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인기 스마트폰(PC기능을 갖춘 휴대폰) 아이폰(iPhone)돌풍이 국내 통신·휴대폰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출시 2주 만에 구매자가 10만 명을 넘고 네이버의 아이폰 카페 멤버수가 30만 명을 넘어서는 등 시장의 반응은 뜨겁다. 국내업체들은 스마트폰 신제품들의 대거 출시로 아이폰 공세차단에 나섰다.
경쟁제품인 삼성전자의 T옴니아2는 두 차례에 걸쳐 가격을 40만원이나 내렸고, 통신사업자들도 이동통신 부가서비스가격을 30% 내리면서 스마트폰 보급 확대에 안간힘이지만 역부족이다.
응용소프트웨어에서 당장은 아이폰과 경쟁이 되지 않고, 아이폰 한국 상륙에 대비한 준비도 덜 된 상태여서 전례 없는 충격과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아이폰은 컴퓨터메이커 애플이 만들어 낸 딱 한 종류의 휴대폰이다. 휴대전화의 온갖 기능은 기본이고, MP3와 동영상 재생기능에다 노트북에 버금가는 인터넷검색기능,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위치추적기능 등등 응용프로그램으로 휴대폰이용을 거의 무한대로 확장시킨 혁신제품이다.
아이폰의 핵심요소는 소프트웨어다. 최대강점은 아이폰 전용상점인 앱스토어(App Store)가 내장돼 몇 번 터치만으로 10만 여개의 응용프로그램 가운데 원하는 것을 내려 받을 수 있다.
애플은 OS(운용체제)플랫폼과 소프트웨어개발도구들을 외부의 개발자들에게 제공하고 이를 활용해 개발된 소프트웨어를 앱스토어에서 유통시켜 개발자와 수익을 나눠 갖는 개방형모델을 채택했다.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기위해 다중(多衆)의 힘을 빌리는 전략이다. 지금까지 누적 다운로드 수는 20억 건을 헤아린다. 프로그램 개발판매의 문호개방과 함께 휴대폰시장의 경쟁 축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급거 이동시킨 패러다임의 변혁이다.
아이폰 같은 스마트폰은 일반 휴대폰과는 달리 연평균 50%의 고성장을 지속중이고 용도도 업무용에서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판매비중은 2007년의 10.4%에서 2010년에 27%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스마트폰 이용자들의 음성통화사용비중은 12%에 불과하다. 휴대폰시장이 스마트폰 중심으로 급속도로 재편되면서 아이폰은 IT업계의 이슈를 넘어 하나의 사회현상으로까지 주목받게 된 것이다.
아이폰 따라잡기 경쟁은 외국에서 이미 불꽃을 튀기고 있다. 기존 스마트폰 시장의 35%를 점유하고 있는 노키아는 모델수를 과감히 줄이고 자사 운영체제 심비안의 무료화를 선언하며 인터넷 관련기능 향상에 역점을 둔 새 판짜기에 들어갔다.
가장 열린 운영체제라는 안드로이드 플랫폼으로 2년 여전 이동통신시장에 문을 두드린 구글은 아이폰에 맞서 내년부터 '넥서스 원'(Nexus One)이란 구글폰을 이동통신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모토로라를 비롯한 휴대폰단말기업체들이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스마트폰들을 경쟁적으로 선보였지만 아이폰과의 경쟁에서 크게 뒤져 구글이 단말기부터 애플리케이션가지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를 직접 디자인해 승부를 겨루기로 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모바일도 차세대버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업계 대응은 너무도 안이하고 허술한 느낌이다. 아이폰의 국내출시 자체가 한국의 교묘한 '휴대폰 쇄국주의' 장벽 때문에 외국에 비해 1년10개월이나 늦었다.
아이폰의 라이벌에 해당하는 삼성의 T옴니아2는 단말기제품성능은 탁월하지만 아이폰 같은 쓸 만한 응용프로그램이 별로 없다. T옴니아2를 서비스하는 SKT는 앱스토어같은 T스토어를 열었지만 스마트폰용 응용프로그램은 400여개에 불과하다.
글로벌 강자 삼성전자가 '모바일산업의 새로운 파도'로 선보인 바다(bada) 플랫폼 역시 독자운영체제로 보기에는 미흡하고 OS-콘텐츠-서비스-단말기로 이어지는 경쟁사들의 생태체계(ecosystem)와는 거리가 멀다.
아이폰에 대한 국내대응은 고작 옴니아2에 태극마크를 넣어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하드웨어비교에 주력하며 '배터리교체가 잘 안된다' 'DMB 방송을 못본다' 등등 아이폰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데 급급한 인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 그리고 신제품구매에 적극적인 얼리어답터(early adopter)계층에서 아이폰과 그 운영체제 '맥 OS'는 최상이며 초보자도 금방 익숙해질 정도로 가장 사용자 친화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이폰은 KT를 통해서만 가입할 수 있다. 아이폰 돌풍이 삼성 LG SKT가 구축한 현재의 사업구조를 쉽사리 뒤엎기는 어렵고, 휴대폰의 세계적 거인 삼성과 LG의 위상 또한 흔들릴 리 만무다. 휴대폰을 전화 통화나 문자메시지 주고받는 용도로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아이폰은 불편한 군더더기 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시장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폰의 판매대수가 아니고 앞으로 아이폰이 몰고 올 한국 모바일콘텐츠시장의 대변혁이다. IT강국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우리의 무선인터넷정책은 이동통신사들 수익보장에 치중한 나머지 고객들에게 높은 비용과 불편함을 안기고 인터넷 활용도를 떨어뜨리며 소프트웨어 등 관련 산업 활성화를 막아왔다.
소비자를 위해 단가를 낮춘다며 휴대전화처리장치를 저급제품으로 바꾸고, DMB기능을 넣기 위해 무선랜기능을 빼거나 컴퓨터와의 연결포트를 제공치 않고, 국제시장 가격에 비해 월등히 높은 단말기판매가격에 그나마 이통사의 '간택'을 받지 못하면 출시자체가 되지 않는 독점적 횡포를 부려왔다.
외국처럼 '심'(SIM:Subscriber Identification Module)카드만 바꿔 끼면 어떤 기종도 사용가능한 휴대폰을 우리는 왜 만들지 못하는가.
보다 자유롭고, 보다 편리하고, 보다 소비자 친화적인 무선인터넷서비스를 위한 변화는 새로운 대세며 아이폰은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아이폰 돌풍이 국내 통신·휴대폰산업의 독점적 폐쇄적 구도를 허물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의 IT산업은 하드웨어부문에서는 글로벌경쟁력을 어느 정도 갖추었지만 운영체제(OS)와 소프트웨어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초고속인터넷 인프라를 기반으로 모바일 웹기반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이를 신성장동력으로 연결시켜야 명실상부한 IT강국이 될 수 있다.
IT 기초체력을 다지고, 열린 마인드로 글로벌 인재들을 활용하고, 글로벌 소프트거인들과의 전략제휴를 통해 혁신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디지털성장전략과 비전을 국가차원에서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변상근 논설고문]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