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년 동안의 한국조세연구원장 임기를 마치고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로 복귀한 대표적인 세법·재정학 분야 권위자 원윤희 교수(사진)가 최근 복지재원 확충을 위해 정치권이 추진 중인 부자증세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복지 확대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해야 하지만, 이를 일부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을 높여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일시적 방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원 교수는 최근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 가진 인터뷰에서 "앞으로 우리나라 복지수준이 확충돼야 하고, 필요한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일부 고소득층의 세부담을 올려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것은 정치적이고 일시적인 땜질식 처방"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비과세·감면 축소는 물론 탈세·체납 등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40%에 가까운 근로자와 사업자들이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현상을 조정하지 않고 부자들 세부담 강화만 강조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원 교수는 부자증세의 소득 재분배 효과에 대해 "누진세제는 전통적으로 소득 재분배의 주요 정책 수단이지만 누진 수준 결정이 중요하다"며 "어느 수준이 적정한지 사회 공감대, 경제 상황, 경제활동에 미치는 효과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저소득층 지원은 누진세제를 통해 시행하기 어렵고, 지출 정책이 더 효과적"이라며 "지출 프로그램들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과 함께 추가적인 세수 확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 국민들이 공정사회 구현을 위해 제일 먼저 개혁해야 할 부문으로 조세부문(27.8%)을 꼽았다. 우리나라 조세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 공평과세의 핵심은 모든 국민들이 자신의 능력에 부합하는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자신의 몫에 맞는 세부담을 지지 않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세제와 세정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우선 세정 측면에서 탈세나 체납 등은 우리 사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줄여 나가야 할 정책 이슈다. 세제 측면에서는 15%에 달하는 비과세·감면율의 적정성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또한 40%에 달하는 면세자 비율도 우리 세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고소득층의 경우 세제를 악용한 각종 편법·탈법 수법으로 변칙증여 또는 상속 등을 실시해 세부담을 회피하는 것이 문제다.
□ 정치권에서 공정사회 구현을 위해 조세정의를 주장하지만, 부자증세로 대표된 모습이다. 공평과세와 조세정의에 대한 견해가 있다면.
☞ 어떤 세금이 공평하고 정의로운 것인가를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공평한 세금은 시대에 따라, 나라에 따라서 그리고 사람들에 따라 각각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현대 조세에서 공평은 통상 부담 능력에 따라 세금을 부담해야 공평하다는 주장이 대세다. 그러나 부담 능력 측정 기준은 다양하다. 소득, 소비, 재산이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며, 이 3개 기준 중에 무엇이 가장 바람직한 기준인가에 대해 의견도 분분하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소득 계층 간에 조세부담을 어떻게 설정해야 공평한지는 사실상 정답은 없다. 부자들이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원칙이지만, 과연 얼마나 많이 부담해야 하는지는 그 당시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는 부담 구조가 공평한 것이다. 세금도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 당시 사회·경제 상황 등을 반영해 끊임없이 조정된다.
□ 정치권에서 복지재원 확충을 위해 버핏세 도입 논란이 일었고,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부자증세가 과연 복지재원 확충 방안으로 적당한 정책인가.
☞ 앞으로 복지 수준을 확충하고 필요한 재원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 고소득층의 세부담을 올려 복지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방안은 정치적이고 일시적인 '땜질식 처방'이다.
부자증세가 소득세나 법인세 세율을 올리자는 것인지, 이들로부터 보다 많은 세수를 확보하자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세율을 인상해 세부담을 증가시킨다고 이해하지만 세율과 세수는 같지 않다. 세율은 세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일 뿐만 아니라 근로, 저축, 투자, 창업 등 우리 경제활동 전반과 관련된 상대가격에 변화를 주는 등 많은 영향을 미친다.
세율을 결정하는데 세수만이 아니라 경제활동에 미칠 효과까지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세수 확보에는 꼭 세율만이 아니라 많은 요인들이 관련된다. 경제성장은 물론 과학적인 세무행정을 통한 탈세나 체납 축소와 비과세·감면 축소 등 많은 요인들이 작용한다.
□ 증세 전에 각종 비과세·감면을 정비하고, 어려운 경제상황을 감안해 친기업적 감세 정책 기조를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 우리나라 전체 조세부담 구조를 면밀히 분석하고, 세제는 물론 세정을 포함한 우리나라 조세 전반에 걸친 종합적인 개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비과세·감면 축소는 물론, 탈세·체납 등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 40%에 가까운 근로자와 사업자들이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현상을 조정하지 않고서 부자들 세부담 강화만 강조할 수는 없다.
세율과 세수는 서로 다른 정책 변수다. 세수확보가 목적일 때 세율 조정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정책 수단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 사회 양극화가 심각해지며 부자증세 등 조세제도를 통해 소득 재분배를 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누진세제는 전통적으로 소득 재분배를 위한 주요 정책수단 중 하나로 여겨졌고,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문제는 누진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다.
좋은 조세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은 조세부담의 공평성과 경제적 효율성이지만 양자가 서로 상충된다는 점이 조세정책의 어려움이다. 누진을 강화해 소득 재분배 효과를 높일 수는 있지만 동시에 높은 세율로 경제행위 왜곡이 초래돼 경제 효율성을 크게 저해할 것이다.
따라서 고소득층에 더 높은 세율을 부과함으로써 소득 재분배 효과를 강화할 수 있지만 어느 수준이 적정한 것인지에 대해 사회 공감대, 경제 상황, 경제활동에 미치는 효과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한편 40%의 사람들이 면세점 이하인 상황에서 저소득층 지원은 누진세제를 통해 시행하기 어렵고, 지출 정책이 더 효과적이다. 지출 프로그램들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과 함께 추가적인 세수 확보가 필요하다.
□ 현행 세제의 개선 방안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견해가 있다면.
☞ 낮은 과세자 비율, 낮은 과세 포착률, 높은 비과세·감면, 탈세와 체납 증가 등은 공평한 조세부담이나 경제적 효율성 등에 비춰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항이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에서 조세 관련 공약들이 봇물처럼 제시되고 있다. 선거를 거치며 조세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들도 큰 틀에서 표출될 것이다.
최근 부자증세라는 개념은 정치적 슬로건으로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선거 이후 국민들 의견을 바탕으로 우리 세제의 현황과 문제점 등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와 다각적인 분석을 거쳐 합리적인 조세제도를 만들고 조세개혁의 구체적 모습을 마련해야 한다.
기획취재팀 : 김진영 정책팀장, 유엄식, 장은석, 이희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