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지자체 목적사업에 부가세 과세
세법상 근거도 없이 과세... 부실과세 될 판
과세하든 안 하든 세수엔 아무 도움도 안돼... 누굴 위한 과세?
◆…과천도시공사 전경 (제공 : 과천도시공사)
국세청이 지방자치단체의 고유목적사업에까지 부가세를 과세해 세수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무리한 과세를 하고 있다는 지탄을 받고 있다.
조세일보가 경기도 지역 도시공사 관계자들의 제보를 받아 취재한 결과, 국세청은 경기도 소재 기초자치단체가 고유목적사업을 맡긴 도시공사에 지급한 대행사업비가 부가세 과세대상에 해당한다며 지난해 부천도시공사에 122억원을 과세한데 이어 금년에는 파주도시관광공사에 18억원, 평택도시공사에 21억원의 부가세를 추징한 것으로 확인됐다. .
같은 사유로 과천도시공사, 안양도시공사, 화성도시공사 등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벌이다 올 연말까지 잠정 중단한 것으로 파악됐다.
유례없는 세수결손상황 속에서 세법상 근거규정도 없이 부가세 면제기관인 도시공사에까지 부가세를 추징한 것은 부실과세일뿐만 아니라 세입세출상 아랫돌 빼서 윗돌 막는 격으로 국가재정에 아무런 실익도 없는 과세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부천도시공사는 국세청의 추징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한 상태다. 다른 도시공사도 과세불복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경기도 시군구와 산하 도시공사 관계자들은 즉각 기획재정부 등 관계기관에 건의서를 제출하고 문제점 시정을 요구하고 있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 부가세가 추징된 도시공사
▲부천도시공사(122억원) ▲파주도시관광공사(18억원) ▲평택도시공사(21억원)
▶ 세무조사 진행 중 잠정 중단된 도시공사
▲과천도시공사 ▲안양도시공사 ▲화성도시공사
◆ 무슨 사유로 시군구에까지 부가세 과세했나?
경기도 소재 시군구가 설립한 각 지역 도시공사는 시군구로부터 시군구가 직접 시행해야 할 고유목적사업(시군구 소유의 부동산·시설에 대한 부동산임대업, 기타스포츠시설운영업, 주차장운영업 등)을 위임받아 대행하고 있다.
지역 도시공사는 시군구를 대신하여 동 사업을 시행하면서 시민들로부터 받은 사용료를 수취하여 그 다음날 전액을 시군구에 입금하고 대신 도시공사는 일정 기간마다 시군구에서 동 사업에 소요되는 실비를 <대행사업비> 명목으로 수취하고, 사용 후 잔여액은 모두 시군구에 반납하는 구조다.
시군구는 부동산임대업, 기타스포츠시설운영업 등은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제46조 3호'에 따라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시민(소비자)들에게 부가세를 징수하여 관할 세무서에 납부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남부천세무서는 부천시가 부천도시공사에 지급한 '대행사업비'도 부가세 과세대상에 해당한다고 보아 부가세를 추징했고 부천도시공사는 부당과세라며 조세심판원에 불복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들어 경기도 지역 다른 세무서도 같은 사유로 관할 도시공사에 세무조사를 벌여 부가세를 추징한데 이어 일부 도시공사에 대해서는 세무조사 진행 중 세무서 직권으로 조사를 잠정중단한 상태로 확인됐다.
해당 세무서가 이들 도시공사에 부가세를 과세한 이유는 시군구가 지역 도시공사에 지급하는 '대행사업비'는 부가세 과세대상이라는 국세청의 2023년 남부천세무서에 대한 종합감사 지적사항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 시군구에 부가세 과세... 세법상 근거는?
① 대행사업비도 부가세 과세대상이라는 혼선
지방정부의 고유목적사업 중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임대사업 등은 부가세 과세대상이라는 점에는 지방정부나 도시공사 관계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실제로 지방정부는 이들 사업에 대한 부가세를 소비자들로부터 징수하여 세무서에 납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방정부가 도시공사에 지급한 실비변상적인 대행사업비도 부가세 과세대상일까?
지방정부의 부동산임대업 등이 부가세 과세대상(부가세법 시행령 제46조의 3항)이므로 해당 사업과 관련해 지급된 대행사업비도 역시 부가세 과세대상이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같은 혼선을 해소하기 위해 조세일보는 지난주 국세청장 앞으로 질의서를 보냈다. 조세일보는 국세청에 보낸 질의서에서 ▲'부가세는 소비자가 부담하는 소비세인데, 지방정부가 자신의 고유목적사업에 대한 공급자이자 소비자가 되는 것은 부가세법상 논리적 모순이 아니냐'는 질문과 함께 ▲'대행사업비가 부가세 과세대상이라 하더라도 건물임대라는 동일한 서비스에 대해 부가세를 부담한 소비자가 존재하는데 지방정부에 또 부가세를 부과하면 이중과세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를 물었다.
이 질의에 대해 국세청은 "임대용역(임대료)과 관리용역(대행사업비)은 다른 용역(재화)"이라며 이중과세가 아니라고 답변했다.
국세청 감사관실의 류충선 감사담당관은 "지자체는 부가세가 과세되는 부동산임대 용역을 시민들에게 제공하였고 이러한 부동산 임대용역을 대신 관리하기 위해 지방공사에 사업을 위탁하였으므로 지방공사가 지자체에 제공하는 관리용역은 지자체가 실시하는 임대용역과는 과세대상과 주체가 다르다"고 답변했다.
