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경제' 관련 국제조세기준 개정 논의의 시사점(下)

OECD가 추진하는 바에 따라 2020년까지 관련 국제조세 원칙이 수정된다면 이는 거의 100여년 지속해온 국제조세 원칙의 근간이 변경되는 엄청난 변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국제조세에서 가장 핵심적인 과세원칙 2개를 고른다면 그 하나는 소득 발생지국에서 외국기업의 사업소득에 대해 포괄적인 과세권을 확보할 수 있는 '고정사업장 판정 원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전가격과세의 기본원칙인 '정상거래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OECD에서 논의하고 있는 내용은 이러한 핵심적인 과세원칙에 대해 수정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조세 분야에서는 엄청난 지각변동이 예견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15년 발간된 BEPS Action 1 보고서에서, 디지털 경제하의 조세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디지털 비즈니스를 주로 영위하는 기업들만 분리해 취급하는 방식(즉, ring-fencing)은 불합리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때문에 현재 논의들은 해당 기업들 뿐만 아니라 국제거래를 하는 대부분의 기업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과세원칙을 수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기존 고정사업장 개념에 변화가 예상되는 바, 물리적 실체가 없는 경우에도 매출액과 사용자(소비자) 수 등을 기준으로 하는 소위 '중요한 경제적 실재(Significant Economic Presence)' 요건이 충족되면 고정사업장으로 취급되어 소득 발생지국에서 발생한 외국법인의 사업소득에 대해 포괄적으로 과세할 수 있다는 원칙이 채택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전가격 과세에 있어 기존에 금과옥조처럼 취급되어지던 '정상거래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 경우에 따라서는 적용되지 않는 대신 '공식에 의한 접근방법(formulary method)'이 적용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폭 수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국제적 과세기준의 근간이 흔들리면서 각국의 법령간 일관성이 상실되는 경우 다국적기업의 국제거래에 대한 각국의 과세상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이중과세가 발생할 가능성이 증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시 말해, 다국적 기업에 대한 세계 각국의 공격적·자의적 과세가 더욱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동시에 조세분쟁의 발생 건수가 현저히 증가할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향후 국제조세 기준 변화로 말미암아 시장 소재지국(market jurisdiction)의 과세권이 증대된다는 것은 내수시장이 큰 국가에 대해서는 과세권의 확대를 의미한다. 하지만 내수시장이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 입장에서 보면 과세권이 현재보다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주로 수출과 해외투자에 의존해 경제성장을 추진하는 소규모 개방 경제체제(small and open economy)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우리의 입장을 감안하면 지금 논의되는 국제조세 기준변화가 우리 국익 입장에서 보면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월14일 '최근 EU등의 다국적 IT 기업에 대한 법인세 과세(일명: 구글세) 관련 설명자료'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바 있다.

이 자료에 포함된 정부의 계획을 살펴보면, "향후 OECD 디지털세 장기대책 논의에 적극 참여해 국내 과세권 확보를 위해 지속 노력할 계획"이고 "각국 제안서 내용 구체화시 국내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 세수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생각컨대, 시기적으로 올해 2월에는 아직 우리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표명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런데 OECD는 그 동안 제시된 기준안들의 쟁점들을 구체화한 세부 작업계획(Program of Work) 까지 만들었다.

지난 5월에는 이 계획에 대해 G20 국가는 물론 BEPS 포괄적 이행체제에 참여하는 129개 국가로부터 향후 추진 계획을 승인받은 상태다. 내년 1월까지는 새로운 과세기준의 개요에 대한 합의를 적어도 주요국가들 사이에서는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적극 노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나라도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국제적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합의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경제화'가 초래하는 국제조세 기준 개정에 대한 논의의 초기 단계에서는 미국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고정사업장 판정이나 이전가격 과세방식에 있어 기존의 원칙들과 다른 새로운 기준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주장을 반복하는 것이 국익 차원에서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미 마케팅 무형자산의 기준안을 대안으로 제시한 미국의 현재 입장이 우리나라 국익 측면에서 보면 고려되고 있는 대안 중 가장 불리한 것이 돼버렸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마케팅 무형자산 기준안이 채택되는 경우, 우리나라의 기업 중 단순히 IT 기업들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 수출하는 비 IT 기업들도 현지에 지점이나 자회사를 설치하지 않은 경우에도 새로운 과세기준에 의해 시장 소재지국에서 법인세를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개정되는 국제적 과세기준이 시장 소재지국에 과도한 과세권을 부여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국가들과 함께 연대해 조직적으로 협상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R&D 투자를 많이 하지만 자국의 시장이 전 세계시장 대비 그다지 크지 않은 국가들 중 우리나라와 비슷한 입장에 있는 국가(가령, 스웨덴·덴마크등 등 노르딕 국가, 일본, 싱가포르, 네덜란드, 스위스와 같은 국가 등)들과 연대해 향후 국제논의 시 공동 보조를 취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와 함께 향후 논의가 마케팅 무형자산 기준안의 채택으로 기울어진다면, 원칙적으로는 특수관계 기업간의 이익 배분시 정상거래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적용하되, 업종이나 지역에 따라 마케팅 무형자산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판정되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새로운 과세기준이 적용되도록 해야한다.

이로서 '공식에 의한 과세기준 적용시에도 그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원칙(scope restriction principle)'이 채택될 수 있도록 국제적 논의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국력에 기반을 둔 총성 없는 경제전쟁이 치러지고 있는 현재의 국제상황에서는, 정부와 국회 그리고 민간이 지혜와 힘을 모아 우리의 국력을 극대화하지 않으면 전투에서 패하거나 경쟁에서 낙오하게 될 것이다.

거의 100년 동안 유지해 온 국제조세의 기본 틀이 도전을 받고, 세계의 열강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국제조세 틀을 만들기 위해 한편으로는 '일방적 과세'라는 무기를 휘두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치열한 국제 협상을 시도하는 것이 오늘날 국제조세 분야의 각국이 처한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이 분야에서 민·관이 협력해 국력을 극대화하는 한편, 외교력을 최대한 발휘해 우리에게 가급적 유리한 국제조세 기준이 제정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