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0일 올해와 내년을 합해 총 5조9000억원(올해 4.6조원) 규모에 달하는 경제활력 제고를 위한 재정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6월28일 발표했던 8조5000억원 규모의 재정투자보강 대책에 이은 '＋α' 재정지원 방안으로, 올해 하반기에 추가로 투입하는 재정 규모만 13조원이 넘는, 추경에 버금가는 초대형 경기부양책.
특히 지난 1차 대책의 경우 설비투자, 건설부문 등에 재정지원이 집중된 반면, 이번 대책은 소비, 주택거래, 사회안전망 강화 등을 중심으로 '세제지원'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월급을 손에 쥐기도 전에 매달 정부가 떼어 가던 근로소득 원천징수세액을 현행보다 10% 가량 인하해 근로자들의 세후 소득을 늘리고, 가계소비를 촉진시키는 방안이 핵심이다.
침체된 주택거래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미분양주택 등에 과세되는 양도세를 100% 감면하고, 취득세 부담도 절반으로 줄일 방침이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자동차와 대용량 가전제품에 부과되는 5% 수준의 개별소비세도 1.5%p 내릴 계획이다.
장기화되는 유럽 재정위기의 여파 등으로 올해 경제성장률이 당초 정부가 예상한 3.3%보다 떨어져 2%대로 곤두박질 칠 것이 기정 사실화된 가운데, 정부가 그나마 남아있는 재정지원 여력을 모아 내수를 살리기 위해 고심 끝에 마련한 대책이지만 '약효'는 미지수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대책들이 또 다시 얼굴을 드러냈고, 당장 올해까지만 적용되는 일시적 미봉책만 즐비해 대선을 겨냥한 선심성 대책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기업 중심의 투자활성화 대책에 이어 이번에는 서민을 위한 재정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서민들이 체감할 수준의 지원책도 적다. 이미 여러 차례 시행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방안들도 포함됐고, 새롭게 내놓은 대책도 실효성이 의심되기는 마찬가지다.
□ 재탕·삼탕 세제지원, "창의성이 없다" = 우선 정부는 소비 진작을 위해 자동차 및 대형 가전제품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이하 개소세)를 인하하기로 했다.
2000cc 이하 승용차(이륜차 포함)의 경우 현행 5%의 개소세를 3.5%로 인하하고, 2000cc 이상 중·대형 승용차에 붙는 개소세도 8%에서 6.5%로 1.5%p씩 낮출 계획이다. 대용량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TV 등에 과세되는 5%의 개소세도 3.5%로 내리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의 개별소비세 인하 방안은 경제위기가 발발할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했던 소비 활성화 대책. 자동차 개소세 감면의 경우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4년 만에 부활했다. 2004년 카드 대란 당시에도 자동차 개소세율 인하는 빠지지 않았다.
문창용 기획재정부 재산소비정책관은 "승용차 개소세 감면이 경기부양 효과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경기활성화 대책으로 자주 사용하는 방안"이라며 "지난 2008년과 2009년에도 했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승용차와 대형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세제지원 방안이라고 설명했지만, 가격 인하로 특정 대기업들의 매출을 증가시키는 등 특혜가 집중된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문 국장은 "승용차 개소세 인하 등과 관련해 특정기업에 혜택이 집중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특정기업을 위한 대책은 아니다"라며 "승용차 구입자도 있으므로 기업만 생각하고 마련한 대책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고 전했다.
□ '대선' 앞둔 미봉책, "미래가 없다" = 또한 정부가 마련한 경제활력 제고 방안의 경우 올해 연말까지만 적용되는 한시적인 대책들이 많다. 특히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내놓은 양도세·취득세 감면 방안도 양도세의 경우 올해 연말까지 계약한 미분양주택, 취득세의 경우 12월 말일까지 잔금을 청산한 주택에 한해 적용된다.
세금 감면 혜택을 놓치지 않으려는 수요자들로 올해 연말 주택 거래가 반짝 늘어나더라도 세제지원이 중단되는 내년 초에는 수요가 급감, 또 다시 부동산 시장은 침체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계속되는 경제 위기가 장기화·상시화 되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고, 지속적인 내수활성화를 위해 이번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힌 정부의 입장과는 사뭇 거리가 느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올해 내에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3개월 뒤에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각종 선심성 재정지원 대책을 마련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일고 있다.
□ '무늬'만 사회안전망 강화, "서민이 없다"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차 대책은 설비투자펀드나 건설사 회생지원 같은 내용이라 일반 국민들에겐 와 닿지 않는 것들이었을 텐데, 이번엔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정부가 발표한 대책에는 실제로 서민들의 어려움을 완화해 줄만한 효과 있는 대책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저소득 근로자가구 소득지원을 강화하고자 내놓은 대책도 근로장려금 조기 지급 방안으로, 법정기한보다 2주 빠른 오는 13일부터 근로장려금 지급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사실상 전부다.
올해부터 근로장려금 지급대상을 다소 확대하고 지급액도 소폭 인상할 계획이지만, 이미 발표됐던 내용들로서 새로운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기초수급자 최저생계비도 3.4% 인상할 계획이지만, 생계지원 기준을 최저생계비 100%에서 120%로 완화하는 방안은 아직도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중인 상황으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 국민 우롱하는 '조삼모사'(朝三暮四), "효과가 없다" = 특히 정부가 이번 대책의 타이틀로 내걸은 근로소득 원천징수세액 10% 인하는 실제 근로자들의 소득을 늘리는 효과는 사실상 없다고 하는 것이 정답이다.
정부 대책은 근로소득 간이세액표를 개정해 근로소득세 원천징수세액을 인하, 매달 유리지갑 근로자들의 급여통장에 입금되는 월급을 다소 증가시켜 소비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전략.
실제로 이번 방안이 시행되면 당장 이번 달부터 근로자 세후 월급이 1인당 최소 2만원에서 많게는 5만원 가까이 늘고, 지난 8월까지 징수된 근로소득세 원천징수세액도 늦어도 10월 안에 최대 40만원 가까이 환급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예전에 비해 매달 조금씩 더 받고 이미 납부했던 소득세를 단번에 환급 받는 만큼, 매년 3월마다 근로자들이 받을 수 있는 '13월의 월급'은 감소한다.
근로소득세의 과세 방법이 매달 월급에서 원천징수세액을 미리 징수하고 다음해 연말정산 소득공제를 통해 더 납부한 세금을 되돌려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원천징수세액이 줄어든 만큼 근로자들이 받게 될 연말정산 소득공제 혜택도 줄어드는 셈이다.
즉 근로자들이 내년 3월경 받게 될 연말정산 소득공제 환급액을 매달 조금씩 당겨 받는 구조로, 근로소득세 원천징수세액을 인하하더라도 근로자들이 연간 부담해야 하는 근로소득세는 한 푼도 줄지 않는다.
당장은 세금을 떼고 받는 월급이 몇 푼 늘어나더라도 연말정산 환급액은 줄어들고, 근로자 세부담에도 전혀 변함이 없는 전형적인 '조삼모사(朝三暮四)' 대책인 셈이다.
또한 원천징수세액 인하에 따라 정부수입이 올해 1조5000억원, 내년 2조원 가량 줄어들어 정부수지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분석됐다.
재정부 관계자는 "이미 근로소득세 원천징수분이 세수입으로 들어와 있다"며 "이번 대책으로 올해 근로자들에게 원천징수세액을 돌려주면 1조5000억원 정도 재정수지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