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통화, "환율로 인한 당기순이익 변동 줄여"
세금 내려면 원화 재무제표, 별도 작성해야
해운업계는 톤세제도로 "그나마 괜찮은 편"
대한해운, 한진해운 등 몇몇 해운업체들은 작년 회계연도부터 달러로 재무제표를 작성해 외화환산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작년에는 환율이 1달러당 1500원 가량을 육박하는 등 원화가치가 폭락해 매입채무 등 외화부채를 많이 보유한 경우에는 외화환산손실이 크게 발생했지만, 기능통화제도를 도입해 외화환산손실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던 것.
기능통화제도는 기업의 영업이 이뤄지는 주된 경제환경의 통화로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기업이 국내에 위치해 있지만, 영업활동의 대부분이 달러로 이뤄진다면, 달러가 기능통화가 된다.
정부는 영업활동의 90%가 주로 해외에서 이뤄지는 해운·조선업체들이 환율의 급격한 변동으로 당기순이익이 대폭 줄어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작년 회계연도부터 기능통화제도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기능통화제도는 2011년 국제회계기준(IFRS)이 금융기관 및 상장회사에 의무적으로 도입되면 해외 영업활동이 많은 해운·조선업계를 중심으로 가장 많이 고민해야 하는 회계제도이다. 정부는 이를 2008년부터 조기에 허용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기능통화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현행 세법은 기능통화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해운·조선업체가 기능통화제도를 적용할 경우 세무조정을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원화 재무제표가 필요해 이중장부를 작성해야 하는 불편함이 제기된다.
□ 기능통화, IFRS에서는?…"외화환산손실은 줄어"= 국제회계기준은 기능통화와 표시통화를 구분해놓고 있다. 기업은 영업이 이뤄지는 주된 경제환경의 통화를 기능통화로 정하게 되며, 이 통화를 기준으로 재무제표를 작성하되, 회계연도말에 재무제표를 표시할 때는 환경에 맞게 통화를 선택할 수 있다.
기능통화가 원화인 경우에는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해운업체처럼 기능통화가 달러인 경우에는 재무제표를 달러로 작성하고, 회계연도말에 표시통화인 원화로 환산해야 한다. 만약 해외에 상장된 업체라면, 기능통화와 표시통화가 모두 달러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수출환경 등 대외의존도가 높아 환율 변동성이 큰 우리 경제환경에서 외화환산손실이 크게 발생해 당기순이익을 대폭 감소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나, 기능통화제도가 도입되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전망이다.
한 해운회사가 달러를 기능통화로 선정했다면, 달러로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이렇게 작성된 재무제표는 회계연도말에 표시통화인 원화로 환산하게 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외화환산이익이나 외화환산손실이 기타포괄손익인 자본조정 항목(대차대조표)으로 계상돼 당기순이익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다.
이전까지는 외화자산 및 외화부채에 대한 환산이익 및 손실이 손익계산서에 반영돼 당기순이익이 크게 달라지는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영업이익이 좋은 기업도 환율상승으로 외화부채가 증가하면 외화환산손실이 늘어나 당기순이익이 적자로 돌아선 경우가 많았다.
기능통화제도가 작년부터 허용되면서 대한해운의 경우 기능통화제도를 도입하기 전보다 당기순이익을 900억원 가량 늘릴 수 있었으며, 한진해운은 손익계산서상 외화환산손익이 발생하지 않았다.
□ 세법은 "기능통화" 없어…별도장부 작성해야=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기능통화제도가 도입되면서 해운·조선업체는 외화환산손실과 관련해 일종의 수혜를 입은 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세법과 현행 기업회계기준(K-GAAP)은 기능통화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 그래서 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되면 기능통화로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별도로 기존처럼 원화로 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하는 등 기업의 세무조정 비용이 증가하게 될 것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대한해운의 경우 기능통화인 달러로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기말에 표시통화인 원화로 환산하고 있다. 여기에 세금을 내려면 기존 회계기준(K-GAAP)을 기초로 한 원화 재무제표로 세무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장부를 두 개나 작성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게 된다.
대한해운 관계자는 "외부감사를 받아 공신력이 있는 것은 기능통화로 작성된 재무제표인데, 세무조정을 하기 위한 기준이 되는 것은 감사를 받지 않은 원화로 작성된 재무제표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운업체들은 톤세제도를 적용, 세무조정 방법이 간단해 이중적으로 장부를 작성하는 것 외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톤세제도는 해운업체의 선박 톤 수와 운항일수를 기준으로 과세하는 제도.
이와관련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세법에서도 기능통화를 인정하는 문제는 우리나라에 기능통화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며 "국제회계기준을 먼저 도입한 EU 등의 세법 개정 사례도 함께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