기업이 주도하는 새 비즈니스 모델의 성장 가능성은 높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인터넷 전문 은행을 자회사 형태로 두거나 제휴하는 전략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다음 달부터 국내 14개 은행은 전자 지갑에 현금을 충전해 송금이나 소액 결제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행할 예정이다. KB국민·우리·NH농협·외환·기업·제주·광주·한국SC·부산·전북·경남·대구·한국씨티·수협은행에서 사용할 수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도 금융업의 성장성 정체를 타개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로 인터넷 전문 은행 설립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문태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사물 인터넷 시대의 도래와 금융권의 대응'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통해 금융업에서 사물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물 인터넷을 통해 제공 받을 수 있는 데이터로 고객의 행동을 분석하고 고객별 맞춤형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뜻.
김 연구원은 "구글, 인텔, 오라클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자사의 역량을 활용하듯 국내 금융회사들도 결제 노하우를 기반으로 한 사물 인터넷 플랫폼 선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관련 기업들 주가 움직임 꿈틀= 카카오 간편 결제 서비스 소식이 알려진 후 결제 대행업체(Payment Gateway)의 주가가 급락했다.
김종현 연구위원은 카카오 간편 결제 서비스가 PG사의 시장점유율을 상당 부분 잠식할 것으로 전망했다.
KG이니시스, 다날, 한국사이버결제의 주가는 지난 한 달 사이 각각 19.8%, 19%, 9% 급락했다. 간편 결제 서비스는 신용카드 업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시장을 볼 때 칩 부문의 대표 기업 퀄컴(Qualcomm)은 연간 매출액 증가율이 2012년~2013년 사이 30%를 넘어섰다. 모듈·단말 부문의 로그메인(Logmein)과 암독스(Amdocs) 주가는 올해 연초 대비 지난 5월까지 31.9%, 16.2% 상승했다.
김종현 연구위원은 "금융권으로서는 고속성장 중인 사물 인터넷 기업에 운영자금을 대출하거나 증자에 참여하는 기회가 확대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해킹 등 보안 위험 커져…보안 시장 성장해야= 문제는 이러한 IT 기술의 발달이 어디까지나 보안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 거래 절차는 간편해졌으나 정보 유출 등 보안 사고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더 커지고 있다.
올 초 신용카드 개인 정보의 대량 유출 사고 등 안전에 따른 대책도 강구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리서치 업체 오범(Ovum)이 지난해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온라인 송금 서비스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1%에 불과했다.
김종현 연구위원은 "해커가 사물 인터넷 시스템에 불법 침입해 개인 정보를 유출시키거나 금전을 도용하는 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회사들은 향후 사물 인터넷의 위험 요소를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재 정부는 금융회사에서 휴대전화 문자나 전화(ARS)를 통해 이중으로 인증하는 방식, 일회용 비밀번호(OTP) 방식 등을 채택하도록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