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체 재정 정상화의 길

최근 성남시가 판교특별회계에서 빌려 쓴 돈을 단기간에 갚을 수 없다고 발표함으로써 지방재정의 건전성 문제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으나 자치단체의 재정운용상황이 매우 문제가 많고 그것이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이 분야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고 본다.

거의 모든 자치단체의 재정이 파행을 지속하고 있는 것 같다.

자치단체를 생각하면 저절로 전시행정, 선심행정, 모방행정, 낭비행정 같은 상투적인 어구들이 떠오른다. 거기다가 자치단체 장들이나 자치의회 의원들의 비리도 심심치 않게 언론의 도마에 오른다.

여러 가지 대응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지방재정위기관리법 같은 법을 만들자는 이야기에서부터 각종 감시와 통제를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을 새로 만들거나 이미 있는 장치들을 강화하자는 안(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방안들이 최종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러한 대안이상을 내 놓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생각된다.

문제의 핵심은 재정운용을 맡은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아무도 그들에게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기 때문이다.

왜 책임을 묻지 않는가? 책임을 물을 사람이 없어서이다. 중앙정부가 관리와 감독을 잘 해야 된다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주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자치단체장들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고 무엇보다도 중앙정부가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하려면 자치제를 왜 하느냐는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물론 전체 조세수입의 20%정도만을 거두는 자치단체들이 전체 지출의 60%가까이 집행하는 상황에서 중앙정부가 몇 마디 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히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 예산 집행도 철저하게 관리하기 힘든 상황에서 자치단체 예산까지 일일이 감시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효율적인 체제라고 볼 수 없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지방의회가 감시하는 것이다.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의 주민들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이고 자치단체의 주인인 주민을 대표해서 자치단체의 행정을 감시 감독할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의회는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일부 지방의회의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지방의회 의원들이 세비 올리기나 이권 챙기기에는 밝은데 자치단체의 살림을 감시하는 일은 소홀히 한다는 인상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이 문제인가?

지방의회 의원들의 자질 문제가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주민들이 선거를 통해서 선출한 의원들의 자질을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혹시 주민들의 자질을 이야기 한다면 모를까.
 
아직도 민주주의 훈련이 덜 되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주민들의 민주주의 훈련이 잘 되어있으면 자치단체 의원들을 잘 뽑을 것이고 그들이 선거구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게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근거가 전혀 없지 않다고 본다. 아파트 관리를 맡고 있는 입주민 대표회의 운영이 많은 곳에서 파행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아파트단지 주민들은 자치단체 주민들처럼 멍하니 당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어디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

관심이라고 본다.

주민들이 자치단체의 행정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잘 뽑아 놓은 의원이라도 선거구 유권자들을 겁내지 않게 된다.

왜 아파트 주민들처럼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문제는 돈이다.

성경에도 자신의 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씀이 있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자신들이 낸 관리비가 어떻게 쓰이는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러니까 이상한 동대표가 나와서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려고 하면 들고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자치단체 주민들은 그런 의식이 약하다는 것이다.

지역주민들이 물론 지방세를 내지만 자치단체 예산에서 해당 자치단체 주민들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세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지출의 변화가 주민부담으로 연결되는 메커니즘이 약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주인의식이 낮고 행정책임자들도 주민들에 대하여 책임의식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치단체 재정이 방만하게 운영되는 이유는 매우 상식적인 곳에 있다. 주인이 누구인지 불명한 돈을 자치단체 장에게 맡겨 놓은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 이 돈은 자치단체의 장이 자기 주민들로부터 힘들게 거둔 것이 아니다.

이 돈은 상급단체를 통해 전국에서 거두어들인 돈을 배급 받은 것인데 그 과정에서 돈은 깨끗하게 세탁이 되어 원산지 표시가 다 지워졌기 때문에 책임을 지려 해도 누구에게 질지 불명하다는 것이다.
 
돈을 부담한 사람도 내 돈이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에 관심 갖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방향은 분명하다.

자치제의 경제학적 의미도 그렇다. 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방공공재를 스스로의 부담으로 소비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치제에서 제일 중요한 조건은 재원의 독립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한계적인 사업의 부담은 주민이 직접 부담하는 재원조달구조가 세워져야한다. 시장이 호화로운 청사를 지으려면 주민들의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세제를 이렇게 개혁하는 것의 가장 중요한 장애는 자치단체간의 재정력격차이다. 중앙정부가 재정력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지방재정의 더 많은 부분을 균등화교부금(equalizing grant)형태로 나누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여지를 주기 어려운 것이다.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하여 격차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중앙정부의 균등화 목표를 상당히 하향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가까운 장래에 만날 수 있겠는가에 있다.

[약력]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 하바드대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원 연구위원,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現)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