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원로배우 신영균씨가 500억원에 달하는 사재를 기부, 화제가 됐다. 신 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내 나이 여든이 넘었다"며 "좋은 일을 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말로 거액을 내놓은 배경을 설명했다.
영화계 사람들은 놀랍다는 반응 일색. 남을 위해 커피 한 잔, 자장면 한 그릇 안 사는 '짠돌이(?)'로 유명했던 그가 거액의 재산을 내놓았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지사.
이 놀라움은 곧 그칠 줄 모르는 찬사로 변했다.
영화계 후배들은 그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최근 열린 제47회 대종상영화제에서 그에게 '자랑스러운 영화인 대상'을 선사했다. 이에 신 씨는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고, 그래서 아주 행복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베품'은 그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준 셈이다.
지난 2002년 수원교차로 창업자인 황필상씨는 177억여원 상당의 회사 주식과 현금 10억원을 자신의 모교인 아주대학교에 내놓았다. 황 씨가 내놓은 기부금은 2008년 한 해 동안 104명의 가난한 학생들에게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선사했다.
그러나 황 씨는 신영균씨가 느낀 행복감을 누릴 수 없었다.
과세관청인 수원세무서가 기부금을 받은 장학재단을 상대로 세무조사를 실시, 140억원이 넘는 증여세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과세전적부심을 신청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국세청은 재단측 주장을 묵살했다. 감사원에 심사청구를 제기하며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지만, 감사원도 과세관청의 결정을 뒤바꾸지 못했다. 재단이 제기한 심사청구는 기각된 것이다.
결국 재단은 과세당국이 보유재산을 가압류 한 와중에 행정소송을 냈고, 7개월 동안 법정 다툼을 벌인 끝에 원고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이 대목에서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아름다운 기부 행위를 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찬사를 받고, 다른 한 사람은 세금문제로 골치를 썩혀야 했느냐는 점이다.
정답은 '세법'에 숨어 있다.
현행 법상 비영리 공익재단에 자산을 기부하는 경우 기부자나 기부를 받는 자 모두 원칙적으로 납세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8조는 "공익법인 등이 출연받은 재산의 가액은 증여세 과세가액에 산입하지 아니한다"는 명문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기부자산이 의결권을 가진 회사주식의 5% 이상인 경우 5/100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증여세를 물도록 하는 규정이 존재한다.
이는 공익재단을 가장한 지주회사를 만들어 경제력을 집중하거나, 또는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세습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만들어 놓은 조항.
결과적으로 신영균씨의 경우 기부재산이 명보극장과 같은 부동산이라 문제될 것이 없으나, 황필상씨의 경우는 기부재산으로 '주식'을 내놓았기 때문에 문제가 됐던 셈이다.
한마디로 과세 당국에 의해 '기부의 순수성'을 의심받았다는 이야기다.
사회 양극화로 인해 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한정되어 있는 정부예산으로 인해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는 이들 모두에게 복지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복지의 사각지대를 줄여줄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기부다.
나눔을 실천하면 그만큼 빈곤에 허덕이는 이들을 줄이고, 사회 분위기도 더욱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민관이 기부활동에 관심을 쏟는 중이다.
물론 그 중에는 기부를 악용해 사욕을 늘리려는 이도 존재한다. 그런 이들은 잘 가려내어 많은 이들에게 박탈감을 주는 불공정이 발생치 않도록 해야 한다.
한편으로 순수하게 기부에 나섰음에도 그 내용이나 형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통 받는 이가 없는지 세심하게 살피는 일 역시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이 두 가지 전제가 충족되지 않으면 한국의 기부문화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재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