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권리금'을 법제화 하는 내용이 담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하 권리금 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임차인들의 숙원인 권리금 보호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지만 법 시행 반 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권리금 보호법은 임차인이 권리금을 지급하고 입주했어도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던 법 시행 이전 거래관행을 개선하고 권리금 법제화로 임차인들이 당할 수 있는 불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했다.
그동안 존재하면서도 그 존재를 법이 인정하지 않아 보호받지 못하던 권리금이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와 양성화된 것은 획기적인 사건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권리금 보호법의 예외조항으로 인해 영세한 임차인들이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 일각에서는 권리금 보호법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 꺼지지 않은 '불씨'…재건축 건물 권리금 = 권리금 보호법에서는 임대인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할 경우 손해배상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어 표면적으로는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지불한 권리금을 보장 받을 수 있다.
◆…재건축 권리금 문제로 건물주와 임차인이 마찰을 빚고 있는 서울 중구의 건물.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임대인이 재건축을 이유로 임차인의 상점을 비워달라고 요구할 경우 권리금 보호법 적용대상에서 제외, 임차인이 권리금을 회수할 기회가 사라져 버린다는 점이다.
현재 임대차 분쟁 사례 중 60%이상이 재건축 건물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권리금 문제는 아직 많은 부분에서 분란의 소지를 안고 있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서울의 경우만 봐도 노후 건축물이 많아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상업건물이 새로 지어질지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신축건물이 세워지는 이면에는 뜻하지 않게 권리금을 떼이는 임차인들이 있을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실 재건축으로 인한 권리금 분쟁은 계속 되어 왔다.
지난 2009년 발생한 '용산참사'의 발단도 권리금이 문제였다. 용산 재개발구역 철거에 앞서 거액의 권리금을 투자한 임차인들이 재건축으로 인해 권리금 회수기회가 없으니 보상금 책정에 상가권리금도 포함시켜달라고 주장했지만 끝내 관철시키지 못했다.
□ 임대인vs임차인…생존 건 치열한 '수 싸움' =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내 상가 권리금은 평균 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범위를 넓혀 전국적으로 살펴보면 현재 권리금 시장 규모는 연간 33조원 규모에 달하는 것을 추정되고 있다.
최근 불경기 여파로 상점들의 장사가 예전 같지 않은 탓에 전체적인 권리금 수준은 낮아지고 있는 추세로 알려졌지만 여전히 시장에 형성되어 있는 권리금은 무시하기 어려운 액수다.
권리금은 투자한 금액을 보호받아야 할 임차인이나 구경도 못한 금액을 책임져야 할 수도 있는 임대인 모두 부담스럽다. 이는 '가진 자와 없는 자'로 편 가르고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유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임차인들은 임대인이 권리금 회수를 방해할 경우 손해배상 규정을 두고 있는 권리금 보호법을 일종의 '방패'라 믿고 있지만 임대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임차인과의 권리금 소송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 하고 있다.
권리금을 보호받기 위해서는 우선 임차인은 계약 기간 만료 3개월 전부터 새임차인을 구해야 하지만 만약 임대인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새임차인을 구하기는 어렵다. 또한 임대인이 협조하더라도 새임차인이 받아들이기 힘든 임대료를 제시해 교묘히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고 있는 현실이다.
임대인은 새임차인에게 계약기간 1년을 요구하기도 한다. 짧은 계약기간이 제시된 상가에는 보증금에 권리금을 더해 지불할 용의가 있는 임차인을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사업주는 "최근 불경기라 매출이 20~30% 줄었는데 임대인이 이런 사정을 봐주지 않고 터무니없이 올린 월세 때문에 가게를 접으려고 내놓았다"며 "마지막 희망으로 투자한 권리금을 회수하기 위해 새임차인을 찾고 있지만 임대인이 요구하는 높은 월세와 보증금을 수용하는 마땅한 임차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는 "결국 새임차인을 찾지 못한 채로 가게를 비워준다면 임대인은 임대료가 높더라도 권리금이 없는 상가를 찾는 새임차인을 찾을 수 있다. 여기에 권리금까지 챙길 수도 있다"고 불합리한 현실을 꼬집었다.
◆…동네 떠도 걱정…'젠트리피케이션' = 원래는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였던 이태원 경리단 길의 모습. 3~4년 전부터 이색적인 음식점과 카페들이 모이면서 '핫'한 동네가 됐지만 오히려 임대료와 권리금이 크게 올라 기존 임차인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해 문제가 되고 있다.
□ 공유와 이해…'상생·협력' 필요 = 전문가들은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들의 권리가 인정되어야 함은 분명하다고 입을 모은다.
임차인에게는 마음 편히 장사할 수 있는 권리와 노력으로 만들어낸 영업권(권리금)보장을 임대인은 자신의 건물에 대한 재산권이 마땅히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계 관계자는 "권리금 문제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시각 차이에서 기인한다"며 "일부 임차인들이 터무니없는 권리금을 받고자 하거나 임대인이 권리금은 자신의 건물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본인에게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은 분쟁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임대인들도 임차인이 피땀 흘린 노력으로 죽은 상권을 살리고 이에 따라 건물가치까지 함께 올렸다면 임차인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방법을 찾아야 권리금 보호법이 성공적으로 정착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