즉, 부동산임대업(임대료)과 관리용역(대행사업비)은 각각 성격과 내용이 다른 별개의 용역(재화)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시군구의 관리용역도 부가세 과세대상인지는 이 두 용역을 구분하여 살펴봐야 할 것이다.
②부가세 과세대상이라는 규정 없어
부가세법에서는 병·의원이나 학원, 농·축·수산물 판매업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특정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에 대해서는 부가세 면세 혜택을 부여하고 있고, 부가세가 면세되는 재화나 용역을 공급하는 사업자를 부가가치세 면세사업자로 규정하고 있다.
시군구는 당연히 면세사업자이며 시군구가 설립한 지방공사나 도시공사도 면세사업자에 해당한다. (근거 :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 제106조 제22의2)
시군구와 도시공사는 세법상 면세사업자이므로 이들이 제공하는 용역은 세법상 다른 규정이 없으면 부가세를 과세할 수 없다.
부가세법에서는 면세사업자라 하더라도 특정한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는 경우엔 부가세를 과세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시군구가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부동산임대업·기타스포츠시설운영업 등은 과세대상(부가세법 시행령 제46조 3호)으로 열거돼 있지만 관리용역(대행사업비)은 부가세 과세대상으로 열거돼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세법에는 면세사업자의 대행사업비가 부가세 과세대상이라는 명문 규정이 없다.
③명문 규정이 없는데도 과세한 이유... 대법원 판례
그렇다면 국세청은 면세사업자의 대행사업비에 대한 부가세 추징을 어떤 근거로 결정한 것일까? 국세청 관계자는 이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라고 답했다.
면세사업자의 대행사업비가 무슨 근거로 부가세과세 대상인지를 묻는 조세일보의 질의에 대해 류충선 감사담당관은 "지방공사의 위탁사업대행 관련 부가세 과세처분에 대한 법원의 판례(대법원 2017두60123, '17.12.21.)가 있으며, 해당 판례에서 지방공사의 위탁사업대행비가 지방공사의 책임과 계산하에 지출되고 실비변상적 성격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에는 부가세 과세대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해당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대행사업비가 실비변상적 비용이 아니면 과세대상이지만 실비변상적 비용이면 면세에 해당한다는 것과 같은 얘기다.
④대행사업비가 실비변상적 비용이 아니다?
이에 대해 도시공사 관계자는 "대행사업비는 실비변상적 경비가 맞다"고 주장한다.
도시공사 관계자는 "시군구 위탁사업으로 인한 수익은 전액 다음날 시군구에 입금하고 대신 도시공사는 위탁사업에 들어가는 인건비 등 운영경비를 시군구로부터 대행사업비 명목으로 수취하여 사용하고, 남는 돈은 시군구에 돌려 주고 있는데 이것이 실비변상이 아니면 무엇이 실비변상이냐"고 반문했다.
도시공사 측의 주장대로 대행사업비가 실비변상적 성격의 비용이 맞다면 조세불복과정에서 국세청은 대법원판결을 잘못 인용한 것이 돼 과세 취소 결정이 나오게 될 것이고 국세청은 부실과세를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 시군구 부가세 과세가 세수에 실익이 없는 이유
해당 대행사업비가 법원 판결에서 부가세 과세대상이라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지방정부는 매입세액공제를 받기 때문에 국가 세수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방정부가 부동산임대사업 등으로 100억원의 부가세(매출 부가세)를 소비자로부터 받아 국세청에 납부하면 국가세수는 100억원이 되지만, 대행사업비에 대한 부가세(매입 부가세)가 40억원일 경우, 매입세액 40억원을 공제한 60억원만 국세청에 납부(대신 지방공사는 매출부가세 40억원을 국세청에 납부)하므로 국가세수 100억원에는 변함이 없다.
①대행사업비가 면세일 경우 세수 : 100억원
▲지자체가 소비자에게 받은 임대용역 부가세 100억원 납부
②대행사업비가 과세일 경우 세수 : 100억원
▲지자체 : 100억원(매출세액) – 40억원(매입세액) = 60억원 납부
▲도시공사 : 지자체로부터 받은 대행사업비 부가세 40억원 납부
◆ 국세청이 과세를 강행할 경우 생기는 부작용
①세법상 명확한 규정 없이 과세함에 따르는 부작용, 국세청 불신 초래
②지방공사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지방정부로부터 받지 못한 부가세를 납부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납부한 부가세만큼 실비변상을 적게 받은 것이 돼 일정기간 재정운용에 막대한 차질이 발생
③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지방공사가 추징당한 부가세는 지방정부가 부담해야할 세금이므로 추후 부가세 경정신고 등을 통해 부가세를 환급받아야 하고 이를 지방공사에 다시 지급하는 행정력 낭비 초래
④행정력 낭비만 초래될 뿐 국가세수에는 도움이 안 되는 부작용
◆ 다툼 여지 있지만 직권취소는 안해... 무엇을 위한 과세인가?
다만, 국세청은 대행사업비가 부가세 과세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논쟁이 있음을 인정한다며 법원의 판단을 받아 보겠다고 답변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조세일보와 통화에서 "실비변상적 경비인지 아닌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 (해당 과세 건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 보고 이번 기회에 대행사업비에 대한 논란을 정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방공사에 대한 세무조사 중단 조치도 이와 같은 입장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의 반발이 확산되자 세무조사 중이었던 세무서는 조세심판원의 심판결정을 기다려 본 뒤 추징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조사의 종결이 아닌 잠정 중단을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원 판결에서 과세로 결정되든 안 되든 국가세수에는 아무런 실익도 없이 지자체의 행정력과 비용만 낭비하게 되고 국세청은 무얼 위해 과세를 강행했는지에 대한 비판여론만 남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