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이 70일 앞으로 다가왔다. 총선의 핵심이슈는 역시 경제문제다. 여야 3당의 총선 경제정책의 화두는 ‘수저계급론’이 상징하는 격차해소다.
새누리당은 경제·사회적 격차 해소를 위해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더불어민주당은 경제민주화와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더불어성장’을 내세웠다. 제3당 국민의당은 성장과 분배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공정성장’을 들고 나왔다.
격차를 해소하려면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대가 우선이다. 3당 모두 성장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그 해법은 각각이다.
새누리당은 갈등해소나 경제민주화, 더불어 성장도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이뤄져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며 야당이 쟁점법안 처리를 가로막아 정부·여당이 추진중인 경제활성화에 역행하고 있다는 점을 유권자에게 호소한다는 전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경제민주화’ 조항을 도입한 김종인 전 의원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며 유명무실화됐던 경제민주화에 다시 불을 붙였다. 김 위원장은 “총선에선 불평등을 해결하고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정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며 “더불어성장론으로 경제정책을 이끌어간다면 경제민주화를 통한 포용적 성장의 틀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민의당 안철수대표는 ‘공정성장’을 경제정책의 제일 기조로 삼아야 한다며 성장의 과실을 분배로 연결시키면 그 분배의 결과로 다시 성장과 연결되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구조를 만들어야한다고 거듭 역설하고 있다.
얼핏 보아 새누리당은 성장에, 더민주는 분배에 방점이 있고 국민의당은 성장과 분배 양쪽을 다 잡겠다는 듯이 보이지만 내용상 성장과 분배, 경제활성화와 경제민주화, 더불어성장은 서로가 맞물려 있다.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라는 표현은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그들의 ‘개혁’에는 경제민주화 전략도 적잖게 담겨 있다. “사회 안정을 해치는 비합법적인 부의 집중을 견제하고, 격차 해소와 공정한 경쟁 촉진을 위해 대기업 지배구조 완화 작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개혁을 강조한 김무성 대표의 신년기자회견이 바로 그렇다.
사회격차 해소와 기회의 공정성이 보장되는 복지국가, 이것이 우리나라 국민이 생각하는 시대정신이라는 것은 새누리당 정책 워크샵에서도 공감대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우리의 상위 10%의 평균 소득이 하위의 10.1배(2013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9.6배보다 높다. 학력과 계층, 직업의 대물림이 갈수록 굳어지고, ‘부모가 최고의 자산’이라며 ‘세습 자본주의’를 기정사실로 여기는 분위기가 청년세대에 팽배해지고 있다.
각자의 재능과 노력에 따라 생기는 ‘결과의 불평등’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기회의 공정성이 사라지고 청년들이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지 못하는 사회에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성장과정에서 어느 정도 불평등은 불가피하지만 소득불평등과 경제․사회 격차가 성장에 발목을 잡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데 한국경제의 고민이 있다.
차기 대통령이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경제민주화·소득재분배가 31.6%로 으뜸이고 경제성장(21.4%), 고용증대(11.7%)가 그 다음이었다.
성장으로 파이를 키우면서 동시에 분배문제도 해결하는 새로운 성장모델은 포용적 성장이던 동반성장이던 공정성장이던 그 이름이야 어떻든 우리시대의 요청임은 부인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수출 중심으로 성장을 이끌어온 우리의 주력산업들이 하나같이 활력을 잃으면서 성장잠재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선박 철강 석유화학 섬유 컴퓨터 등 2006년 정부가 선정한 13대 주력산업은 지난 10여 년간 정책 보호를 받으며 한국을 세계 6위 수출국으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세계시장의 수요 둔화, 전 세계적인 공급확대, 중국 등 후발국과의 경쟁 심화, 엔저와 저유가 장기화, 업체 간 경쟁 격화 등 경기적,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경쟁력이 한계에 맞닥뜨렸다. 이들 주력산업들은 성장이 꺾였는데도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도리어 높아지고 수출품목에 변화도 없다. 산업구조가 이들 주력산업 위주로 고착화해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화장품과 의약품, 반도체 장비 등이 새로운 유망산업으로 부상하고 있으나 주력산업을 대체하기에 역부족이고 신산업만으로 당장 경제성장이 쉽지 않다. 생산구조의 고도화와 가격경쟁력 제고 등 부가가치를 높여 새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일이 발등의 불이다.
수출에서 중국 특수는 4년째 감소 추세다. 대중수출의 70~80%는 원부자재·중간재로 애초 관세 부과 대상이 아니어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한 효과는 크지 않다. 국내 시장 보호를 위해 개방폭을 줄인 결과 한국 소비재의 신규 내수시장 개척도 어렵다. 문은 열렸지만 내다 팔 것이 많지 않고, 오히려 빗장 풀린 한국이 ‘가성비’(가격대비성능) 뛰어난 중국산의 놀이터가 되어간다는 우려만 커지고 있다.
주력산업을 비롯해 우리 경제의 근본체질 자체를 재조정하는 쪽으로 국가적 지혜를 모아야 하고 중요한 것은 총론이 아닌 각론이다. 구체적 해법과 방법론, 각 경제주체의 고통분담을 놓고 치열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야 한다.
하지만 총선선거판은 열린 정책대결보다 ‘누가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는 심판론 대결로 얼룩질 판이다. 정부 여당의 야당심판론, 국회심판론에 맞서 더민주는 청년일자리 비정규직 가계부채 등에 대한 박근혜정부 경제심판론으로 맞불을 놓을 태세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 관계장관들이 국회와 이해관계자들 설득은 않고 국민에게 호소를 일삼는 것은 ‘정부가 잘하려고 해도 국회에서 막히고 있다’는 일종의 책임회피다. 사실 정부의 국회심판론은 거대여당 새누리당에게는 누워 침 뱉기다.
이른바 쟁점법안들에 대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여당이 이들이 어떻게 경제 살리기에 긴요한지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쟁점을 토론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야당 또한 이들 법안이 어떻게 경제를 망치는지 제대로 설명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한 적도 없다. 서로 주장만 하고 비난만 일삼으며 결과적으로 경제살리기를 정쟁의 도구로 삼아온 것이다.
경제활성화와 경제민주화, 더불어성장 공정성장은 모두 민생을 살리자는 데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사회적 논의와 여과를 거쳐 하나의 새로운 틀로 민생 살리기의 희망을 엮어 내야 한다.
사회적 대타협으로 노사가 공존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 발전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해소를 이루어내려면 고통분담이 필수적이고 여야와 국민 모두를 아우르는 열린 정치가 선결요건이다. 포용적 성장에는 더 더욱 포용의 정치가 필요하다.
