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새해는 세계경제가 위기를 극복하는 원년(元年)으로 불린다. 세계경제는 지난 2~3년간의 위기에서 벗어나 완만한 회복국면에 들어섰다.
선진 경제권은 새해에도 1%대의 마이너스성장이 예상되지만 신흥 및 개발도상국들은 줄잡아 5%대의 성장이 전망돼 세계경제 전체로 3% 내외의 성장이 예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회복국면에 들어서긴 했지만 위기이후의 경제환경은 위기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시장원리와 경쟁 등 민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중시하던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가 퇴조하고 정부의 역할과 규제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미국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되고 신흥국들의 위상이 강화되면서 미국주도 국제질서에 변화 조짐 또한 역력하다.
미국과 중국이 '차이메리카'(Chimerica) 내지 G2(2강)로 짝을 짓고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 공생하는 '화이점동'(和而漸同)국면에 들어섰다. 유럽연합(EU)은 경제통합에다 정치적 통합을 보탠 '유럽합중국'으로 거듭 태어났다.
유로화가 중심통화로 올라설 수 있는 유력한 발판을 구축했다. 새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가운데 '브릭스'(BRICs) 4개국 비중은 24.1%로 미국(19.6%)을 능가할 전망이다.
세계경제의 역학관계가 바뀌면서 미국의 주도권이 약화되고 새로운 세계질서를 모색하는 과도기에 들어선 것이다. 세계경제의 새 판을 짜면서 동시에 회복세를 굳건하게 이끌어야하는 한 해라는 의미에서 2010년은 위기극복의 원년으로 불러 마땅하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쉽지 않고 도전적 과제 또한 한 둘이 아니다. 세계경제의 현 회복세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점이 우선 걱정이다. 위기극복을 위해 각국정부가 펼친 재정 및 금융 양면에서의 부양책에 힘입은 것일 뿐 자생력을 가진 회복이 아니라는 점이다.
본격적으로 회복되려면 민간부문 활력이 되살아나야 하는 데 민간소비와 투자는 아직도 미동도 않는다. 글로벌 위기가 기존 체제를 흔들어 놓아 잠재성장력 자체가 떨어졌고 손실 등 마이너스 유산 처리 부담으로 위기이전의 수준으로 회복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수요 진작 만으로는 되지 않고 공급측면에서 구조조정과 신성장동력 발굴 등 잠재성장력을 높이는 정책이 병행되어야한다. 금융부문에서 추가부실위험은 여전하고 두바이와 그리스 등 국가부도의 경보도 그치지 않는다.
경기회복에 따라 원자재 수요가 회복되고 달러약세화가 지속될 경우 원자재 값도 낙관을 불허한다. 다극체제형성으로 국제정책공조 또한 쉽지가 않다.
'더블 딥'을 피해 신중한 출구전략을 실행해야한다는 데는 세계 각국이 공감하고 있지만 그 시기와 속도에 관한 정책공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금융기관에 대한 자본규제와 감독체제강화로 금융산업 성장세가 둔화되고 단기적으로 신용공급회복이 지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세계경제가 더 이상 미국의 소비와 수입에 기대어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는 데는 주요국들이 대체로 공감하지만 미국을 대체할 소비시장이 없어 글로벌 불균형해소 역시 큰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무역마찰이 증가할 우려도 적지 않고, 수출경쟁력을 위해 자국통화저평가정책을 고수하는 환율전쟁도 가열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은 글로벌경제위기에서 가장 선전(善戰)한 나라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2009년 GDP성장률이 플러스(0.2%추정)로 돌아섰고 새해에는 3.6%(IMF)에서 5.5%(KDI)의 성장이 예견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회복속도가 가장 빠른 편에 속한다.
그러나 내용면에서 문제점도 적지 않다. 회복속도는 빠르지만 수준면에서는 예년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성장의 내용도 문제다. 정부가 재정자금 수 십 조원을 투입해 성장을 주도했고, 대기업들은 79조원의 현금을 쌓아둔 채 투자를 기피하는 등 민간기여도는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무역수지 흑자는 400억 달러를 넘겼지만 수출증가보다 수입감소가 더 큰 불황형 흑자였다. 글로벌기업들의 약진에는 환율효과가 큰 몫을 했고 지표상 실업률은 3%대로 안정세로 보이지만 신규 일자리창출은 제자리걸음이다. 고용 없는 성장이 체질화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성장둔화로 수출주도 성장이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에 수출둔화를 만회해 줄 내수확대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수요는 여전 침체상태고 가계의 부채부담증가로 소비여력은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기업 간, 소득계층 간 불균형도 심해지고 있다. 일자리부족, 가계 빚, 그리고 원화가치와 금리 유가가 동시에 오르는 3고현상의 재현이 새해 우리경제의 '3대 복병'으로 지목되고 있다.
원화강세는 당장 국내 수출기업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고유가는 생산원가부담, 고금리는 대출이자 부담증가로 이어진다. 달러약세화에 따른 원화의 상대적 강세는 장기화돼 달러당 원화 환율은 새해 1분기에 1,100원 대 초반, 2분기에는 1,100원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상반기 환율효과에 힘입어 실적이 개선됐던 수출기업들이 본래의 실력을 검증받을 판이다.
한국경제 역시 금융위기의 비상상황에서 벗어났을 뿐 완전한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보는 것은 성급하다. 새해 성장률전망이 높은 것은 지난해 수준이 낮은 데 따른 기저효과 때문이며 앞으로 주요국들의 출구전략 여하에 따라 이 역시 낙관을 불허한다.
경기부양책에 따른 경제회복은 서서히, 점진적으로 나타나는데 반해 긴축정책은 빠르게 효과가 나타난다. 섣부른 출구전략 시행은 회복조짐을 보이는 경제를 다시 침체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기를 탈출했다고 방심하는 것은 금물이다.
회복과 함께 위기관리정책은 지속되어야한다. 아울러 구조조정과 기업 금융 노사 공기업의 선진화 등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도 병행해서 추진해야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공급력을 늘리는 산업적 대책과 함께 신성장동력도 적극 찾아내야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경제는 외환위기, 카드와 IT 부동산 거품의 충격,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로 인한 세계동시침체 등 다양한 위기상황을 차례로 겪어왔다.
지금까지 축적한 경험과 다져 온 한국 특유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당면한 불안요인들을 극복하고 세계경제 새 판짜기에서 국제적 위상을 높여나간다면 2010년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21세기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변상근 논설고문]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