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호 국세청장 내정인사가 발표되면서 거의 모든 국세청 직원들이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전혀 예상 밖의 인물인데다 내부승진이 아닌 외부에서 온다고 하더라도 설마 장관급인 공정거래위원장이 차관급인 국세청장으로 오리라곤 아무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백 내정자와 국세청과의 만남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백 내정자와 국세청과의 대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
지금부터 1년 5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직후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떠올려 보자.
2008년 1월 6일, 승자의 당당한 기세로 정권을 인수하기 위해 마련된 인수위 중에서도 핵심분과위원회인 경제1분과위가 국세청에 대한 부처 업무보고를 받은 이날, 당시 경제1분과위 간사인 강만수 전 장관의 바로 오른쪽 옆에 핵심 인수위원으로 나란히 자리한 백용호 내정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두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이날 업무보고 결과 인수위는 기업친화적 정부를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기업에 대한 '정기세무조사의 대폭적인 감축'과 '국세행정의 개혁방안 마련'을 국세청에 요구했다.
이 모든 요구사항이 강만수, 백용호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중의 측근으로 불리는 두 인물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세무조사 감축에 '주마가편'= 백 내정자는 이 대통령의 '경제 과외선생'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10년 넘게 이 대통령을 보좌한 경제핵심브레인이며, 단연 손꼽히는 시장경제신봉자다.
기업인 출신인 이 대통령이 취임 첫 내각구성에서 기업들이 국세청보다 더 불편해 한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장으로 백 내정자를 임명한 것은 공정위의 반기업적 색채를 완전히 없애기 위함이었고, 실제 그는 공정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기업규제를 대폭 완화하는데 일조했다.
정권초기 유행했던 말로 표현하자면 규제 '전봇대 뽑기'의 선봉장이었던 셈.
이제 그가 장관급에서 차관급 국세청장으로 옮기면서까지 부여받은 두 번째 임무는 '세금규제 전봇대 뽑기'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인수위에서 요구한 정기세무조사의 대폭적인 감축을 돌이켜 점검하고 추가적인 조사감축을 지시하는 것은 물론, 기업에 부담이 된다고 판단되는 모든 징세행정에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
국세청장 내정 일성으로 "국세청은 권력기관이 아닌 징세행정을 하는 행정부서"라고 밝힌 것에서 그가 이끌어갈 국세청의 친기업적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이미 세무조사 감축과 서비스행정에 땀을 쏟고 있는 국세청이지만,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듯 학자출신 국세청장의 더욱 과감하고 원칙적인 변화요구가 계속될 전망이다.
□ 국세행정 개혁, 제안한 자가 마무리= 현재 추진되고 있는 국세행정개혁방안은 백용호 인수위원이 핵심적으로 참여한 인수위 경제1분과위의 지시로 출발했다.
당시 인수위는 "국세행정 개혁을 위한 태스크 포스팀을 구성해 실질적인 개혁방안을 마련하라"고 국세청에 요구했고, 이를 발단으로 이른바 국세행정선진화 T/F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 산하에 마련됐다.
현재 청와대 국세행정선진화 TF가 마련한 '국세행정선진화 방안'은 대부분 마무리 된 가운데 인력감축 및 조직개편 등 민감한 쟁점에 대한 막판 조율이 거듭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청을 없애고 수천명의 감축이 단행될 수 있는 조직개편문제에 대해서 국세청 내부의 반발이 적지 않기 때문.
그러나 신임 국세청장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장관급에서 부임하는 만큼, 국세청의 반발을 제어하면서 과감한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당장 이 대통령이 인사를 단행한 후 22일 "국세청 개혁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지도록 해야한다"고 강력한 개혁의지를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